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8】. 정안군의 양보로 공정왕이 세자로 책봉됨.
1398년 8월 정안군(靖安君) 이방원이 주도한 제1차 왕자의 난이 성공하면서 세자 책봉문제가 제기되었다. 방과는 “당초부터 대의를 주창하고 개국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업적은 모두 정안군의 공로인데 내가 어찌 세자가 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완강하게 거절했다. 상당수의 대소신료들은 정안군 방원을 세자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이때부터 방원이 권력의 중심에 서있었다. 그러나 방원은 적장자가 세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사양했고, 정안군이 양보해 영안군이 세자가 되었다. 영안군은 1개월 뒤 태조의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