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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2일 (수) 10:03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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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조선의 창경궁 통명전에서는 순원왕후의 육순과 신정왕후의 망오를 축하하는 무신년 진찬이 거행되었다. 이 중대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순원왕후는 연향의 예복을 입었다. 이 복장은 당시 궁중의 화려함과 엄숙함을 동시에 나타내는 중요한 문화적 상징이었다.
연향의 예복 구성은 남스란치마, 대수, 면사, 반회장저고리, 봉스란전행웃치마, 분홍저고리, 자적대란치마, 자적색별의, 적말, 적석, 족두리, 폐슬-적의, 하피 등 다양한 의복과 장신구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부분은 조선 후기의 복식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3D 모델링 기술을 통해 이러한 복식의 디테일이 재현되었다. 남스란치마의 우아한 선, 대수의 위엄, 면사의 섬세함, 반회장저고리의 정교함 등이 3D 모델로 구현되어, 오늘날에도 그 시대의 영광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순원왕후는 이 예복을 입고 무신년 진찬에 참여하였다. 이 복장은 그녀가 참여한 1828년 무자년 진작과 1848년 무신년 진찬에서도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순원왕후가 이 중요한 궁중 행사에 어떻게 참여했는지, 그리고 그녀의 의복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보여준다.
무신년 진찬은 단순히 왕실의 행사가 아니라, 조선 후기 사회와 문화의 복잡한 양상을 반영하는 사건이었다. 순원왕후의 예복은 그 시대의 궁중 문화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의 예복이 가진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오늘날에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