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5년(헌종 1) ~ 1922년】. 1916년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공부하였으나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1918년에 귀국하였다. 귀국 후 철도국에서 근무하던 중 1919년 3·1 독립선언서와 임시정부의 기밀문서를 철도 편으로 운송하는 책임을 맡아 활동하다 발각되어 3년 간 복역하였다. 그 뒤 출감하여 동아일보 사장이던 송진우의 권고로 동아일보 체육기자로 활약하였다. 1936년 8월『동아일보』에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孫基禎) 선수의 시상식 사진에서 일장기를 없앴다. 이 사건으로 사직당하고『동아일보』는 정간, 『신동아』는 폐간되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조선체육동지회 결성에 적극 참여하였다. 조선체육회 상무이사로 선임되었고, 이듬해『동아일보』가 복간되자 사업부 차장으로 복직하였다. 1948년 정부수립 후 서울특별시 고문, 이화여자대학교 이사, 국민당 중앙당 상임위원 등의 사회활동을 하였다.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