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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기의 계몽주의적 역사서술은 비록 근대적 체재와 서술방식을 갖추었으나,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왜곡된 한국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민족적 측면에 많은 한계를 드러내었다. 민족진영에서는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역사학에서 위기 극복의 방책을 찾으려고 하였다. 특히, 개화기 학부교과서에서 보인 식민성을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다. 반일·반제국주의에 입각한 근대적 민족주의 역사학은 신채호의 『독사신론(讀史新論)』(1908)에서 마련되었다. 신채호는 사론형식으로 발표된 이 글에서 한말 역사교과서에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던 식민논리를 구체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리고 민족주의 역사학의 방법론과 주객족 개념에 입각한 새로운 고대사 체계를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신채호는 왜곡된 한국사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바로 잡는다는 목적의식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해도 그의 역사인식에는 사회진화론과 영웅중심사관의 성격이 강하였다. | ||
+ | 초기의 계몽사학은 위대한 왕과 용맹한 장수 등의 영웅으로 역사가 발전하였다는 전근대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서양의 건국 관련 서적이라든가 영웅담들이 근대 출판사의 등장과 함께 간행되어 나왔다. 미국독립사, 이태리독립사, 이태리건국삼걸전, 비사맥전 등이 그것이다. 민족주의에 입각한 역사학을 개척한 이는 박은식이다. 그는 『동명성왕실기』 등 여러 영웅 전기를 썼으며, 근대 이후 일제의 침략과정을 서술한 《한국통사》와 독립운동 사서인 《한국독립운동지혈사》로써 민족사학을 정립하였다. | ||
+ |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사》등을 펴냄으로써 '고구려를 비롯한 고대국가에는 민족적 패기가 있었으나 중세로 오면서 사대주의가 깊어졌다'고 하는 혁명적 역사관을 내세웠다. 신채호는 묘청의 서경 천도운동을 '조선역사 1천년래 제1대사건'이라 평가하였다. 박은식, 신채호를 통해 정립된 민족사학은 정인보, 장도빈, 안재홍, 문일평 등에 의해 계승되어 나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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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9일 (목) 08:04 판
목차
근대 계몽사학
Story
근대 계몽사학. 일제에 의한 위기 극복과 왜곡된 한국사상을 바로잡고자 근대적 체제와 서술방식을 갖춘 한말의 계몽주의적 역사서술. 민족사학, 민족주의사학이라고도 한다. 민족, 민족주의라는 용어는 대한제국기에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민족이란 단어는 초기에 ‘겨레’와 같이 혈연 공동체로서의 개념이 강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의 국권 침탈이 심화되자,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여 국권 회복을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민족을 단위로 근대적 국민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이념으로서 민족주의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계몽주의적 역사서술은 비록 근대적 체재와 서술방식을 갖추었으나,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왜곡된 한국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민족적 측면에 많은 한계를 드러내었다. 민족진영에서는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역사학에서 위기 극복의 방책을 찾으려고 하였다. 특히, 개화기 학부교과서에서 보인 식민성을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다. 반일·반제국주의에 입각한 근대적 민족주의 역사학은 신채호의 『독사신론(讀史新論)』(1908)에서 마련되었다. 신채호는 사론형식으로 발표된 이 글에서 한말 역사교과서에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던 식민논리를 구체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리고 민족주의 역사학의 방법론과 주객족 개념에 입각한 새로운 고대사 체계를 제시하였다. 이를 통해 신채호는 왜곡된 한국사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바로 잡는다는 목적의식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해도 그의 역사인식에는 사회진화론과 영웅중심사관의 성격이 강하였다. 초기의 계몽사학은 위대한 왕과 용맹한 장수 등의 영웅으로 역사가 발전하였다는 전근대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서양의 건국 관련 서적이라든가 영웅담들이 근대 출판사의 등장과 함께 간행되어 나왔다. 미국독립사, 이태리독립사, 이태리건국삼걸전, 비사맥전 등이 그것이다. 민족주의에 입각한 역사학을 개척한 이는 박은식이다. 그는 『동명성왕실기』 등 여러 영웅 전기를 썼으며, 근대 이후 일제의 침략과정을 서술한 《한국통사》와 독립운동 사서인 《한국독립운동지혈사》로써 민족사학을 정립하였다.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사》등을 펴냄으로써 '고구려를 비롯한 고대국가에는 민족적 패기가 있었으나 중세로 오면서 사대주의가 깊어졌다'고 하는 혁명적 역사관을 내세웠다. 신채호는 묘청의 서경 천도운동을 '조선역사 1천년래 제1대사건'이라 평가하였다. 박은식, 신채호를 통해 정립된 민족사학은 정인보, 장도빈, 안재홍, 문일평 등에 의해 계승되어 나갔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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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1001 | Story | Episode | 근대 계몽사학 | 근대 계몽사학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0-1001 |
Contextual Relations
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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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위키백과 | 민족사학 | https://ko.wikipedia.org/wiki/민족사학 | |
해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민족주의사학(民族主義史學)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0273 | |
참고 | 위키백과 | 식민사관 | https://ko.wikipedia.org/wiki/식민사관 |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type | bibliographic index | online resource | url |
---|---|---|---|
논문 | 이동섭, 「玄采의 '愛國啓蒙史學'에 관한 一硏究 -1909년 발매금지된 禁書를 중심으로 -」, 『인하사학』 4, 인하역사학회, 1996. | ||
논문 | 신용하, 「韓國近代史에 있어서 民族主義史觀의 展開와 植民主義史觀의 批判」, 『한국의 사회와 문화』 2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 ||
논문 | 신용하, 「申采浩의 民族主義와 「新歷史」; 그의 初期 民族主義史觀과 後期 民族主義史觀을 중심으로」, 『아세아학보』 18, 아세아학술연구회, 1986. | ||
논문 | 신용하, 「申采浩의 愛國啓蒙思想(上)」, 『한국학보』 19, 일지사, 1980. | ||
논문 | 윤병석, 「朴殷植의 민족운동과 한국사 서술」, 『한국사학사학보』 6, 한국사학사학회, 2002.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0951332 |
논문 | 류시현, 「한말 일제 초 단군과 고조선 인식의 체계화 - 신채호·최남선을 중심으로」, 『한국사학보』 61, 고려사학회, 2015.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054978 |
논문 | 조동걸, 「韓末史書와 그의 啓蒙主義的 虛實(下)」, 『한국학논총』 10, 국민대 한국학연구소, 1988. | ||
논문 | 노경현, 「玄采의 《東國史略》과 愛國啓蒙運動期의 歷史認識」, 부산대 석사학위논문, 1992. | ||
단행본 | 이기백, 『한국사학사론』, 일조각, 2011. |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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