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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1일 (일) 17:18 판
목차
동관왕묘(東關王廟)는 무엇일까? 》 이방의 신(神)에 대한 조선인의 반응
Story
조선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어색했다. 명(明)의 장수 진유격(陳遊擊)의 '이 일은 우리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귀국의 대사(大事)를 위하여 한 것이므로 그 뜻을 국왕께서도 꼭 아셔야 할 것이다.'(此事非爲我也, 正爲貴國大事。 此意國王不可不知。)[1]라는 말에 대한 접반관(接伴官) 이흘(李忔)의 반응은 '대체로 유격이 사당을 건립하는 일에 매우 열성이고 감독도 친히 하면서 관왕(關王)의 영험에 대한 말을 많이 하였는데, 말이 너무 허황되어 낱낱이 아뢸 수는 없으나'(大槪遊擊於立廟一事, 極其誠悃, 親自監董, 多言關王靈驗之事, 而涉於虛誕, 不敢一一陳達矣,)[2]였다.
Semantic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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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022-R4-02B | Story | Episode | ㅇㅇ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2022-R4-02B | 2022:지해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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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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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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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 ↑ 조선왕조실록 중 "선조실록" 99권,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2006), 선조 31년 4월 25일 기묘 4번째,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3104025_004.
- ↑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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