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특사 사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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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해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폭로하고 한국의 주권 회복을 열강에게 호소한 외교 활동. 평화회의의 주창자인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가 극비리에 고종에게 제2회 만국평화회의의 초청장을 보내왔다. 고종은 일제의 폭력적 침략을 호소하고 을사조약의 무효를 주장하기 위해 이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헤이그에 밀파된 특사는 정사(正使)에 이상설(李相卨), 부사(副使)에 이준(李儁)과 이위종(李瑋鍾) 등 모두 3인이다. 이상설과 이준은 시베리아철도 편으로 러시아의 페테르스부르크에 도착, 이위종과 합류하였다. 세 특사는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도착 즉시 시내의 융(Jong) 호텔에 숙소를 정해 태극기를 게양하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특사 일행은 먼저 평화회의에 공식적으로 한국 대표의 자격으로 참석하기 위한 활동을 벌였으나 각국 정부가 이미 을사조약을 승인한 이상 한국정부의 자주적인 외교권을 인정할 수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회의 참석과 발언권을 거부하였다. 이 특사 일행은 미국·프랑스·중국·독일 등 각국 대표들에게도 협조를 구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비공식 경로를 통해 일제의 침략상과 한국의 입장을 담은 공고사(控告詞)를 의장과 각국 대표들에게 보내고, 그 전문을 『평화회의보』에 발표하였다. 특사들은 또 7월 9일 영국의 저명한 언론인인 스테드(Stead, W. T.)가 주관한 각국 신문기자단의 국제협회에 참석, 발언할 기회를 얻었다.여기서 외국어에 능통한 이위종이 세계의 언론인들에게 한국의 비참한 실정을 알리고 주권 회복에 원조를 청하는 ‘한국의 호소(A Plea for Korea)’를 절규, 청중의 공감을 샀다. 즉석에서 한국의 처지를 동정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끝내 회의 참석이 거부되자 우분울읍(懮憤鬱悒)하던 끝에 이준이 7월 14일 순국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전해지자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7월 18일 외무대신 하야시 다다스[林董]를 서울로 불러들여 그와 함께 고종에게 특사파견의 책임을 추궁,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등극시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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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5일 (일) 11:12 판
목차
Definition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해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폭로하고 한국의 주권 회복을 열강에게 호소한 외교 활동. 평화회의의 주창자인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가 극비리에 고종에게 제2회 만국평화회의의 초청장을 보내왔다. 고종은 일제의 폭력적 침략을 호소하고 을사조약의 무효를 주장하기 위해 이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헤이그에 밀파된 특사는 정사(正使)에 이상설(李相卨), 부사(副使)에 이준(李儁)과 이위종(李瑋鍾) 등 모두 3인이다. 이상설과 이준은 시베리아철도 편으로 러시아의 페테르스부르크에 도착, 이위종과 합류하였다. 세 특사는 6월 25일 헤이그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도착 즉시 시내의 융(Jong) 호텔에 숙소를 정해 태극기를 게양하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특사 일행은 먼저 평화회의에 공식적으로 한국 대표의 자격으로 참석하기 위한 활동을 벌였으나 각국 정부가 이미 을사조약을 승인한 이상 한국정부의 자주적인 외교권을 인정할 수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회의 참석과 발언권을 거부하였다. 이 특사 일행은 미국·프랑스·중국·독일 등 각국 대표들에게도 협조를 구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비공식 경로를 통해 일제의 침략상과 한국의 입장을 담은 공고사(控告詞)를 의장과 각국 대표들에게 보내고, 그 전문을 『평화회의보』에 발표하였다. 특사들은 또 7월 9일 영국의 저명한 언론인인 스테드(Stead, W. T.)가 주관한 각국 신문기자단의 국제협회에 참석, 발언할 기회를 얻었다.여기서 외국어에 능통한 이위종이 세계의 언론인들에게 한국의 비참한 실정을 알리고 주권 회복에 원조를 청하는 ‘한국의 호소(A Plea for Korea)’를 절규, 청중의 공감을 샀다. 즉석에서 한국의 처지를 동정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끝내 회의 참석이 거부되자 우분울읍(懮憤鬱悒)하던 끝에 이준이 7월 14일 순국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전해지자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7월 18일 외무대신 하야시 다다스[林董]를 서울로 불러들여 그와 함께 고종에게 특사파견의 책임을 추궁,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등극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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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_특사_사건 | Event | 사건 | 헤이그 특사 사건(1907) | 헤이그 특사 사건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헤이그_특사_사건 |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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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 사건 | 고종 | isRelatedTo | ||
헤이그 특사 사건 | 상동교회 | isRelatedTo | ||
헤이그 특사 사건 | 이준 | isRelatedTo | ||
헤이그 특사 사건 | 이위종 | isRelatedT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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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 사건 | 이토 히로부미 | isRelatedTo |
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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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헤이그특사사건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3241 | |
해설 | 위키백과 | 헤이그 특사 | https://ko.wikipedia.org/wiki/명성황후 | |
해설 | 두산백과 | 헤이그 특사 |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23683 | |
참고 | 네이버 지식백과 > 일제침략과 대한제국의 종말 | 헤이그 특사단 파견의 의의와 한계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62037&docId=2835621&categoryId=62037 |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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