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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1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식(왕의 혼례)
 
h1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식(왕의 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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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3 영조는 1759년(영조 35) 6월에 정순왕후(貞純王后)를 계비로 맞이했다. 영조에게는 정빈 이씨와 영빈 이씨 등 후궁이 있었다. 정빈 이씨는 효장세자의 어머니이고, 영빈 이씨는 장헌세자의 어머니이자 후에 정조가 될 원손의 할머니로 영조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영빈 이씨는 장희빈의 횡포를 경험한 숙종이 후궁이 왕비가 되는 길을 제도적으로 막아 버려 왕비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66세의 노년임에도 중궁전을 비워둘 수 없어 새 왕비를 맞이했다. 5월에 우의정 신만(申晩)을 도제조로 하는 가례도감이 설치되었고, 6월 9일 창경궁 통명전에서 간택을 하여 김한구(金漢耉)의 딸(당시 15세)이 최종 선택되었다. 6월 13일 신부의 집에 청혼서를 보내는 납채, 6월 17일 신부집에 예물을 보내는 납폐, 6월 19일 가례의 일자를 알리는 고기, 6월 20일 신부를 왕비로 책봉하는 책비는 모두 창경궁 명정전에서 치뤄졌다. 6월 22일 어의궁에서 왕비 수업을 받고 있는 왕비를 궁으로 데리고 오는 친영의 예식을 행했다. 왕비와 술과 음식을 나누는 동뢰는 창경궁 통명전에서 거행되었다. 혼례의 마지막 절차로 영조와 정순왕후는 종묘의 선대왕들에게 인사를 올리는 묘현례를 행했다. 이 혼인의 모든 과정은 『영조정순왕후가례도감의궤』에 기록되었다. 이 책에는 영조가 신부 정순왕후를 데리고 궁으로 가는 장면을 그린 50면의 「친영반차도」가 실려 있는데, 등장하는 말이 대략 390필, 참여자가 1,118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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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종묘_정전 dcterms:hasP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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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3일 (수) 09:10 기준 최신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