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 1912년】. 경학사(耕學社). 1910년대 초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 신민회 간부들이 국내 항일운동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제2의 독립운동 기지를 선정할 것과 독립군양성기관으로 무관학교를 설립할 것을 결의하였다. 각 도의 책임자를 선정하여 군자금을 조달하도록 하였고, 그해 여름 이회영(李會榮)·등은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의 기지로 적합한 곳을 물색하였다. 1910년 말부터 1911년 초에 걸쳐 이회영 6형제와 이상룡(李相龍)·김창환(金昌煥)·등 각 도의 대표적 인사 100여 명이 가족과 함께 이주하였다. 병농일치의 원칙에 따라 농업개발과 군사교육, 민족의식 고취하여 구국인재를 양성하여 무장항일투쟁을 전개하는 데 교육의 주된 활동목표로 삼았다. 1912~13년에 걸친 흉작으로 인한 운영난으로 1914년 해산하였다. 이후 부민단(扶民團)으로 계승되었고, 부민단은 1919년 3·1운동 직후 한족회(韓族會)로 개편되었다. 이 한족회는 군사기관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설립하고, 신흥강습소의 후신인 신흥학교를 신흥무관학교로 개편하여 독립군 사관을 양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