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관리부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anyang2
이동: 둘러보기, 검색
(Contextual Relations)
(Contextual Relations)
 
25번째 줄: 25번째 줄:
 
|-
 
|-
 
| [[장생령]] || [[희생_관리부실]]  || [[participatesIn]] || ||
 
| [[장생령]] || [[희생_관리부실]]  || [[participatesIn]] || ||
|-
 
| [[희생_관리부실]] || [[성생위]]  || [[isRelatedTo]] || ||
 
 
|-
 
|-
 
| [[희생_관리부실]] || [[희생_도축]]  || [[isRelatedTo]] || ||
 
| [[희생_관리부실]] || [[희생_도축]]  || [[isRelatedTo]] || ||

2022년 12월 4일 (일) 15:53 기준 최신판

Definition

국왕이 친히 성생(省牲)한 영조 21년 4월에 “소가 살찌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헌관 송인명은 “깨끗하면 쓸 수 있다”고 하였으나, “친히 살필 때도 이러하니 섭행 때는 알 수 없다”고 하면서 해당 관서의 제조를 파직하고, 살쪘다고 면전에서 임금을 속인 장생령을 섬으로 유배 보내는 법을 시행하라고 명하였다. 영조 24년 10월에 태묘에 갔는데, 성생위에서 희생을 보니 소가 수척하고 작았다. 이에 전생서 제조를 체직시키고, 낭청은 나처하라고 하였다가 환수하였다. 영조 38년에도 염소와 양의 몸통이 작았다는 이유로 제조를 파직시켰다. 그런데 그 이듬해에 흑우가 몸집이 큰 것을 보고 그 전해의 흑우는 몸집이 작은 것을 올렸음을 알고서 전생서제조와 제주목사를 종중추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각 왕대별로 많이 있었다. 영조 25년에는 대축이 희생의 살짐을 고함이 성실치 않았기 때문에 행사가 끝난 후 멀리 정배시킨 적이 있었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class groupName partName label hangeul hanja english infoUrl iconUrl note
희생_관리부실 Event 행사 종묘제례 희생_관리부실(犧牲_管理不實) 희생_관리부실 犧牲_管理不實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희생_관리부실 2022:박지윤

Contextual Relations

source target relation attribute note
종묘제례 종묘 isHeldAt
종묘 종묘_전사청 hasPart
종묘-전사청 성생위 isNear
희생_관리부실 성생위 isRelatedTo
장생령 희생_관리부실 participatesIn
희생_관리부실 희생_도축 isRelatedTo

Web Resource

type resource title description/caption URL
참고 고궁과 왕릉 전사청 일원 https://cafe.daum.net/Catholicsungnea9/SSxS/48?q=%EC%84%B1%EC%83%9D%EC%9C%84&re=1
참고 국내나들이/문화재를 찾아 정묘 전사청 일원 https://kieury.tistory.com/11306759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id type bibliographic index online resource url
ISBN:899515201X 단행본 종묘제례보존회, 『종묘 종묘제례』, 서울: 종묘제례보존회, 2005 https://www.nl.go.kr/NL/search/printMarcPop.do?viewKey=45621879&viewType=AH1
  • id: 인용전거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