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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1-R0-02 | 개항기의 신식 화폐]] 》 신식화폐의 제조와 조례 제정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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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1-R0-02 | 개항기의 신식 화폐]] 》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화폐'''=
  
 
==Story==
 
==Story==
*경성전환국 설립(1환은화, 5문 적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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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근대적 상설 조폐 기관인 경성 전환국(典圜局)은 1883년 7월에 설립되었다.전환국 설립 이전에는 그때그때의 편의에 따라 임시로 설치한 주전소 에서 화폐가 주조되었으나 당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상설 조폐 기관이 필요하게 되었다. 첫째, 우리나라의 화폐는 가치가 불안정하고 운송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유통량도 부족하여 개항 이후 여러 나라와 통상 조약을 체결하면서 화폐 제도를 근대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여러 선진국의 화폐 제도를 참고하여 근대적 화폐 제도를 도입하고 신식 화폐를 주조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종래의 임시로 설치된 주전소와는 달리 규모가 크고 정밀한 조폐 설비를 수용할 수 있는 독립된 상설 조폐 기관의 설치가 필수적이었다. 둘째, 다원화된 화폐 주조 사업의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여 조정이 직접 주조 사업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중앙 집권적이고도 독점적으로 주화를 제조·발행함으로써 화폐 정책을 보다 안정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었다. 셋째, 개항 이후 국가 재정이 한층 더 궁핍해지고 있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다량의 화폐를 지속적으로 주조해야 할 형편이었다.<ref>[https://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78067&bbsId=BBSMSTR_1021 『고대부터 대한제국 시대까지 한국의 화폐』], 한국은행, 2006, 54쪽. </ref><br>
최초의 근대적 상설 조폐 기관인 전환국(典圜局)은 1883년 7월에 설립되 었다.전환국 설립 이전에는 그때그때의 편의에 따라 임시로 설치한 주전소 에서 화폐가 주조되었으나 당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상설 조폐 기관이 필 요하게 되었다. 첫째, 우리나라의 화폐는 가치가 불안정하고 운송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유통량도 부족하여 개항 이후 여러 나라와 통상 조약을 체결하면서 화폐 제도를 근대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여러 선진국의 화폐 제도를 참고하여 근대적 화폐 제도를 도입하고 신식 화폐를 주조하고자 하였다. 이 를 위해서는 종래의 임시로 설치된 주전소와는 달리 규모가 크고 정밀한 조폐 설비를 수용할 수 있는 독립된 상설 조폐 기관의 설치가 필수적이었 다. 둘째, 다원화된 화폐 주조 사업의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여 조정이 직접 주조 사업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중앙 집권적이고도 독점적으로 주화를 제 조·발행함으로써 화폐 정책을 보다 안정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었다. 셋째, 개항 이후 국가 재정이 한층 더 궁핍해지고 있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다량의 화폐를 지속적으로 주조해야 할 형편이었다.(54쪽) 당시 정부는 독일에서 신식 조폐기기를 들여오는 등 신식 주화 발행에 열의를 보였으나 ‘개국 497년’이라는 연호가 새겨진 5문과 10문 적동화, 1환 은화를 소수 발행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1886년(고종 23년) 조선 왕조는 외국과의 통상에 없어서는 안 될 근대 화폐 제조의 필요성을 느끼고 묄렌도르프의 건의에 따라 거액의 외국 자본으로 독일에서 조폐기기를 수입했다. 압인기에 의해 제조된 최초의 주화는 1888년 ‘개국 497년’이란 연호가 표시된 1환 은화와 10문, 5문 적동화였다. 이 주화들의 앞면 상단에는 태극장을 넣었고, 좌우에는 조선 왕조를 상징하는 오얏나무 가지를 교차시켰다. 뒷면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쌍룡과 조선 왕조의 개국년기가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때 발행된 화폐는 시주(詩鑄) 화폐의 구실을 했을 뿐 일반에서는 거의 통용되지 못했다. 또한 금, 은의 보유량이 절대 부족했고, 조폐 이익도 그다지 크지 않아서 최초로 발행된 신식 화폐는 얼마 가지 않아 주조가 중단되었다. 화폐 제조가 중단됨으로 인해 압인기를 비롯한 조폐기기들 역시 별다른 쓸모가 없어지고 말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성전환국 (한국의 박물관: 화폐, 2001. 6. 28., 한국박물관연구회)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83221&cid=42962&categoryId=4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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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부는 독일에서 신식 조폐기기를 들여오는 등 신식 주화 발행에 열의를 보였으나 ‘개국 497년’이라는 연호가 새겨진 5문과 10문 적동화, 1환 은화를 소수 발행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1886년(고종 23년) 조선 왕조는 외국과의 통상에 없어서는 안 될 근대 화폐 제조의 필요성을 느끼고 묄렌도르프의 건의에 따라 거액의 외국 자본으로 독일에서 조폐기기를 수입했다. 압인기에 의해 제조된 최초의 주화는 1888년 ‘개국 497년’이란 연호가 표시된 1환 은화와 10문, 5문 적동화였다. 이 주화들의 앞면 상단에는 태극장을 넣었고, 좌우에는 조선 왕조를 상징하는 오얏나무 가지를 교차시켰다. 뒷면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쌍룡과 조선 왕조의 개국년기가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때 발행된 화폐는 시주(詩鑄) 화폐의 구실을 했을 뿐 일반에서는 거의 통용되지 못했다. 또한 금, 은의 보유량이 절대 부족했고, 조폐 이익도 그다지 크지 않아서 최초로 발행된 신식 화폐는 얼마 가지 않아 주조가 중단되었다. 화폐 제조가 중단됨으로 인해 압인기를 비롯한 조폐기기들 역시 별다른 쓸모가 없어지고 말았다. <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83221&cid=42962&categoryId=44338 네이버 지식백과> 경성전환국 (한국의 박물관: 화폐, 2001. 6. 28., 한국박물관연구회) </ref>
 
 
*신식화폐조례의 제정 시도(1냥은화, 5냥은화, 2전5푼 백동화, 5푼 적동화, 1푼 황동화): 은본위화폐제 도입을 위해.
 
1891년에 은본위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첫 시도로서 일본 제58은행장 오오미와 죠우베(大三輪長兵衛)가 제안하고 전환국 방판(幇判) 안경수(安駉 壽, ?~1900년)와 당시의 주일 공사 김가진(金嘉鎭, 1846~1922년)이 주도하 여 「신식화폐조례(新式貨幣條例)」가 입안되었다. 조례에 따르면 본위 화폐를 5냥 은화와 1냥 은화 둘로 정하되, 전자는 외 국인 전용으로 사용하고, 후자는 내국인의 거래에 사용토록 하였다. 화폐 액면간 교환 비율은 1냥을 10전, 1전을 10푼으로 하는 종래의 10진법이 계 승되었다. 이 밖에 화폐 발행권을 전환국 이외에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이 조례에 의거하여 1892년 12월에 1냥 은화, 5냥 은화, 2전 5푼 백동화, 5푼 적동화, 1푼 황동화가 인천전환국에서 제조되었 다. 그러나 이 조례는 청나라를 비롯한 외국의 부당한 간섭과 국내 수구파의 반대로 공포되지 못하고 결국 하나의 시도로 끝나고 말았다. 아울러 이를 근거로 제조된 근대 화폐들도 발행되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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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4일 (목) 13:58 기준 최신판

개항기의 신식 화폐 》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화폐

Story

최초의 근대적 상설 조폐 기관인 경성 전환국(典圜局)은 1883년 7월에 설립되었다.전환국 설립 이전에는 그때그때의 편의에 따라 임시로 설치한 주전소 에서 화폐가 주조되었으나 당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상설 조폐 기관이 필요하게 되었다. 첫째, 우리나라의 화폐는 가치가 불안정하고 운송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유통량도 부족하여 개항 이후 여러 나라와 통상 조약을 체결하면서 화폐 제도를 근대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여러 선진국의 화폐 제도를 참고하여 근대적 화폐 제도를 도입하고 신식 화폐를 주조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종래의 임시로 설치된 주전소와는 달리 규모가 크고 정밀한 조폐 설비를 수용할 수 있는 독립된 상설 조폐 기관의 설치가 필수적이었다. 둘째, 다원화된 화폐 주조 사업의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여 조정이 직접 주조 사업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중앙 집권적이고도 독점적으로 주화를 제조·발행함으로써 화폐 정책을 보다 안정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었다. 셋째, 개항 이후 국가 재정이 한층 더 궁핍해지고 있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다량의 화폐를 지속적으로 주조해야 할 형편이었다.[1]
당시 정부는 독일에서 신식 조폐기기를 들여오는 등 신식 주화 발행에 열의를 보였으나 ‘개국 497년’이라는 연호가 새겨진 5문과 10문 적동화, 1환 은화를 소수 발행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1886년(고종 23년) 조선 왕조는 외국과의 통상에 없어서는 안 될 근대 화폐 제조의 필요성을 느끼고 묄렌도르프의 건의에 따라 거액의 외국 자본으로 독일에서 조폐기기를 수입했다. 압인기에 의해 제조된 최초의 주화는 1888년 ‘개국 497년’이란 연호가 표시된 1환 은화와 10문, 5문 적동화였다. 이 주화들의 앞면 상단에는 태극장을 넣었고, 좌우에는 조선 왕조를 상징하는 오얏나무 가지를 교차시켰다. 뒷면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쌍룡과 조선 왕조의 개국년기가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때 발행된 화폐는 시주(詩鑄) 화폐의 구실을 했을 뿐 일반에서는 거의 통용되지 못했다. 또한 금, 은의 보유량이 절대 부족했고, 조폐 이익도 그다지 크지 않아서 최초로 발행된 신식 화폐는 얼마 가지 않아 주조가 중단되었다. 화폐 제조가 중단됨으로 인해 압인기를 비롯한 조폐기기들 역시 별다른 쓸모가 없어지고 말았다. [2]

Semantic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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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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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1. 『고대부터 대한제국 시대까지 한국의 화폐』, 한국은행, 2006, 54쪽.
  2.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83221&cid=42962&categoryId=44338 네이버 지식백과> 경성전환국 (한국의 박물관: 화폐, 2001. 6. 28., 한국박물관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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