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신과 충의, 부의 신으로 비유되는 촉한의 장수 관우를 제사지내는 사당이다. ‘관왕묘(關王廟)', '관성묘(關聖廟)' 또는 '무안왕묘((武安王廟)'로 불렸으며 줄여서 '관묘'라고 하였다. 1902년 이후에는 '관제묘(關帝廟)'라고 불렀으나, 1908년 관제묘가 폐지되면서 이 명칭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초기에 주로 유교적 사당의 의미로 참배되었다가, 숙종(肅宗)과 영⋅정조(英⋅正祖) 및 고종(高宗) 등 역대 국왕들이 직접 참배하면서 점차 의례화 되었고, 정치적 명분과 왕실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조선후기로 들어서면서 관우를 신격화하여 관우신으로 부르며 민간신앙 및 무속신앙으로 이어졌고, 급기야는 종교화되는 경향을 띠었다. 명나라 장수 진린(陳寅)이 1598년 남대문 밖 남산기슭에 관우묘를 건립하면서 조선시대에는 대략 27곳 이상에 건립되었는데 그중 현존하는 곳은 14곳이 남아있다. 서울에는 남·동관왕묘 외에 지방에는 강진·안동·성주·남원 등 네 곳에 관왕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