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궐도형"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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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융희 1) 이후 昌德宮과 昌慶宮의 건물 및 大門의 배치와 畓, 蓮池 등을 그린 평면도이다. | 1907년(융희 1) 이후 昌德宮과 昌慶宮의 건물 및 大門의 배치와 畓, 蓮池 등을 그린 평면도이다. | ||
− |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제는 ‘東闕圖形’이다. 보라색 표지의 摺鋪裝으로, 대나무잎 문양이 있다. 표제가 제첨에 기재되어 좌측 상단에 붙어 있다. 井間 형식으로 가로세로 모두 1.1cm의 붉은색 정사각형으로 구성된 종이를 바탕으로, 건물과 지형을 평면도로 작성하였다. 대개 東闕의 모양과 주변 건물의 이름과 위치, 구성, 치수, 규모 등을 기재하였다. 『동궐도형』에는 1704년(숙종 30) 12월에 조성된 大報壇과 1776년(영조 52) 9월 후원에 건립된 宙合樓가 묘사되었다. 또한 1782년(정조 6) 인정전 뜰에 설치한 품계석이 선명하다. 후원에 있는 觀纜亭과 勝在亭, 砭愚榭는 1827년에 그려진 채색화 〈동궐도〉에는 나타나지 않는데, 도면 형식의 「동궐도형」에는 모두 나타난다. 1907년 7월 고종황제가 강제로 양위한 후 8월에 순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移御하기 위해 창덕궁 수리에 들어갔을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1907년에 편찬된 『궁궐지』와 『동궐도형』에 관람정과 승재정이 기록되어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창덕궁 후원의 蓮池는 원래 두 개의 네모꼴과 한 개의 원형으로 나누어졌으나 이때 하나의 곡선 형태로 바뀌었다. 『동궐도형』에는 연지 중간에 舟橋가 선명하게 묘사되어 연못 위의 통로로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단칸의 사모지붕을 가진 승재정은 관람정의 건너편 연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정자로 우거진 숲 사이에 있다. 장대석으로 쌓은 4각형의 기단 위에 사방 한 칸씩으로 된 건물로 둥근 기둥을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사모 지붕이며 지붕 정상에 절병통을 놓았다. 반도지 남쪽 언덕 위에 세워진 정자로 화강석 기단 위에 1칸짜리 건물을 올려놓았다. 창덕궁 후원의 정자 중에서 비교적 늦은 시기인 구한말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연지 가에 있는 관람정은 合竹扇을 편 듯한 부채꼴 모양으로, 6개의 초석 위에 가늘고 긴 두리기둥을 세워 굴도리를 결구하였다. 마루틀이나 지붕틀에서도 평면의 형태에 따라 곡재를 사용한 유일한 건물이다. 존덕정 안쪽에 작은 정자인 폄우사가 있다. ‘砭愚’란 어리석음을 고친다는 의미이다. 폄우사는 채색화 〈동궐도〉에는 ‘ㄱ’자로 그려져 있으나, 도면 형식의 『동궐도형』 화면에는 앞면 3칸 규모의 일자형 건물로 남아 있는 것이 주목된다. 규장각에 전하는 『동궐도형』(奎貴9980)과 동일한 자료로, 『동궐도형』은 지면 위에 붉은 모눈 선을 기준으로 건축 도면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1907년 8월 황태자가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移御하기 위해 창덕궁 수리에 들어갔을 때 개조한 창덕궁 후원의 연지와 당시 새로 지어진 정자를 자세히 그리고 있는 점에서, 일제강점기에 개조된 東闕 건축 구조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사료이다. | + |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제는 ‘東闕圖形’이다. 보라색 표지의 摺鋪裝으로, 대나무잎 문양이 있다. 표제가 제첨에 기재되어 좌측 상단에 붙어 있다. 井間 형식으로 가로세로 모두 1.1cm의 붉은색 정사각형으로 구성된 종이를 바탕으로, 건물과 지형을 평면도로 작성하였다. 대개 東闕의 모양과 주변 건물의 이름과 위치, 구성, 치수, 규모 등을 기재하였다. 『동궐도형』에는 1704년(숙종 30) 12월에 조성된 大報壇과 1776년(영조 52) 9월 후원에 건립된 宙合樓가 묘사되었다. 또한 1782년(정조 6) 인정전 뜰에 설치한 품계석이 선명하다. 후원에 있는 觀纜亭과 勝在亭, 砭愚榭는 1827년에 그려진 채색화 〈동궐도〉에는 나타나지 않는데, 도면 형식의 「동궐도형」에는 모두 나타난다. 1907년 7월 고종황제가 강제로 양위한 후 8월에 순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移御하기 위해 창덕궁 수리에 들어갔을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1907년에 편찬된 『궁궐지』와 『동궐도형』에 관람정과 승재정이 기록되어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창덕궁 후원의 蓮池는 원래 두 개의 네모꼴과 한 개의 원형으로 나누어졌으나 이때 하나의 곡선 형태로 바뀌었다. 『동궐도형』에는 연지 중간에 舟橋가 선명하게 묘사되어 연못 위의 통로로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단칸의 사모지붕을 가진 승재정은 관람정의 건너편 연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정자로 우거진 숲 사이에 있다. 장대석으로 쌓은 4각형의 기단 위에 사방 한 칸씩으로 된 건물로 둥근 기둥을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사모 지붕이며 지붕 정상에 절병통을 놓았다. 반도지 남쪽 언덕 위에 세워진 정자로 화강석 기단 위에 1칸짜리 건물을 올려놓았다. 창덕궁 후원의 정자 중에서 비교적 늦은 시기인 구한말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연지 가에 있는 관람정은 合竹扇을 편 듯한 부채꼴 모양으로, 6개의 초석 위에 가늘고 긴 두리기둥을 세워 굴도리를 결구하였다. 마루틀이나 지붕틀에서도 평면의 형태에 따라 곡재를 사용한 유일한 건물이다. 존덕정 안쪽에 작은 정자인 폄우사가 있다. ‘砭愚’란 어리석음을 고친다는 의미이다. 폄우사는 채색화 〈동궐도〉에는 ‘ㄱ’자로 그려져 있으나, 도면 형식의 『동궐도형』 화면에는 앞면 3칸 규모의 일자형 건물로 남아 있는 것이 주목된다. 규장각에 전하는 『동궐도형』(奎貴9980)과 동일한 자료로, 『동궐도형』은 지면 위에 붉은 모눈 선을 기준으로 건축 도면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1907년 8월 황태자가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移御하기 위해 창덕궁 수리에 들어갔을 때 개조한 창덕궁 후원의 연지와 당시 새로 지어진 정자를 자세히 그리고 있는 점에서, 일제강점기에 개조된 東闕 건축 구조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사료이다. <ref> 출처: "동궐도형(東闕圖形)", 디지털 장서각, 2022.09.29 접속, https://jsg.aks.ac.kr/dir/view?catePath=수집분류%2F왕실%2F고서&dataId=JSG_K2-4364 </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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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9일 (목) 20:56 판
목차
Definition
1907년(융희 1) 이후 昌德宮과 昌慶宮의 건물 및 大門의 배치와 畓, 蓮池 등을 그린 평면도이다. 총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제는 ‘東闕圖形’이다. 보라색 표지의 摺鋪裝으로, 대나무잎 문양이 있다. 표제가 제첨에 기재되어 좌측 상단에 붙어 있다. 井間 형식으로 가로세로 모두 1.1cm의 붉은색 정사각형으로 구성된 종이를 바탕으로, 건물과 지형을 평면도로 작성하였다. 대개 東闕의 모양과 주변 건물의 이름과 위치, 구성, 치수, 규모 등을 기재하였다. 『동궐도형』에는 1704년(숙종 30) 12월에 조성된 大報壇과 1776년(영조 52) 9월 후원에 건립된 宙合樓가 묘사되었다. 또한 1782년(정조 6) 인정전 뜰에 설치한 품계석이 선명하다. 후원에 있는 觀纜亭과 勝在亭, 砭愚榭는 1827년에 그려진 채색화 〈동궐도〉에는 나타나지 않는데, 도면 형식의 「동궐도형」에는 모두 나타난다. 1907년 7월 고종황제가 강제로 양위한 후 8월에 순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移御하기 위해 창덕궁 수리에 들어갔을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1907년에 편찬된 『궁궐지』와 『동궐도형』에 관람정과 승재정이 기록되어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창덕궁 후원의 蓮池는 원래 두 개의 네모꼴과 한 개의 원형으로 나누어졌으나 이때 하나의 곡선 형태로 바뀌었다. 『동궐도형』에는 연지 중간에 舟橋가 선명하게 묘사되어 연못 위의 통로로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단칸의 사모지붕을 가진 승재정은 관람정의 건너편 연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 정자로 우거진 숲 사이에 있다. 장대석으로 쌓은 4각형의 기단 위에 사방 한 칸씩으로 된 건물로 둥근 기둥을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사모 지붕이며 지붕 정상에 절병통을 놓았다. 반도지 남쪽 언덕 위에 세워진 정자로 화강석 기단 위에 1칸짜리 건물을 올려놓았다. 창덕궁 후원의 정자 중에서 비교적 늦은 시기인 구한말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연지 가에 있는 관람정은 合竹扇을 편 듯한 부채꼴 모양으로, 6개의 초석 위에 가늘고 긴 두리기둥을 세워 굴도리를 결구하였다. 마루틀이나 지붕틀에서도 평면의 형태에 따라 곡재를 사용한 유일한 건물이다. 존덕정 안쪽에 작은 정자인 폄우사가 있다. ‘砭愚’란 어리석음을 고친다는 의미이다. 폄우사는 채색화 〈동궐도〉에는 ‘ㄱ’자로 그려져 있으나, 도면 형식의 『동궐도형』 화면에는 앞면 3칸 규모의 일자형 건물로 남아 있는 것이 주목된다. 규장각에 전하는 『동궐도형』(奎貴9980)과 동일한 자료로, 『동궐도형』은 지면 위에 붉은 모눈 선을 기준으로 건축 도면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1907년 8월 황태자가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移御하기 위해 창덕궁 수리에 들어갔을 때 개조한 창덕궁 후원의 연지와 당시 새로 지어진 정자를 자세히 그리고 있는 점에서, 일제강점기에 개조된 東闕 건축 구조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사료이다. [1]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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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형 | Object | 그림 | 궁궐도 | 동궐도형(東闕圖形) | 동궐도형 | 東闕圖形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동궐도형 | 2022:구현회 |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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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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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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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 ↑ 출처: "동궐도형(東闕圖形)", 디지털 장서각, 2022.09.29 접속, https://jsg.aks.ac.kr/dir/view?catePath=수집분류%2F왕실%2F고서&dataId=JSG_K2-4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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