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 1914년】. 경성거류민단은 공식적으로는 1905년 3월 일본 본국에서 '거류민단법'이 성립되고, 이 법률에 근거하여 1906년 7월 통감부가 '거류민단법시행규칙'(통감부령 제20호)을 발포함으로써 성립되었다. 그러나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1887년에 일본공사관(현재의 녹천정터) 및 진고개(현재의 충무로2가) 일대에 거주하는 소수의 일본인 거류민들이 '총대역장(総代役場)'을 설치하고 자신들의 대표를 뽑아, 거류민들로부터 공금을 징수하는 등 사회적 조직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들은 행정기관인 거류민역소와 의결기관인 거류민회를 두고 있었으며, 거류민들로부터 징수한 재원과 일본 정부로부터의 보조금 등을 바탕으로 도로개수와 상하수도사업, 공중위생・의료기관 설치 등 공공사업을 진행하였다. 1903년에 이르면 경성의 일본인거류민은 약 4,500명이었고 이들이 납부한 분담금이 연간 21,000엔 정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대한제국에 소재하면서도 일본 법률의 적용을 받는 치외법권 지역이었던 거류민단은 한국병합 이후인 1914년에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