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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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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은 조선 제3대 태종 5년(1405)에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궁궐의 전각들이 증축되면서 창덕궁의 권역과 그 규모가 확장되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경복궁과 함께 창덕궁 역시도 소실되어버렸다.
 
창덕궁은 조선 제3대 태종 5년(1405)에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궁궐의 전각들이 증축되면서 창덕궁의 권역과 그 규모가 확장되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경복궁과 함께 창덕궁 역시도 소실되어버렸다.
 
전쟁의 여파로 소실된 창덕궁은 선조 40년(1607)에 중건되기 시작하였고, 광해군 5년(1613)에 완료되어 제 모습을 되찾는 듯 하였으나 1623년 인조반정 때 인정전을 제외한 다수의 전각들이 소실되면서 창덕궁은 다시 한 번 피해를 입게 되었다.
 
전쟁의 여파로 소실된 창덕궁은 선조 40년(1607)에 중건되기 시작하였고, 광해군 5년(1613)에 완료되어 제 모습을 되찾는 듯 하였으나 1623년 인조반정 때 인정전을 제외한 다수의 전각들이 소실되면서 창덕궁은 다시 한 번 피해를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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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는 아름다운 문화재로서 서울 내의 궁궐들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지만, 이 궁들은 슬픈 역사를 경험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부산에서의 패전소식을 시작으로 왜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하자, 임금인 선조와 당시 조정은 개성의 평양성으로 파천을 결심한다. 끝까지 지켜야 할 도읍인 한성을 뒤로 한 채 야심한 밤 선조와 신하들은 초라한 피난길에 올랐고,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임금이 궁궐을 버리고 도망친 것을 알게 된 도성 내의 백성들은 분노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분노는 궁궐로 향하여 경복궁을 비롯한 창덕궁, 창경궁 과 6부 등의 관청 건물들에 불을 지르는 사태로 번지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전체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전란 속에서 한 나라의 정체성이 담겨져 있는 왕의 거처는 그가 다스리던 자국의 백성들의 실망감과 분노로 인해 파괴되어버린 것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부산에서의 패전소식을 시작으로 왜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하자, 임금인 선조와 당시 조정은 개성의 평양성으로 파천을 결심한다. 끝까지 지켜야 할 도읍인 한성을 뒤로 한 채 야심한 밤 선조와 신하들은 초라한 피난길에 올랐고,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임금이 궁궐을 버리고 도망친 것을 알게 된 도성 내의 백성들은 분노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분노는 궁궐로 향하여 경복궁을 비롯한 창덕궁, 창경궁 과 6부 등의 관청 건물들에 불을 지르는 사태로 번지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전체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전란 속에서 한 나라의 정체성이 담겨져 있는 왕의 거처는 그가 다스리던 자국의 백성들의 실망감과 분노로 인해 파괴되어버린 것이다.

2022년 11월 11일 (금) 10:36 판


임진왜란과 창덕궁

Story

창덕궁은 조선 제3대 태종 5년(1405)에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궁궐의 전각들이 증축되면서 창덕궁의 권역과 그 규모가 확장되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경복궁과 함께 창덕궁 역시도 소실되어버렸다. 전쟁의 여파로 소실된 창덕궁은 선조 40년(1607)에 중건되기 시작하였고, 광해군 5년(1613)에 완료되어 제 모습을 되찾는 듯 하였으나 1623년 인조반정 때 인정전을 제외한 다수의 전각들이 소실되면서 창덕궁은 다시 한 번 피해를 입게 되었다.

현재 우리는 아름다운 문화재로서 서울 내의 궁궐들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지만, 이 궁들은 슬픈 역사를 경험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부산에서의 패전소식을 시작으로 왜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하자, 임금인 선조와 당시 조정은 개성의 평양성으로 파천을 결심한다. 끝까지 지켜야 할 도읍인 한성을 뒤로 한 채 야심한 밤 선조와 신하들은 초라한 피난길에 올랐고,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임금이 궁궐을 버리고 도망친 것을 알게 된 도성 내의 백성들은 분노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분노는 궁궐로 향하여 경복궁을 비롯한 창덕궁, 창경궁 과 6부 등의 관청 건물들에 불을 지르는 사태로 번지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전체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전란 속에서 한 나라의 정체성이 담겨져 있는 왕의 거처는 그가 다스리던 자국의 백성들의 실망감과 분노로 인해 파괴되어버린 것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당시 조선의 불안정했던 정세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다. 또한 한양의 궁궐들이 모두 불 탄 이후에도 선조와 광해군은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을 중건하였으며, 뒤를 이은 조선의 왕들도 자연스럽게 창덕궁을 사용하게 되었다. 현재의 서울 창덕궁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전각과 문들 역시 임진왜란 때 훼손되었던 것을 선조와 광해군 대에 복구한 것들이거나 인조반정 이후 중건된 것들이 다수이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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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2-R1-16 Story Storyline 임진왜란과 창덕궁 임진왜란과 창덕궁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S2022-R1-16

Contextu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note
S2022-R1-16 S2022-R1-16A hasPart 전쟁의 징조와 임진왜란의 발발
S2022-R1-16 S2022-R1-16B hasPart 선조, 개성으로의 파천을 결심하다
S2022-R1-16 S2022-R1-16C hasPart 임금이 없어진 도성과 분노한 백성들
S2022-R1-16 S2022-R1-16D hasPart 본모습을 되찾는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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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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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Story Network Gr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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