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2-R4-0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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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swhdgns08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12월 13일 (화) 11:06 판 (관왕묘를 중시한 조선의 왕들 》 관왕묘를 정치적 공간으로 활용한 영조와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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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왕묘를 중시한 조선의 왕들 》 관왕묘를 정치적 공간으로 활용한 영조와

Story

숙종이 관우와 관왕묘에 대한 열성적인 관심을 가진 이후, 이후의 조선의 왕들도 관왕묘에서의 예를 중요시하며 수차례 친림을 하였다. 선조의 주장 덕분에 동대문 근처에 세워진 동관왕묘는, 한양을 통과하는 길목에 위치하게 되면서 도성을 드나드는 백성들에게는 탈없는 여정의 출발과 끝을 의미하는 공간으로도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동관왕묘의 공간적 특성을 정치적 장치로 활용한 것이 바로 영조와 정조이다. 실록기사를 확인해보면, 영조와 정조는 재위기간동안 동관왕묘에 매우 자주 행차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영조의 경우 동관왕묘에 10차례 이상 방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두 왕의 동관왕묘 행차는 단순히 관우에 대한 존경심과 예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들의 동관왕묘 행차는 정기적인 제향시기에 맞춰 제사를 올리기 위해 행한 것이 아니었고, 국왕이 열무나 능행 등의 업무로 도성 밖으로 나갈 때나 들어올 때 들려 예를 행하기 위해 들린 것이었다. 열무와 능행, 곧 군사와 충의의 성격을 띄는 행사를 진행함과 동시에 동관왕묘에서의 예를 행한 것이었으며, 이는 무(武)와 충의를 대표하는 관우의 인물상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실례로 영조는 열무가 끝난 직후 갑주를 착용한 채로 동관왕묘에서 군례를 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례를 백성들의 통행량이 높은 장소 중 하나인 동대문(흥인지문) 근처의 동관왕묘에서 국왕이 직접 행하는 것은 많은 백성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며 충의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국왕의 강력한 군사권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또한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장소 중 하나인 관왕묘에서의 의식을 통해 사대와 충의, 그리고 국왕의 권위를 보여주는 정치적 공간으로도 동관왕묘가 활용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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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22-R4-03C Story Episode 관왕묘를 정치적 공간으로 활용한 영조와 정조 관왕묘를 정치적 공간으로 활용한 영조와 정조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2022-R4-03C 2022: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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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울 동관왕묘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7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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