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1874】명성황후의 양오빠.본관 여흥. 1873년 이후 민씨집안의 중심인물로서 명성황후의 배후로 활약하며 흥선대원군을 축출하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873년 대원군의 실각 후 본격적으로 국정에 참여했으나 다음해인 1874년 폭탄이 장치된 우송 소포의 폭발로 양어머니 한창부부인 이씨와 함께 사망하였다. 일설에는 죽으면서 운현궁 쪽을 바라봤다는 얘기가 있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