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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7일 (목) 21:46 판
목차
종묘제례의 순서 》 희생과 제기의 점검
Story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이다. 그 정성의 실제를 가늠하는 절차가 곧 희생과 제기의 검사이다. 희생과 제기를 검사하는 것은 정성을 바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희생은 제주도 등지에서 사육된 짐승들을 전생서에서 마지막으로 관리하여 제사 직전에 상태를 점검하고 난 뒤에 도축하였다. 신주(神廚, 전사청)는 종묘 동문의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신주 앞에는 성생위(省牲位)가 있다. 이곳에서 희생의 상태를 점검하였다. 그러면 국왕이 친히 종묘에 출행하여 희생을 점검하는 절차를 알아보자. 국조오례의에는 유사가 성생하고 친행 절차가 없으나, 영조 21년(1745)에 와서 “주나라의 제도를 따르련다”는 공자의 뜻에 따라 명집례를 참조하여 처음으로 친행하였다. 하루 전에, 종묘의 관원이 그 속료들을 거느리고서 묘전의 안팎을 깨끗하게 청소해놓는다. 제사 전에 도착한 국왕은 종묘와 영녕전에 배례하고서 재궁으로 들어가 면복을 갈아입고 나와 종묘 안을 봉심하고 나와서 먼저 제기가 놓인 자리로 나아가 이를 점검한다. 그러고 나서 성생위로 온다. 성생위는 말 그대로 희생을 살펴보는 자리이며, 종묘의 동문 밖에 있다. 지금의 성생위를 보면, 정방형이며, 사방을 돌로 두르고서 그 안은 전석(磚石)을 깔았는데, 지면보다 약간 높다. 이 자리에 이미 집례가 생방(牲榜)을 서향하여 겹줄로 표시해놓았다. 제일 앞이 소이고, 다음이 양, 다음이 돼지이다. 이 생방은 검사할 희생을 세워놓는 자리의 표시이다. 아마도 푯말을 세워놓았을 것으로 보인다. 성생에는 장생령 한 사람에게만 전적으로 맡기지 않고, 여러 대축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였다. 대축들도 각각 희생 주위를 한 바퀴 돌고서 서향하여 역시 손을 들고서 ‘살졌습니다’ 하고 외쳤다. 물론 이들이 심사관이기는 하였지만, 국왕 주위의 헌관과 예조판서 등의 눈초리도 매섭게 움직였다. 이처럼 여러 사람들의 철저한 검사를 통과한 희생은 신주(神廚, 전사청)로 향했다. 국왕은 재궁으로 돌아가서 규를 내려놓고 들어가 재계하였다. 전사청에서는 예조판서가 희생을 담거나 삶는 정(鼎)과 확(鑊)을 점검하였다. 여러 대축은 장생령과 함께 차례로 희생을 끌고 가서 신주에 이르러 전사청의 관원에게 넘겨주었다. 알자의 인도를 받은 예조판서는 신주에 이르러서 솥이 깨끗한지를 살펴보고, 가져온 명수(明水)도 점검하였다. 감찰은 찬구(饌具)를 살펴보았다.
Semantic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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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ual Relations
국왕의 성생위는 액정서에서 종묘의 동문 밖에다가 북쪽 가까이에 남향하여 설치한다고 하였다. 이미 전석을 깔아놓아 고정석으로 만든 이 성생위가 곧 국왕의 성생위가 아닐까? 종묘제사에서 조상이 흠향할 희생이 아무리 귀하다고 한들, 검사하는 자리에 끌려온 희생이 국왕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종묘든 궁궐이든 의례에서의 고정석 표시와 그 자리를 지면보다 약간 높이는 것은 국왕을 존숭하는 예법의 하나로 시행되었다. 이 자리에서도 물론 국왕은 남면하니, 그 남쪽에 희생을 각 푯말 앞에 일렬로 세웠을 것이다. 그 주위에는 아헌관과 종헌관 및 예조판서가 도道의 동쪽에서 북쪽 가까이에 서향하여 섰으며, 모든 집사와 감찰이 그 뒤에 북쪽을 윗자리로 해서 섰다. 장생령은 희생을 담당하는 전생서의 관원이니, 다소 편파적일 수 있었다. 물론 국왕의 앞이라 감히 왜곡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며, 그 마음의 순수성 또한 의심받아서는 안 될 것이었다. 정조 21년에 경적령과 협률랑에 비교하여 낮은 품계가 장생령인데, 이번 기곡대제에 잡기주부雜歧主簿라고 들은 정조는 지벌이 괜찮더라도 오대烏帶의 말음末陰이 감히 희생을 이끌고 판위 앞에서 살졌다고 아뢸 수 있는가 하면서, 그 벼슬을 조금 높이고 그 사람을 특별히 가릴 수 있는지를 물었다. 이에 주부 한 자리를 정正으로 올릴 수 없어 판관判官으로 승격시키도록 하였다. 음서 출신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장생령은 순수한 양반가문의 혈통을 타고난 사람으로 선택하고자 하였다. 순종 즉위년 당시의 종묘의궤를 보면, 문 밖의 수보쯤에는 망단이 있고, 단의 왼쪽으로 수보쯤에는 찬막단이 있다. 서문 1칸, 외서문 1칸, 북신문 1칸이다. 동쪽에는 전사청이 있는데, 동랑은 9칸으로 3칸은 말루, 2칸은 고, 1칸은 전사관방, 2칸은 비었고, 1칸은 솥을 설치하였다. 중랑은 3칸으로 전물숙설처이다. 서랑은 5칸이며, 앞 퇴가 모두 벽장으로 전물입장처이다. 남랑은 6칸이다. 양전의 풍물고 3칸<온돌>, 고 2칸이다. 문 1칸, 침가(砧家) 2칸이다. 희생재살처는 2칸인데, 1칸은 포판이다. 동쪽에는 제정과 문장이 있다. 국왕이 원유관과 강사포를 갖추고서 성생위로 나오는 시각은 미시未時가 지난 3각刻이다. 그 전인 2각에, 아헌관 이하 모든 집사들이 자리로 나왔다. 드디어 장생령이 거느리는 속료들의 손에 이끌려 희생들이 차례로 제자리에 세워졌다. 장생령은 희생의 서남쪽에서 북향하고, 대축은 희생의 바로 뒤의 동쪽에 서며, 축사는 각각 대축의 뒤에서 서향하여 섰다. 성생은 국왕이 규圭(홀)를 드는 것을 신호로 시작되었다. 봉상시제조가 부복하였다가 무릎 꿇고서 국왕에게 규를 드실 것을 계청하고 근시가 무릎 꿇고서 규를 드리면, 국왕이 규를 든다. 예조판서와 봉상시제조의 인도를 받아 국왕은 성생위에 올라 남향하여 선다. 봉상시제조가 앞으로 나서서 희생을 살펴보실 것을 계청하고 물러나면, 마침내 장생령이 거느린 속료가 희생을 차례로 이끌고 동쪽에서 국왕의 앞을 지나간다. 국왕은 바로 앞을 지나가는 희생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희생의 몸에 흠결이 있거나 윤기 없이 비쩍 말라서는 안 되며, 그럴 경우에는 국왕의 지적이 뒤따를 것이었다. 예기 권5에는 ‘재축宰祝에게 명하여 희생을 돌아보고서 완전하게 갖추었는지를 보고 추환을 살피며 비척을 보고 물색을 살피며 반드시 수를 비교하고 대소를 헤아리며 장단을 보는 것이 모두 법도에 맞아야 한다. 다섯 가지를 갖춰야 상제께서 흠향한다’ 하였다. 여기에서 오자는 시視․안案․첨瞻․찰察․양量이다. 희생은 이를 갖추었는지를 자세히 검사해야 하며, 이를 모두 충족시킨 희생이라야 상제가 흠향한다는 것이다. 그중의 하나가 살졌는지의 여부였다. 그러나 별 반응이 없거나 만족해하는 눈치일 경우에는 장생령이 조금 앞으로 나아가서 북향하여 무릎 꿇고 손을 들어 ‘살졌습니다’ 하고 외친다. 왜 손을 들었을까? 그리하여 성생은 장생령 한 사람에게만 전적으로 맡기지 않고, 여러 대축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였다. 대축들도 각각 희생 주위를 한 바퀴 돌고서 서향하여 역시 손을 들고서 ‘살졌습니다’ 하고 외쳤다. 물론 이들이 심사관이기는 하였지만, 국왕 주위의 헌관과 예조판서 등의 눈초리도 매섭게 움직였을 것이다. 국왕이 친히 성생省牲한 영조 21년 4월에 “소가 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헌관 송인명은 “깨끗하면 쓸 수 있다”고 하였으나, “친히 살필 때도 이러하니 섭행 때는 알 수 없다”고 하면서 해당 관서의 제조를 파직하고 살졌다고 면전에서 임금을 속인 장생령을 섬으로 유배 보내는 법을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영조 24년 10월에 태묘에 갔는데, 성생위에서 희생을 보니 소가 수척하고 작았다. 이에 전생서 제조를 체직시키고, 낭청은 나처하라고 하였다가 환수하였다. 영조 38년에도 염소와 양의 몸통이 작았다는 이유로 제조를 파직시켰다. 그런데 그 이듬해에 흑우가 몸집이 큰 것을 보고 그 전해의 흑우는 몸집이 작은 것을 올렸음을 알고서 전생서제조와 제주목사를 종중추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영조 25년에는 대축이 희생의 살짐을 고함이 성실치 않았기 때문에 행사가 끝난 후 멀리 정배시킨 적이 있었다.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no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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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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