조선 제19대 국왕 숙종과 그의 계비 인현왕후 민씨, 그리고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를 모신 동원이강형의 왕릉이다. 1701년(숙종 27) 인현왕후의 능침으로 묘지를 정하고 명릉이라 하였고, 그 뒤 1720년(숙종 46) 숙종이 승하한 후 쌍릉으로 나란히 합장하였다. 1757년(영조 33)에는 인원왕후를 그 동편 언덕에 단릉으로 묘를 조성하게 됨으로써 동원이강(同原異岡)의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서오릉 경내에서 가장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사적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숙종과 인현왕후 민씨의 쌍릉은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으로만 두 봉분을 연결했으며, 난간석에는 방위표시를 위한 문자를 새겨넣었다. 두 봉분 앞에는 상석이 각각 하나씩 있고 망주석 1쌍이 좌우에 서 있으며, 3면의 곡장이 봉분을 에워사고 있다. 석물의 크기는 실물 크기와 비슷하며, 촌수를 줄여서 만든 문인석과 무인석 각 1쌍과 석마 2쌍, 그리고 석양과 석호 각 2쌍이 봉분을 둘러싸고 있다. 봉분 중앙에 놓인 사각지붕의 장명등은 건원릉 이후에 세워진 팔각지붕의 장명등을 대신함으로써 조선후기 석물의 한 양식을 이루게 된다. 명릉은 숙종의 명에 의해 능역 조성에 드는 인력과 경비를 절감하여 부장품을 줄이고, 석물의 치수도 실물크기에 가깝게 하는 등 간소하게 조성되었는데 이는 이후 왕릉의 형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