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고종6) ~ 1940년】. 이동녕(李東寧). 독립운동가. 1896년 독립협회에 가담하고 만민공동회가 열렸을 때 국민운동 일선에 나섰다. 이로 인해 이준(李儁)·이승만(李承晩)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뒤 『제국신문(帝國新聞)』에 사설을 집필하였다.1903년 이상재·전덕기목사 등 종교인과 손잡고 YMCA운동을 전개하였다. 1904년 한일협약이 강제 체결되자 서울 상동교회(尙洞敎會)에서 청년회를 조직하였다.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동지들과 덕수궁 대한문(大漢門)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였다.1906년 만주 북간도로 망명, 이상설·여준 등과 같이 서전의숙(瑞甸義塾)을 설립하였다. 1910년 만주 서간도에 망명하여 경학사(耕學社)를 설립하고, 곧이어 신흥학교(新興學校)를 설립하였다. 1913년 노령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으며,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1914년 이상설·이동휘 등과 함께 대한광복군정부를 수립하였다. 4월 13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의 초대 의장으로 선임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탄생을 주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