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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영조 4)】. 숭례문 헌괵의(崇禮門 獻馘儀).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진압된 뒤 전쟁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숭례문에서 선로포의와 더불어 헌괵의가 시행되었다. 선로포의가 승리의 과정을 쓴 노포를 내건 것이라면 헌괵의는 적의 머리를 내걸어 국왕의 권위를 현시하고자 한 것이다. 반란군은 3월 24일 안성과 죽산에서 관군에 의해 격파되었고, 청주, 영남, 호남 등에 남아 있던 무리들도 모두 무너졌다. 난을 진압하는데 당시 병조판서 오명항의 공이 컸다. 오명항은 적에게 승리한 사실을 노포(베나 비단)에 적어 왕에게 바친 뒤에 다시 적장의 머리를 베어 왕에게 바친 뒤에 성 밖에 내걸어 놓는 의례를 치렀다. 누각의 정중앙에 왕의 어좌를 남향하여 설치해 놓는다. 병조는 헌괵, 즉 적의 머리를 바치기 위한 헌괵계(獻馘階)를 문 밖에 설치하고, 괵을 매다는 장대인 헌괵간(獻馘 竿)을 연지(蓮池) 주변에 마련해 놓는다. 헌괵장교가 괵을 가진 군인을 이끌고 헌괵계 앞에 선다. 헌괵장교는 적의 머리를 담은 괵함을 수괵관에게 준다. 수괵관은 이를 헌괵계에 올려놓고 살핀다. 살피기를 마치면 어좌 앞에 나아가 수급(首級)이 실제의 것임을 왕에게 아뢴 후 이를 헌괵간에 매달도록 한다. 이러한 절차를 모두 마치면 각자의 자리에 서서 왕에게 4번 절한 후 의식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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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영조 4)】. 숭례문 헌괵의(崇禮門 獻馘儀).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진압된 뒤 전쟁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숭례문에서 선로포의와 더불어 헌괵의가 시행되었다. 헌괵의는 적의 머리를 내걸어 국왕의 권위를 현시하고자 한 것이다. 반란군은 3월 24일 안성과 죽산에서 관군에 의해 격파되었고, 오명항은 적에게 승리한 사실을 노포(베나 비단)에 적어 왕에게 바친다. 그리고 다시 적장의 머리를 베어 왕에게 바친 뒤에 성 밖에 내걸어 놓는 의례를 치렀다. 병조는 헌괵, 즉 적의 머리를 바치기 위한 헌괵계(獻馘階)를 문 밖에 설치하고, 괵을 매다는 장대인 헌괵간(獻馘 竿)을 연지(蓮池) 주변에 마련해 놓았다. 헌괵장교가 괵을 가진 군인을 이끌고 헌괵계 앞에 선다. 헌괵장교는 적의 머리를 담은 괵함을 수괵관에게 준다. 수괵관은 이를 헌괵계에 올려놓고 살핀다. 살피기를 마치면 어좌 앞에 나아가 수급(首級)이 실제의 것임을 왕에게 아뢴 후 이를 헌괵간에 매달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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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31일 (토) 15:55 기준 최신판

Definition

【1728년(영조 4)】. 숭례문 헌괵의(崇禮門 獻馘儀).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진압된 뒤 전쟁의 승리를 알리기 위해 숭례문에서 선로포의와 더불어 헌괵의가 시행되었다. 헌괵의는 적의 머리를 내걸어 국왕의 권위를 현시하고자 한 것이다. 반란군은 3월 24일 안성과 죽산에서 관군에 의해 격파되었고, 오명항은 적에게 승리한 사실을 노포(베나 비단)에 적어 왕에게 바친다. 그리고 다시 적장의 머리를 베어 왕에게 바친 뒤에 성 밖에 내걸어 놓는 의례를 치렀다. 병조는 헌괵, 즉 적의 머리를 바치기 위한 헌괵계(獻馘階)를 문 밖에 설치하고, 괵을 매다는 장대인 헌괵간(獻馘 竿)을 연지(蓮池) 주변에 마련해 놓았다. 헌괵장교가 괵을 가진 군인을 이끌고 헌괵계 앞에 선다. 헌괵장교는 적의 머리를 담은 괵함을 수괵관에게 준다. 수괵관은 이를 헌괵계에 올려놓고 살핀다. 살피기를 마치면 어좌 앞에 나아가 수급(首級)이 실제의 것임을 왕에게 아뢴 후 이를 헌괵간에 매달도록 하였다.

Semantic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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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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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헌괵의 숭례문 선로포의 isRelatedTo
숭례문 헌괵의 이괄의 난 isRelated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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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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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한국문화사>의례와 상징>숭례문에서 행한 선로포의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m/view.do?levelId=km_034_0030_0030_0050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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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이왕무, 『조선왕실의 군사의례』, 세창출판사, 2019
도록 국립고궁박물관, 『군사의례: 조선왕실 군사력의 상징』, 국립고궁박물관, 2020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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