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대는 산대, 채붕 등과 함께 전통 공연예술을 위한 장치, 도구,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예산대의 모습은 의궤 등에는 전하지 않지만, 청나라 사신으로서 조선에 네 차례나 방문했던 아극돈(阿克敦, 1685~1756)이 만든 1725년(영조 1)이 조선에 관한 풍물과 자신에 대한 영접 행사를 묘사한 스무폭짜리 화첩 <봉사도>를 통해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중 제7폭에 그려진 그림을 통해 모화관 마당에서 대접돌리기, 땅재주(물구나무서기), 탈춤, 줄타기 등의 연희 공연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11폭에 그려진 그림을 통해 솟대타기도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예산대'의 모습이 등장해 기계식 무대장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예산대는 기암 괴석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기암 괴석 안에 노송(老松) 등으로 장식해 산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으며 바위 동굴 같은 구멍이 뚫려 있다. 바위 동굴 안쪽으로는 너럭바위처럼 표현된 평평한 단이 있다. 이 단은 무대의 역할도 하는데, 대략 4층 정도이다. 아래부터 1층에는 두 개의 동굴이 뚫려 있는데 외쪽에는 얹은 머리에 분홍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은 여인이 춤을 추고 있다. 오른 쪽 연보랏빛이 감도는 회색 도포를 입은 남자가 낚싯대를 들어 던지고 있다. 남자의 옆에는 동구 밖에 있음직한 홍살문 모양의 건축물이 있다. 2층에도 2개의 동굴이 보이는데, 왼쪽에는 나무에 매달린 원숭이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산에 있음직한 누정이 한 채 놓여져 있다. 제3층의 동굴에는 목조로 된 듯한 구조물이 있다. 제 4층의 구멍에는 빨간색 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있다. 산대의 꼭대기에는 붉은 색의 삼각 깃발이 나부낀다. 각각 층마다 묘사된 것은 실제 ‘잡상’(오브제)으로 2층의 남자는 고사에 등장하는 ‘강태공’을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대 뒤편에 기관이 설치되어 노끈을 잡아 당기면, 인물이 기암괴석 사이로 나타나거나 춤을 추고 낚싯대를 들어올리는 동작을 반복하게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륜 바퀴이고, 앞바퀴, 뒤바퀴 각 2명씩 네 명의 사람이 조작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