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광무 6)은 고종 황제가 등극(登極)한지 40돌이 되면서 보령이 망육순(望六旬)인 51세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게 된 해이다. 고종은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전국 각지에서 식민을 동원하고 외국 사절을 초청하여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국내 행사이자 최초의 국제 행사로서 '칭경예식"을 경운궁에서 치르려 했다. 그러나 이 예식은 콜레라의 유행과 영친왕의 두창으로 인해 두 차례 연기되면서 미루어졌고, 러일전쟁 발발과 동시에 일본군이 진주하면서 중단되었다. 하지만, 칭경예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이 건립되었다. 칭경예식의 공식 의례 장소로 지정된 환구단이 1901년에 재축조되었다가, 1903년에 재차 확장되었ㄱ고, 1902년 2월에는 송성건의소(頌聖建議所)가 발족하여 환구단 동쪽에서 석고각 공사를 개시하고, 그 해 말에 그 정문인 광선문과 고종의 공적을 칭송하는 글자를 새길 환구단_돌북이 완성되었다. 같은 달 동대문 밖에 원흥사가 개창되었으며, 2월에는 관왕묘를 관제묘(關帝廟)로 승격하는 공사가 완료되었고, 5월에는 서경(西京) 풍경궁(豐慶宮) 건축 공역과 경의철도 공사가 함께 시작되었다. 9월에는 야주개에 외국 사절을 위한 공연 장소로 콜로세움을 모방한 협률사 극장이 완성되었고, 10월에는 서대문 밖에서 숭의묘 영건공사가 시작되었다. 탑골공원 내 팔각정도 9~10월 사이에 건축되었다. 기로소 앞의 기념비전도 같은 무렵에 준공되었다.[1]
칭경예식은 1901년 12월 22일, 황태자는 백관을 거느리고 황제 앞에 나아가 망육순(望六旬) 어극(御極) 40년 양대(兩大) 칭경예식을 치르자고 황태자의 청원에 고종이 윤허하면서 시작되었다. 고종은 영국 여왕 즉위 60주년 칭경예식에 전권공사로 파견되었던 민영환(閔泳煥)을 칭경예식사무위원장으로 임명했고, 사무위원에는 서울 거주 서양인을 다수 포함시켰는데, 이는 이 예식의 내용과 절차를 숙종과 영조 때 의 즉위 40년 칭경예식이나 중국식 예식이 아니라 서양식 예식을 참고하여 마련하겠다는 구상에 따른 것으로 보이며, 1902년 3월 17일, 칭경예식일자도 고종의 즉위일인 음력 9월 17일(양력 10월 18일)로 정하여 의정부, 궁내부, 예식원, 장례원이 합동으로 예식 절차를 마련하도록 하였다. 이에 관한 내용을
1902년 7월 20일 의정부 의정 윤용선이 올린 칭경예식의 의식과 절차를 별단으로 올렸다. [2]
칭경예식의 주요 의전(儀典)으로는 황제가 황태자와 종친, 문무백관과 외국 사절을 거느리고 환구단에서 친행하는 고유제와 황제가 중화전에 친림(親臨)하여 황족과 대소 신료에게 축하를 받는 진하(陳賀)였으며, 주변적인 행사로는 외국 사신들이 참가하는 원유회(園遊會)와 관병식(觀兵式), 각종 연회(宴會) 등이 배치되어 예식원(禮式院)이 담당하게 되어 있었다. 예식을 두 달여 앞둔 1902년 8월6일 일본 공사는 황태자를 특사로 파견하는 게 좋겠다고 하였고, 8월 17일에는 전 주한공사 베베르가 특사로 임명되었으며, 9월 2일에는 영국도 주일 공사를 특파대사로 파견하겠다고 통보해 왔고,.15일에는 청국도 특사 파견을 결정했다. 이에 맞춰 예식 사무소는 전국 각 진위대에서 의장병을 선발하여 상경(上京)시키는 한편, 따로 200명의 기병대를 조직했다.8월 26일에는 외국 사절단 입경에 대비해 전면적인 도로 청소가 진행되었고, 만수성절인 28일에는 서울 곳곳에 태극기가 걸려 경축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다음날 민간에서도 조야송축소(朝野頌祝所)를 결성하여 예식 후 외국 사절을 접대하고 칭경기념비전을 건립하기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9월 6일에는 인천에 예포대를 설치하는 한편 군부와 경무청 관리 전원, 시원임 육군부장 이하 무관 전원에게 단발을 지시하고 새 피복(被服)을 지급했다. 그러나 예식일을 한 달도 남겨 두지 않은 9월 중순, 의주에서 시작된 콜레라가 서울에까지 퍼졌다. 외국 사절의 방문이 불투명해졌고, 지방 신민(臣民)의 입경도 위험했다. 9월 20일, 고종은 부득이 칭경예식을 다음해로 연기하기로 하면서, 10월 1일, 예식사무소는 칭경예식 일자를 1903년 4월 30일(음력 4월 4일)로 재공시했다.[3]
1903년 3월 말에 예식원에서 발표한 칭경예식절차와 일정을 ‘칭경예식’ 일정을 보면, 4월 27일에 각국대사를 영접하고 이틀 동안 국서봉정 등과 같은 공식일정을 마치고 4월 30일에 ‘칭경예식’을 치르게 된다. 그런데, ‘칭경예식’ 당일은 돈덕전에서, 5월 1일은 준정전에서 연회가 있고, 2일에는 창덕궁에서 원유회, 4일에는 서궐(경희궁)에서 관병식 후에 각 대대에서 연회, 5일은 외부(外部)에서 연회, 6일에는 돈덕전에서 연회를 베풀 예정으로 되어 있다. ‘칭경예식’이후로 원유회를 제외한 각종 연회가 5일 동안이나 계획되어 있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