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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소리.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 장단에 맞추어 창·아니리·발림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극적 음악.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이다. 본래 〈춘향가〉·〈심청가〉·〈수궁가〉·〈흥보가〉·〈적벽가〉·〈변강쇠타령〉·〈배비장타령〉·〈옹고집타령〉·〈강릉매화타령〉·〈무숙이타령〉(왈자타령)·〈장끼타령〉·〈가짜신선타령〉(또는 〈숙영낭자전〉을 들기도 함) 등 12마당이었으나 지금은 <춘향가>·<심청가>·<수궁가>·<적벽가>·<흥보가> 5마당만이 전한다. 판소리의 기원에 관해서는 ① 무가(巫歌) 기원설, ② 광대 소학지희(笑謔之戱) 기원설, ③ 중국 강창문학(講唱文學) 기원설, ④ 독서성(讀書聲) 기원설, ⑤ 육자배기토리 기원설, ⑥ 판놀음 기원설 등이 있다. | ||
+ | 판소리의 형성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체로 17세기경 남도지방에서 서민 청중들을 대상으로 서서히 부상했을 것으로 짐작되며, 적어도 18세기말까지는 판소리가 제 모습을 완전하게 갖추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대에 활동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소리꾼은 하한담(하은담)·최선달·우춘대 등이다. 19세기에 판소리는 양반 청중들을 대상으로 전성기를 맞았는데, 19세기 전반기를 '전기 8명창시대'라 하고 19세기 후반기를 '후기 8명창시대'라고 한다(명창). 마침내 19세기 후반에 판소리는 왕실에까지 침투하게 되고, 고종과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많은 창자들이 벼슬을 받기도 했다. 19세기부터 판소리의 주요 청중이 양반으로 바뀌면서 이전의 서민의식은 상당히 수정되었다. 덕분에 판소리는 사설·음악·무대 등에서 진경을 이루었으나, 민중적 현실인식과 반봉건적 예술적 심화나 문제의식은 일정하게 수정되어 얼마간은 봉건적 의식의 개입까지도 허용하는 굴절을 겪었다. 조선 고종 때의 판소리 작가 신재효(申在孝:1812~84)는 중인 출신으로서 판소리 광대를 적극 후원하면서, 양반들의 미의식을 매개로 판소리의 개작을 시도했는데, 이때 판소리 6마당의 사설집과 〈성조가 成造歌〉·〈광대가〉 등의 창작 단가들이 만들어졌다. | ||
+ | 20세기는 '전기 5명창 시대'로 일컬어진다. 그당시 활동한 명창들은 박기홍·전도성·김창환·이동백·김창룡·김채만·정정렬 등이다. 이때는 국권상실과 급격한 서구화의 충격으로 판소리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마침내는 사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 시기이다. 이 시기 판소리는 무대예술로 변화했다. 1902년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가 세워지고, 판소리가 이 공연무대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극적 요소가 강한 창극이 탄생했다. 또한 유성기의 출현으로 판소리의 향수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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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31일 (일) 17:54 기준 최신판
목차
판소리
Story
판소리.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 장단에 맞추어 창·아니리·발림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극적 음악.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이다. 본래 〈춘향가〉·〈심청가〉·〈수궁가〉·〈흥보가〉·〈적벽가〉·〈변강쇠타령〉·〈배비장타령〉·〈옹고집타령〉·〈강릉매화타령〉·〈무숙이타령〉(왈자타령)·〈장끼타령〉·〈가짜신선타령〉(또는 〈숙영낭자전〉을 들기도 함) 등 12마당이었으나 지금은 <춘향가>·<심청가>·<수궁가>·<적벽가>·<흥보가> 5마당만이 전한다. 판소리의 기원에 관해서는 ① 무가(巫歌) 기원설, ② 광대 소학지희(笑謔之戱) 기원설, ③ 중국 강창문학(講唱文學) 기원설, ④ 독서성(讀書聲) 기원설, ⑤ 육자배기토리 기원설, ⑥ 판놀음 기원설 등이 있다. 판소리의 형성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체로 17세기경 남도지방에서 서민 청중들을 대상으로 서서히 부상했을 것으로 짐작되며, 적어도 18세기말까지는 판소리가 제 모습을 완전하게 갖추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대에 활동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소리꾼은 하한담(하은담)·최선달·우춘대 등이다. 19세기에 판소리는 양반 청중들을 대상으로 전성기를 맞았는데, 19세기 전반기를 '전기 8명창시대'라 하고 19세기 후반기를 '후기 8명창시대'라고 한다(명창). 마침내 19세기 후반에 판소리는 왕실에까지 침투하게 되고, 고종과 흥선대원군으로부터 많은 창자들이 벼슬을 받기도 했다. 19세기부터 판소리의 주요 청중이 양반으로 바뀌면서 이전의 서민의식은 상당히 수정되었다. 덕분에 판소리는 사설·음악·무대 등에서 진경을 이루었으나, 민중적 현실인식과 반봉건적 예술적 심화나 문제의식은 일정하게 수정되어 얼마간은 봉건적 의식의 개입까지도 허용하는 굴절을 겪었다. 조선 고종 때의 판소리 작가 신재효(申在孝:1812~84)는 중인 출신으로서 판소리 광대를 적극 후원하면서, 양반들의 미의식을 매개로 판소리의 개작을 시도했는데, 이때 판소리 6마당의 사설집과 〈성조가 成造歌〉·〈광대가〉 등의 창작 단가들이 만들어졌다. 20세기는 '전기 5명창 시대'로 일컬어진다. 그당시 활동한 명창들은 박기홍·전도성·김창환·이동백·김창룡·김채만·정정렬 등이다. 이때는 국권상실과 급격한 서구화의 충격으로 판소리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마침내는 사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 시기이다. 이 시기 판소리는 무대예술로 변화했다. 1902년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가 세워지고, 판소리가 이 공연무대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극적 요소가 강한 창극이 탄생했다. 또한 유성기의 출현으로 판소리의 향수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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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1005 | Story | Episode | 판소리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0-1005 |
Contextual Relations
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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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판소리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9663 | |
해설 | 위키백과 | 판소리 | https://ko.wikipedia.org/wiki/판소리 | |
참고 | 중도일보 | [10년간의 취재 기록-25] ‘심청이 환생·산 공부·차원높은 창법’…판소리, 불교에서 왔나? | http://www.joongdo.co.kr/web/view.php?key=20211018010003161 |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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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 김동현, 「무등산을 중심으로 본 판소리 명창」, 『향토문화』 13, 향토문화개발협의회, 2012. | ||
논문 | 유민영, 「근현대 판소리 연희자의 고난과 영광」, 『한국사시민강좌』 45, 일조각, 2009. | ||
논문 | 정영진, 「일제강점기 대중매체 속의 판소리」, 『韓國音樂史學報』 33, 한국음악사학회, 2004. | KCI | |
논문 | 최혜진, 「판소리 대중화를 위한 문화콘텐츠 고찰」, 『비교민속학』 27, 비교민속학회, 2004. | KCI | |
논문 | 송상혁, 「‘판소리’ 名稱의 文獻的 檢討」, 『韓國音樂史學報』 25, 한국음악사학회, 2000. | ||
단행본 | 최동현, 『동초 김연수의 생애와 판소리』, 신아출판사, 2013. | ||
단행본 | 이태화, 『일제강점기의 판소리 문화 연구』, 박이정, 2013. | ||
단행본 | 정병헌, 『쉽게 풀어 쓴 판소리 열두바탕』, 민속원, 2011. | ||
단행본 | 임명진, 『판소리의 공연예술적 특성』, 민속원, 2004. | ||
단행본 | 김기형 외, 『한국의 판소리 문화』, 박이정, 2003. | ||
단행본 | 정양 외, 『판소리 단가』, 민속원, 2003. | ||
단행본 | 전통예술원 편, 『판소리 음악의 연구』, 민속원, 2002. | ||
단행본 | 정충권, 『판소리 사설의 연원과 변모』, 다운샘, 2001. | ||
단행본 | 김대행, 『우리시대의 판소리문화』, 역락, 2001. |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Semantic Network Gr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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