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령"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anyang2
이동: 둘러보기, 검색
(Contextual Relations)
 
(사용자 2명의 중간 판 12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Definition=  
 
=Definition=  
  
【 1895년(고종 32) 】. 단발령(斷髮令). 김홍집(金弘集) 내각이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도록 내린 명령.을미사변으로 인해 백성들의 반일 의식은 한층 고조되었고, 또 사건을 기만적으로 처리한 김홍집 내각에 대한 불신도 깊어져 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홍집 내각은 을미사변이 있은 지 불과 3개월 뒤인 11월 15일에, 오는 17일을 기하여 건양(建陽) 원년 1월 1일로 음력에서 양력으로 역법(曆法)을 변경하고, 동시에 고종의 조칙으로 단발령을 선포한다고 하였다. 당시 정부가 단발령을 내린 이유는 ‘위생에 이롭고 작업에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그러나 유교 윤리가 일반 백성들의 생활에 뿌리 깊이 자리 매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조선사회에서는 “신체·머리털·살갗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서, 감히 훼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라는 말 그대로, 머리를 길러 상투를 트는 것이 인륜의 기본인 효의 상징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백성들은 단발령을 살아 있는 신체에 가해지는 심각한 박해로 받아들였고, 정부에 대한 반감은 절정에 달하였다.그런데 단발령의 조짐은 1894년 2차에 걸쳐 전통적인 의복 제도를 서양식으로 개정한 ‘변복령’(變服令, 의제개혁)이 공포되면서 나타났고, 백성들 간에는 이미 그러한 소문이 나돌았다. 또, 1895년 10월 중 일본 관리가 고종에게 먼저 단발을 강요하였는데, 당시 고종은 명성황후의 인산 이후로 시기를 미루어 왔던 것이다.11월 15일, 백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발령을 선포한 고종은 태자와 함께 당일로 단발을 하였다. 국왕으로 하여금 먼저 모범을 보이도록 하여, 백성들에게 단발을 강행하려는 구실로 삼으려는 의도에서였다.그러나 이것은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조처가 고종의 자의도, 내각 전체의 의사도 아니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이러한 기만적인 술책에 더욱 반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당시 일본군은 궁성을 포위하고 대포를 설치하여, 단발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분노의 폭발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내부 대신 유길준(兪吉濬) 등의 강요에 못 이긴 고종은 농상공부 대신 정병하(鄭秉夏)에게 “내 머리를 깎으라.”고 탄식하며 단발하였고, 이어 유길준이 태자의 머리를 깎았다.그 뒤 내부고시(內部告示)를 통해 당일로 전국 방방곡곡에 일제히 단발령을 포고하였다. 그와 동시에 그날 밤부터 다음날인 16일 아침에 걸쳐 정부 각부의 관료와 이속, 그리고 군인·순검 등의 관인들에게 우선적으로 단발을 단행하였다.그리고 역법을 음력에서 양력으로 전환하기로 한 11월 17일에 전국민에게 단발 실시가 더욱 강요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야기되었다. 단발의 강요로 인해 생긴 반감은 개화 자체를 증오하는 감정으로 발전하였고, 이것은 또 ‘일본화’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져 곧 반일 의식으로 이어졌다. 백성들은 개화를 상징하는 단발령을, 인륜을 파괴하여 문명인을 야만인으로 전락하게 하는 조처로 받아들였던 것이다.이러한 분위기에서 학부대신 이도재(李道宰)는 단발로 인한 이로움은 보이지 않고, 해로움만 당장에 보이고 있기 때문에 명령을 따를 수 없다고 상소하고는 대신직을 사임하였다. 또한 정계에서 은퇴한 원로 특진관 김병시(金炳始)도 단발령의 철회를 주장하는 상소를 하였다.한편, 유길준이 유생들의 단발에 앞서 당대 유림의 거두 최익현(崔益鉉)을 포천에서 잡아들여 투옥한 뒤, 고시문을 보이면서 단발을 강행하려 하자, 그는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고 질타하며 단발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또, 단발의 명을 받은 관리들 중에서도 차마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자가 많았다.당시 서울에 머물러 있던 지방 사람들은 단발령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향하였으며, 미처 피하지 못해 강제로 상투를 잘린 사람들도 상투를 주머니에 넣고 통곡하면서 서울을 떠나는 형편이었다.뿐만 아니라, 백성들은 단발을 두려워하여 문을 걸어 잠그고 손님이 찾아오는 것조차 사양하였으며, 혹은 지방으로 임시 도피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단발령은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체두관(剃頭官)이 파견되어 통행인은 물론 민가에까지 들어가 강행되고 있었다.결과단발령 실시는 당시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졸속한 처사인 데다가, 더욱이 이를 강제로 집행함으로써 백성들로부터 큰 반감을 사게 되었다. 그 결과 김홍집내각은 국정 개혁을 결실시킬 대중적 지지기반을 상실하고 말았다.나아가 단발령은 을미사변과 더불어 반일 감정을 격화시킨 결정적 기폭제가 되어, 전국 각지에서 을미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특히 이천의병(김하락)·제천의병(유인석)·강릉의병(민용호)·진주의병(노응규)·안동의병(권세연)·홍주의병(김복한) 등이 단발령 직후에 봉기한 대표적인 의진이다.이에 정부에서는 서울의 친위대를 파견하여 각지의 의병을 진압하고자 하였으나, 이 틈에 고종의 아관파천(俄館播遷)이 일어났다. 그 결과 김홍집 이하 어윤중(魚允中)·정병하 등은 살해되고, 유길준·장박(張博)·조희연(趙羲淵) 등은 일본으로 망명하여 온건개화파 친일내각은 붕괴되고 말았다.그 뒤 이범진(李範晉)·이완용(李完用)·윤치호(尹致昊) 등을 중심으로 한 친로 내각이 등장하게 되었다. 새 내각은 그 동안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고자 단발령을 철회하고, 이를 각 개인의 자유 의사에 맡기게 됨으로써 단발령은 일단락되었다.그러나 그 뒤 광무개혁(光武改革) 때 단발 문제는 다시 거론이 되어 1902년 8월 군부·경무청에 소속된 군인·경찰·관원 등 제한된 범위의 인물들에게 한하여 재차 강제 단발을 명하였다. 그 해 10월 이도재 등 정부 대신들에게도 역시 이러한 명령이 하달되어 이에 불응하는 사람은 그 머리를 자르게 할 정도로 강경한 입장을 천명하였다.
+
【 1895년(고종 32) 】. 단발령(斷髮令). [[김홍집]] 내각이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도록 내린 명령. 을미사변이 있은 지 불과 3개월 뒤에 단발령을 선포하였다. 단발령을 내린 이유는‘위생에 이롭고 작업에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단발령을 살아 있는 신체에 가해지는 심각한 박해로 받아들였고, 이것은 반일 의식으로 이어졌다. 단발령 실시는 김홍집 내각으로 하여금 대중적 지지기반을 상실하게 하였다. 나아가 을미사변과 더불어 반일 감정을 격화시킨 결정적 기폭제가 되어, 전국 각지에서 을미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단발령(斷髮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단발령(斷髮令))].  
 
  
 
==Semantic Data==  
 
==Semantic Data==  
21번째 줄: 19번째 줄: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left"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left"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note
+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note
 
|-
 
|-
| [[단발령]] || [[ ]]  || [[ ]]  ||  ||
+
| [[단발령]] || [[김홍집내각]]  || [[isRelatedTo]]  ||  ||
 
|-
 
|-
| [[단발령]] || [[ ]] || [[ ]] || ||
+
| [[단발령]] || [[을미사변]] || [[isRelatedTo]] || ||
 
|-
 
|-
| [[단발령]] || [[ ]]  || [[ ]]  ||  ||
+
| [[단발령]] || [[변복령]]  || [[isRelatedTo]]  ||  ||
 
|-
 
|-
| [[단발령]] || [[ ]] || [[ ]] || ||
+
| [[단발령]] || [[이도재]] || [[isRelatedTo]] || ||
 
|-
 
|-
| [[단발령]] || [[ ]]  || [[ ]]  ||  ||
+
| [[단발령]] || [[유길준]]  || [[isRelatedTo]]  ||  ||
 
|-
 
|-
| [[단발령]] || [[ ]] || [[ ]] || ||
+
| [[단발령]] || [[최익현]] || [[isRelatedTo]] || ||
 
|-
 
|-
| [[단발령]] || [[ ]]  || [[ ]]  ||  ||
+
| [[단발령]] || [[을미의병]]  || [[isRelatedTo]]  ||  ||
 
|-
 
|-
| [[단발령]] || [[ ]] || [[ ]] || ||
+
| [[단발령]] || [[광무개혁]] || [[isRelatedTo]] || ||
|-
 
| [[단발령]] || [[  ]]  || [[  ]]  ||  ||
 
|-
 
| [[단발령]] || [[  ]] || [[  ]] || ||
 
|-
 
| [[단발령]] || [[  ]]  || [[  ]]  ||  ||
 
|-
 
| [[단발령]] || [[  ]] || [[  ]] || ||
 
|-
 
| [[단발령]] || [[  ]]  || [[  ]]  ||  ||
 
|-
 
| [[단발령]] || [[  ]] || [[  ]] || ||
 
|-
 
| [[단발령]] || [[  ]]  || [[  ]]  ||  ||
 
|-
 
| [[단발령]] || [[  ]] || [[  ]] || ||
 
 
|-
 
|-
 
|}
 
|}
64번째 줄: 46번째 줄:
 
!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 해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독립협회 ||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5993
+
| 해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단발령 ||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3579
 
|-
 
|-
| 해설 || 위키백과 || 독립협회 ||  || https://ko.wikipedia.org/wiki/독립협회
+
| 해설 || 위키백과 || 단발령 ||  || https://ko.wikipedia.org/wiki/단발령
 
|-
 
|-
| 해설 || 두산백과 || 독립협회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0942&docId=1083508&categoryId=33383
+
| 해설 || 두산백과 || 단발령 ||  ||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25879
 
|-  
 
|-  
| 참고 || 네이버 지식백과 > 네이버 기관단체사전 : 종합||독립협회 ||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3124&docId=646905&categoryId=43124
+
| 참고 || 네이버 지식백과 > 21세기 정치학대사전 || 단발령 ||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2140&docId=726783&categoryId=42140
|-
 
| 참고 || 네이버 지식백과 > 어린이백과 > 한국사 개념사전 ||독립협회 ||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7306&docId=957685&categoryId=47306
 
|-
 
| 동영상 || 영상한국사 ||1096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와 이완용 || || https://www.youtube.com/watch?v=Okrc2T8m8Tw
 
 
|-
 
|-
 
|}
 
|}
85번째 줄: 63번째 줄:
 
! type || bibliographic index || online resource || url
 
! type || bibliographic index || online resource || url
 
|-
 
|-
| 논문 || 홍원표. 「독립협회의 국가건설사상: 서재필과 윤치호」, 『국제정치논총』43-4, 한국국제정치학회, 2003.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0876040
+
| 논문 || 구선희. 「『한성신보』의 조선 사회에 대한 인식–斷髮令(1895)과 관련하여 -, 『사학연구』137, 한국사학회, 2020.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576049
|-
 
| 논문 || 조성운.「독립협회의 ‘국민’ 인식과 창출 활동 -尙武論과 관련하여-」, 『한국민족운동사연구』90,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7 ||  || http://dx.doi.org/10.19162/KNM.90.2017.3.01
 
|-
 
| 논문 || 곽금선.「1898년 독립협회의 정치기획과 ‘충군애국(忠君愛國)」, 『 역사와 현실』107, 한국역사연구회, 2018 ||  || http://www.koreanhistory.org/dbpia
 
|-
 
| 논문 || 윤대식.「독립협회에 대한 유교 관료와 지식인들의 인식 : 상소문(上疏文)을 중심으로」, 『사회이론』50, 한국사회이론학회, 2016 || KC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67530
 
|-
 
| 논문 ||  김용직.「개화기 한국의 근대적 공론장과 공론형성 연구 :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을 중심으로」, 『한국동북아논총』11-38, 한국동북아학회, 2006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0998753
 
|-
 
| 논문 ||  김현숙.「문명담론과 독립협회의 정치체제, 그리고 러젠드르의 전제론」, 『韓國史學報 』 66, 고려사학회, 2017 || ||http://dx.doi.org/10.21490/jskh.2017.02.66.199
 
|-
 
| 논문 ||  권기하.「독립협회의 정치운동 모색 과정에서 의리 관념의 역할」, 『역사문제연구』 23-2, 역사문제연구소, 2019 ||  || http://dx.doi.org/10.36432/CSMKH.42.201910.7
 
|-
 
| 논문 || 조계원. 「대한제국기 만민/관민공동회(1898년)를 둘러싼 국왕과 독립협회의 갈등 - ‘동포,’‘민회’ 개념을 중심으로」, 『담론 201』19-2, 한국사회역사학회, 2016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11600
 
 
|-
 
|-
| 논문 || 송민호. 「開化啓蒙時代 ‘演說’과 ‘講演’의 分化와 非政治的 公論場 形成의 背景」, 『한국문화』 55,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1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592732
+
| 논문 || 임윤정,  전혜숙. 「19세기말 단발령과 상투에 관한 연구」, 『한복문화』 14-2, 한북문화학회, (2011)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583595
 
|-
 
|-
| 논문 || 최형익. 「한국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기원: 구한말 독립신문,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활동」, 『한국학』 27-3,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142310
+
| 논문 || 임윤정, 전혜숙. 「내한 서양인 저서에 나타난 19세기말 조선남자의 상투와 단발령에 관한 시각」, 『한복문화』 15-2, 한북문화학회, 2012.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692511
 
|-
 
|-
| 논문 ||  이신철.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근대성’ 논의 검토」, 『사림』 39, 수선사학회, 2011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569767
+
| 논문 ||  임희국. 「1890년대 조선의 사회·정치적 상황에 대한 내한(來韓) 선교사들의 이해 동학 농민 운동과 단발령을 중심으로」, 『선교와 신학』 23,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연구원, 2009.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534765
 
|-
 
|-
| 논문 ||  김종학. 「국=가와 국/가-왕권을 둘러싼 정치투쟁과 대한제국-」, 『개념과 소통』 20, 한림과학원, 2017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305445
+
| 논문 ||  김어진. 「문명포준으로서의 두발양식: 1895년 조선 단발령의 국제정치」,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3. || || https://primoapac01.hosted.exlibrisgroup.com/permalink/f/1l6eo7m/82SNU_INST21475821280002591
 
|-
 
|-
| 단행본 || 신용하, 『독립협회연구-상, 하』, 일조각, 2006. || ||
+
| 논문 || 이민원. 「상투와 단발령」, 『사학지』 12, 단국사학회, 1998. || || https://primoapac01.hosted.exlibrisgroup.com/permalink/f/enmgnl/TN_cdi_kiss_primary_277384
 
|-
 
|-
| 단행본 || 김승태, 『서재필』, 역사공간, 2011. || ||
+
| 논문 || 이민원. 「백범 김구의 세계관의 변화와 단발 문제」, 『백범과 민족운동 연구』 제5집, 백범학술원, 2007.
 
|-
 
|-
 
|}
 
|}
129번째 줄: 93번째 줄:
 
</html>
 
</html>
  
[[분류:한양도성타임머신 2021]] [[분류:Actor]] [[분류:김혁]]
+
[[분류:한양도성타임머신 2021]] [[분류:Concept]] [[분류:김혁]]

2021년 10월 18일 (월) 22:37 기준 최신판

Definition

【 1895년(고종 32) 】. 단발령(斷髮令). 김홍집 내각이 성년 남자의 상투를 자르도록 내린 명령. 을미사변이 있은 지 불과 3개월 뒤에 단발령을 선포하였다. 단발령을 내린 이유는‘위생에 이롭고 작업에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단발령을 살아 있는 신체에 가해지는 심각한 박해로 받아들였고, 이것은 반일 의식으로 이어졌다. 단발령 실시는 김홍집 내각으로 하여금 대중적 지지기반을 상실하게 하였다. 나아가 을미사변과 더불어 반일 감정을 격화시킨 결정적 기폭제가 되어, 전국 각지에서 을미의병이 일어나게 되었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class groupName partName label hangeul hanja english infoUrl iconUrl
단발령 Event 사건 단발령(斷髮令) 단발령 斷髮令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단발령

Contextu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note
단발령 김홍집내각 isRelatedTo
단발령 을미사변 isRelatedTo
단발령 변복령 isRelatedTo
단발령 이도재 isRelatedTo
단발령 유길준 isRelatedTo
단발령 최익현 isRelatedTo
단발령 을미의병 isRelatedTo
단발령 광무개혁 isRelatedTo

Web Resource

type resource title description/caption URL
해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단발령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3579
해설 위키백과 단발령 https://ko.wikipedia.org/wiki/단발령
해설 두산백과 단발령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25879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 21세기 정치학대사전 단발령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2140&docId=726783&categoryId=42140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type bibliographic index online resource url
논문 구선희. 「『한성신보』의 조선 사회에 대한 인식–斷髮令(1895)과 관련하여 -」, 『사학연구』137, 한국사학회, 2020. KC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576049
논문 임윤정, 전혜숙. 「19세기말 단발령과 상투에 관한 연구」, 『한복문화』 14-2, 한북문화학회, (2011) KC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583595
논문 임윤정, 전혜숙. 「내한 서양인 저서에 나타난 19세기말 조선남자의 상투와 단발령에 관한 시각」, 『한복문화』 15-2, 한북문화학회, 2012. KC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692511
논문 임희국. 「1890년대 조선의 사회·정치적 상황에 대한 내한(來韓) 선교사들의 이해 동학 농민 운동과 단발령을 중심으로」, 『선교와 신학』 23,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연구원, 2009. KCI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534765
논문 김어진. 「문명포준으로서의 두발양식: 1895년 조선 단발령의 국제정치」,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3. https://primoapac01.hosted.exlibrisgroup.com/permalink/f/1l6eo7m/82SNU_INST21475821280002591
논문 이민원. 「상투와 단발령」, 『사학지』 12, 단국사학회, 1998. https://primoapac01.hosted.exlibrisgroup.com/permalink/f/enmgnl/TN_cdi_kiss_primary_277384
논문 이민원. 「백범 김구의 세계관의 변화와 단발 문제」, 『백범과 민족운동 연구』 제5집, 백범학술원, 2007.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