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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는 종자법을 위주로 하였다. 종자법의 필요성은 정자가 “천하의 인심을 다스려 종족을 거두고 풍속을 후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근본을 잊지 않게 하려면 계보를 밝히고 세족을 거두며 종자법을 세워야 한다”고 한 바와 같이, 수종족(收宗族) 후풍속(厚風俗)에 있었다. 종족을 거두는 일은 종자의 의무이며 역할이라 하겠으나, 이를 통해 사람들은 근본을 잊지 않고 종자를 공경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자는 “종실과 세족의 집안이 먼저 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야 하사대부로 하여금 행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례는 종자법을 위주로 하였다. 종자법의 필요성은 정자가 “천하의 인심을 다스려 종족을 거두고 풍속을 후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근본을 잊지 않게 하려면 계보를 밝히고 세족을 거두며 종자법을 세워야 한다”고 한 바와 같이, 수종족(收宗族) 후풍속(厚風俗)에 있었다. 종족을 거두는 일은 종자의 의무이며 역할이라 하겠으나, 이를 통해 사람들은 근본을 잊지 않고 종자를 공경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자는 “종실과 세족의 집안이 먼저 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야 하사대부로 하여금 행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자는 왕조례와 구별되는 사대부 계층의 고유 예속을 정리한 가례를 찬술하기에 이르렀다. 그 대상도 서인들까지 확대하여 사민士民의 예를 표방하였다. 주자는 사마광의 󰡔서의󰡕를 “고금의 마땅함에 적실하다”고 하면서 이를 저본을 하였으며, 송대의 시의(時宜)에 맞게 자세한 조목을 두어 가례의 표준을 세웠다. 이 당시에는 중국 유학사의 대변동, 즉 신유학으로 불리는 성리학이 역시 주자에 의해 수립되었는데, 이와 더불어 편찬된 󰡔주자가례󰡕는 성리학의 보편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위에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주자는 왕조례와 구별되는 사대부 계층의 고유 예속을 정리한 가례를 찬술하기에 이르렀다. 그 대상도 서인들까지 확대하여 사민士民의 예를 표방하였다. 주자는 사마광의 󰡔서의󰡕를 “고금의 마땅함에 적실하다”고 하면서 이를 저본을 하였으며, 송대의 시의(時宜)에 맞게 자세한 조목을 두어 가례의 표준을 세웠다. 이 당시에는 중국 유학사의 대변동, 즉 신유학으로 불리는 성리학이 역시 주자에 의해 수립되었는데, 이와 더불어 편찬된 󰡔주자가례󰡕는 성리학의 보편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위에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종자는 혈연관계 내의 친족을 통리할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가계의 적통을 계승하는 적장자였다. 이들은 동종 친족의 대소사를 주관하면서 족인들을 혈연의식으로 결합시키고 계통을 세우는 수권자의 지위에 있었다. 그리하여 관혼상제에는 종법이 그 사이에 행해지지 않음이 없게 된 것이다.
 
종자는 혈연관계 내의 친족을 통리할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가계의 적통을 계승하는 적장자였다. 이들은 동종 친족의 대소사를 주관하면서 족인들을 혈연의식으로 결합시키고 계통을 세우는 수권자의 지위에 있었다. 그리하여 관혼상제에는 종법이 그 사이에 행해지지 않음이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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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9일 (수) 14:12 판

종묘제도의 시행 》 국왕의 권한과 종자법

Story

종묘는 종법(宗法)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사당이다. 새로운 국가 건설의 목표와 이상을 보여주는 종묘는 그 주인인 국왕이 조상의 덕으로 수명(受命)한 천하의 대종자(大宗子)임을 밝혀주는 국가 최고의 상징이었다. 아울러서 사직은 천하 사람들의 생존을 좌우하는 지기(地祇, 땅귀신)와 곡신(穀神, 곡식신)을 모신 제단으로서,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사회의 경제적·물적 토대였다. 이 제사처는 국왕에게 신성불가침의 제사권을 부여하였다. 국가의 존망과 왕권의 성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현실성 때문에, 종사(宗社)는 국가의 대칭(代稱)으로 인식되었으며 국왕은 국가와 동일시되었다. 따라서 종묘와 사직은 조선의 국가체제를 왕권을 중심으로 확고하게 세워주는 새로운 권력구조의 상징이었다. 정궁의 좌우에서 국왕을 떠받쳐주는 두 기둥이 표방하는 외형상의 위의(威儀)는 국왕의 권위와 권력을 나타내며, 이를 과시하는 상징물을 일차 개혁 대상으로 삼아 실현한 정치적 이상 형태가 좌묘우사의 왕성 구조라 하겠다. 종묘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로부터 종법상의 질서체계에 따라 왕권을 계승한 역대 국왕을 모신 제사공간이다. 태조 6년에 간관(諫官)이 시무를 논하면서 올린 대책 중 가장 긴급한 문제로 제기한 것이 종묘에서의 제사와 가묘제였다. 그 이듬해에도 도당(都堂)에서 각 관사가 진술한 말을 채택하여 올린 건의에서, 조상 제사를 첫 번째로 거론하였다. 이러한 종묘에서 치러지는 신성한 제사는 국왕의 일원적 지배관계를 상징적이면서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기제였다. 공경대부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이 제사에 공동 참여함으로써, 국왕과 신하 혹은 민(民)은 주종적(主從的) 종법 질서관계를 형성하였다. 군신관계의 기본윤리는 효제(孝悌)이다. 국왕은 군신관계와 부자관계를 병렬로 파악하여 천하 신민에게 부친을 시봉하듯이 섬길 것을 요구했다. 국왕은 국가의 대가장(大家長)이며, 타인은 모두 자민(子民)이었다. 따라서 자민은 국왕에 대한 충성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無違]고 했다. 이로써 가천하(家天下)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법사회에서 종자와 족속은 신속(臣屬)과 복종(服從)으로 층화되어 있다. 이것이 최후에는 국왕을 천하의 대종으로 우뚝 서게 함으로써, 상하의 통치관계와 사회신분의 계급화를 성립시켰다. 따라서 군통과 종통이 결합된 왕권의 성립으로 모든 국가제사의 주재권은 국왕 일인에게 귀속되었다.

Semantic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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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22-R3-19C Story Episode 국왕의 권한과 종자법 국왕의 권한과 종자법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2022-R3-19C 2022:임민혁

Contextual Relations

가례는 종자법을 위주로 하였다. 종자법의 필요성은 정자가 “천하의 인심을 다스려 종족을 거두고 풍속을 후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근본을 잊지 않게 하려면 계보를 밝히고 세족을 거두며 종자법을 세워야 한다”고 한 바와 같이, 수종족(收宗族) 후풍속(厚風俗)에 있었다. 종족을 거두는 일은 종자의 의무이며 역할이라 하겠으나, 이를 통해 사람들은 근본을 잊지 않고 종자를 공경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자는 “종실과 세족의 집안이 먼저 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야 하사대부로 하여금 행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자는 왕조례와 구별되는 사대부 계층의 고유 예속을 정리한 가례를 찬술하기에 이르렀다. 그 대상도 서인들까지 확대하여 사민士民의 예를 표방하였다. 주자는 사마광의 󰡔서의󰡕를 “고금의 마땅함에 적실하다”고 하면서 이를 저본을 하였으며, 송대의 시의(時宜)에 맞게 자세한 조목을 두어 가례의 표준을 세웠다. 이 당시에는 중국 유학사의 대변동, 즉 신유학으로 불리는 성리학이 역시 주자에 의해 수립되었는데, 이와 더불어 편찬된 󰡔주자가례󰡕는 성리학의 보편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한 위에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종자는 혈연관계 내의 친족을 통리할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가계의 적통을 계승하는 적장자였다. 이들은 동종 친족의 대소사를 주관하면서 족인들을 혈연의식으로 결합시키고 계통을 세우는 수권자의 지위에 있었다. 그리하여 관혼상제에는 종법이 그 사이에 행해지지 않음이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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