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2년 ~ 1917년】 외교관. 1882년 임오군란 발생 이후부터 조선사무에 관여하게 되었다. 1882년 11월 판리공사로 조선에 부임, 1883년 12월까지 근무하다가 귀국, 1884년 10월 재차 조선에 파견되었다가 1885년 1월 이노우에 가오루와 함께 한성조약 체결을 주도하고 다시 일본으로 귀국하였다. 다케조에 신이치로는 임오군란이 발생한 1882년부터 갑신정변이 발생하는 1884년까지 격변의 시기 동안 조일외교의 제일선에서 활약한 인물로, 해저전선부설조약(1883년 3월), 조선국한행리정약조(1883년 6월), 조일통상장정(1883년 7월) 등 여러 조약 체결을 주도하였고, 조선의 정치에도 깊숙이 관여하여 김옥균 등 소위 개화파 인물들과 빈번하게 접촉하면서 갑신정변에도 개입하였다.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이 발발하였을 때 일본공사관 호위 병력을 동원하여 정변에 호응하였다. 그러나 청국군이 정변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되자, 다케조에 신이치로는 태도를 바꾸어 급히 병력을 철수시키고 인천영사관으로 피신하였다. 갑신정변 사후처리를 위해 이노우에 가오루가 조선에 파견되어 오기 전까지, 다케조에는 계속 조선에 머물며 조병호 등과 사전교섭을 진행하였다. 이노우에 가오루가 도한하여 한성조약을 체결하고 귀국할 때 함께 일본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