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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의 순서 》 조(俎)를 올리는 방법의 개정)
(종묘제례의 순서 》 조(俎)를 올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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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수 준비의 전반에 대한 검사를 마친 후, 포시哺時가 지난 1각이 되면, 희생을 도축하였다. 전사청 관원이 재인을 거느리고서 할생割牲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도구가 난도鸞刀이다. 난도는 언제부턴가 사용하지 않다가 영조 21년 4월에 다시 만들어 쓰도록 하였다. 희생의 사용은 크게 다섯 음식으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희생의 몸체를 7체, 곧 양비兩髀(양 넓적다리)와 양견兩肩(양 어깨), 양협兩脅(양 갈비), 척脊(등허리) 등으로 분할하였다. 이 7체는 대생갑大牲匣에 담았다.
 
제수 준비의 전반에 대한 검사를 마친 후, 포시哺時가 지난 1각이 되면, 희생을 도축하였다. 전사청 관원이 재인을 거느리고서 할생割牲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도구가 난도鸞刀이다. 난도는 언제부턴가 사용하지 않다가 영조 21년 4월에 다시 만들어 쓰도록 하였다. 희생의 사용은 크게 다섯 음식으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희생의 몸체를 7체, 곧 양비兩髀(양 넓적다리)와 양견兩肩(양 어깨), 양협兩脅(양 갈비), 척脊(등허리) 등으로 분할하였다. 이 7체는 대생갑大牲匣에 담았다.
 
또 하나는 털과 피를 따로 구분하여 모혈반毛血盤에 담았다. 󰡔예기󰡕 「교특생」에 보면, 유우씨有虞氏는 기氣를 숭상하여, 혈血․성腥․섬爓의 제사에는 기를 사용한다고 하였으며, 또 모혈은 유전幽全에 고하는 물건이니 유전에 고하는 물건은 ‘귀순지도貴純之道’라 하였다. 그 정현의 주에는 유幽는 혈血을 말하며 순純은 안팎이 모두 선善함을 말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모혈을 올리는 제도는 유우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서, 이것은 신의 흠향을 위한 것이 아니다. 희생을 처음 도살할 때 그것이 선함을 고하려고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안팎이 선하다고 하였는데, 그 안이 혈이며, 바깥이 털이다. 모혈을 담는 반은 고례에는 그 글이 없다가 송나라 때 도두陶豆를 사용하였고, 송나라 신종 때 반을 사용하였다. 모혈반은 󰡔국조오례의󰡕에서는 대갱의 다음에 진설하였다가, 영조 17년(1741)에 앞줄이 협착하다는 이유로 豆 오른편의 조俎로 옮겨 진설하였다.
 
또 하나는 털과 피를 따로 구분하여 모혈반毛血盤에 담았다. 󰡔예기󰡕 「교특생」에 보면, 유우씨有虞氏는 기氣를 숭상하여, 혈血․성腥․섬爓의 제사에는 기를 사용한다고 하였으며, 또 모혈은 유전幽全에 고하는 물건이니 유전에 고하는 물건은 ‘귀순지도貴純之道’라 하였다. 그 정현의 주에는 유幽는 혈血을 말하며 순純은 안팎이 모두 선善함을 말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모혈을 올리는 제도는 유우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서, 이것은 신의 흠향을 위한 것이 아니다. 희생을 처음 도살할 때 그것이 선함을 고하려고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안팎이 선하다고 하였는데, 그 안이 혈이며, 바깥이 털이다. 모혈을 담는 반은 고례에는 그 글이 없다가 송나라 때 도두陶豆를 사용하였고, 송나라 신종 때 반을 사용하였다. 모혈반은 󰡔국조오례의󰡕에서는 대갱의 다음에 진설하였다가, 영조 17년(1741)에 앞줄이 협착하다는 이유로 豆 오른편의 조俎로 옮겨 진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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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9일 (수) 14:04 판

종묘제례의 순서 》 조(俎)를 올리는 방법

Story

조(俎)는 희생을 올려놓는 제기이다. 반(盤)의 모양은 장방형이며, 삼등분하여 좌우는 붉은색, 가운데는 흑색칠을 하였다. 사방에는 호족의 발이 있고 발과 발 사이를 족대로 이은 소반 형태이다. 반 위에는 희생을 그대로 올려놓지 않고 생갑(牲匣)에 담아서 올려놓는다. 생갑은 흑칠을 한 직사각형의 나무 상자이다. 이것은 대생갑과 소생갑으로 나뉜다. 대생갑에는 날고기를 담고, 소생갑에는 삶아 익힌 고기를 담는다. 소생갑도 본래 우·양·시를 각각 담아 3개의 갑을 올렸으나, 정조가 한 개의 갑에 모두 담아 올리도록 제도를 변경하였다. 그러자 기존의 갑 3개를 다 조반에 올려놓을 수 없고 또 하나의 갑에 삼생을 담을 경우 서로 섞이는 폐단이 있어, 작은 크기의 갑 3개를 만들어 이를 큰 하나의 갑에 합하는 형태로 새로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이것이 󰡔정조부묘도감󰡕에 삼합생갑(三合牲匣)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소개되었다. 현재는 갑 하나에 칸막이를 둔 형태이다. 옛날에는 신관례 후에 임금이 친히 희생을 맞이하여 묘정(廟庭)에서 살생하고, 먼저 혈성(血腥)을 바쳐 조천(朝踐)하였다. 임금이 친히 희생을 맞이하고 희생이 출입할 때에는 고대 악장(樂章)의 하나인 소하(昭夏)를 연주하였다. 숙조(熟俎)를 올리는 것은 보궤(簠簋)와 동시에 바쳐 궤식하였는데, 지금은 조천하는 예가 없어 진설할 때 성조(腥俎)를 바친다. 조를 올리기 위해 각 제관들은 바쁘게 오르내리게 되어 혼잡하고 뒤죽박죽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제물을 올리는 일이 지체되는 것은 오히려 이차적인 일에 속하였다. 그리하여 조를 올리는 방법을 정조 4년 1월에 개정하였다. 소·양·돼지의 적대를 담은 세 상자를 바깥 큰 상자에 합하여 담아 놓는다면, 봉조관(捧俎官) 한 사람이 들어와서 천조관(薦俎官)에게 전달하고 천조관은 이를 받아서 대축(大祝)에게 주고 대축은 묘사(廟司)와 함께 적대의 상에 받들어 올리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당시의 춘향대제부터 규례로 삼았다. 봉조관을 임명하는 데 있어서는 친향에 각 묘실(廟室)에 1명씩 배정하고 섭향(攝享)에 통틀어 5명을 배정하였다. 그리고 대향(大享) 때의 진설도식(陳設圖式)은 원의도식(原儀圖式)의 예에 따라 종묘서에 보관하도록 하였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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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22-R3-4B Story Episode 조(俎)를 올리는 방법 조(俎)를 올리는 방법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2022-R3-4B 2022:임민혁

Contextual Relations

제수 준비의 전반에 대한 검사를 마친 후, 포시哺時가 지난 1각이 되면, 희생을 도축하였다. 전사청 관원이 재인을 거느리고서 할생割牲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도구가 난도鸞刀이다. 난도는 언제부턴가 사용하지 않다가 영조 21년 4월에 다시 만들어 쓰도록 하였다. 희생의 사용은 크게 다섯 음식으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희생의 몸체를 7체, 곧 양비兩髀(양 넓적다리)와 양견兩肩(양 어깨), 양협兩脅(양 갈비), 척脊(등허리) 등으로 분할하였다. 이 7체는 대생갑大牲匣에 담았다. 또 하나는 털과 피를 따로 구분하여 모혈반毛血盤에 담았다. 󰡔예기󰡕 「교특생」에 보면, 유우씨有虞氏는 기氣를 숭상하여, 혈血․성腥․섬爓의 제사에는 기를 사용한다고 하였으며, 또 모혈은 유전幽全에 고하는 물건이니 유전에 고하는 물건은 ‘귀순지도貴純之道’라 하였다. 그 정현의 주에는 유幽는 혈血을 말하며 순純은 안팎이 모두 선善함을 말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모혈을 올리는 제도는 유우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서, 이것은 신의 흠향을 위한 것이 아니다. 희생을 처음 도살할 때 그것이 선함을 고하려고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안팎이 선하다고 하였는데, 그 안이 혈이며, 바깥이 털이다. 모혈을 담는 반은 고례에는 그 글이 없다가 송나라 때 도두陶豆를 사용하였고, 송나라 신종 때 반을 사용하였다. 모혈반은 󰡔국조오례의󰡕에서는 대갱의 다음에 진설하였다가, 영조 17년(1741)에 앞줄이 협착하다는 이유로 豆 오른편의 조俎로 옮겨 진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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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22-R3-4B 희생의_도축 isRelated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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