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0-R1-01D"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 #Links S0-503 E0-503A hasContextualElement S0-503 E0-503B hasContextualElement S0-503 E0-503C hasContextualElement S0-503 E0-503D hasContextualElement S0-503 E0-503E hasCont...) |
|||
(사용자 2명의 중간 판 11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 | <!-- | ||
#Links | #Links | ||
− | + | E0-R1-01D 조선_태종 hasContextualElement | |
− | + | E0-R1-01D 창덕궁 hasContextualElement | |
− | + | E0-R1-01D 조준 hasContextualElement | |
− | + | E0-R1-01D 한양환도 hasContextualElement | |
− | + | E0-R1-01D sillok:kca_10508003_001 hasContextualElement | |
+ | E0-R1-01D sillok:kca_10508009_001 hasContextualElement | ||
+ | E0-R1-01D sillok:kca_10508011_002 hasContextualElement | ||
+ | |||
+ | |||
+ | |||
+ | #End | ||
--> | --> | ||
− | =''' | + | ='''[[S2022-R1-01 | 창덕궁의 탄생]] 》한양 환도'''= |
==Story== | ==Story== | ||
− | 태종은 1405년(태종 5) 8월 3일 한양의 이궁이 어느정도 완성되어 가자 한양으로의 환도를 준비했다. 의정부에 환도에 대해 의논하라고 하니 흉년을 이유로 반대했다. 태종은 남경 즉 한양이 이씨 왕조의 터라는 | + | 태종은 1405년(태종 5) 8월 3일 한양의 이궁이 어느정도 완성되어 가자 한양으로의 환도를 준비했다. 의정부에 환도에 대해 의논하라고 하니 흉년을 이유로 반대했다. 태종은 남경 즉 한양이 이씨 왕조의 터라는 음양서 내용을 종묘에 물어 답을 얻었다고 하며 강력하게 환도를 주장한다. 물론 이때 이미 이궁이 거의 완성됐다는 것이 환도 주장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었다. 이로부터 두 달 후인 10월 11일 태종은 한양에 도착하고 종묘에 나아가 알현했다. 그러나 이날 바로 이궁 창덕궁에 입궐한 것은 아니고 최종 완성되기 며칠간은 조준의 집에 머물렀다. |
− | + | ||
==Semantic Data== | ==Semantic Data== | ||
20번째 줄: | 26번째 줄: | ||
! style="width:100px" |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note | ! style="width:100px" |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note | ||
|- | |- | ||
− | | [[E0-R1-01D]] || Story || Storyline || || | + | | [[E0-R1-01D]] || Story || Storyline || || 한양 환도 || 한양 환도 || ||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0-R1-01D || <html><img src="http://dh.aks.ac.kr/~hanyang2/icon/storyline.png"/></html> || 2022: 이순구 |
|- | |- | ||
|} | |} | ||
32번째 줄: | 38번째 줄: | ||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note |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note | ||
|- | |- | ||
− | | [[E0-R1-01D]] || [[ | + | | [[E0-R1-01D]] || [[조선_태종]] || [[isRelatedTo]] || || |
|- | |- | ||
− | | [[E0-R1-01D]] || [[ | + | | [[E0-R1-01D]] || [[창덕궁]] || [[isRelatedTo]] || || |
+ | |- | ||
+ | | [[E0-R1-01D]] || [[조준]] || [[isRelatedTo]] || || | ||
|- | |- | ||
|} | |} | ||
64번째 줄: | 72번째 줄: | ||
<references/> | <references/> | ||
+ | ==Story Network Graph== | ||
+ | |||
+ | {{StoryGraph | key=E0-R1-01D}} | ||
[[분류:한양도성타임머신 2022]] [[분류:Story]] [[분류:2022:이순구]] | [[분류:한양도성타임머신 2022]] [[분류:Story]] [[분류:2022:이순구]] |
2023년 2월 7일 (화) 13:16 기준 최신판
목차
창덕궁의 탄생 》한양 환도
Story
태종은 1405년(태종 5) 8월 3일 한양의 이궁이 어느정도 완성되어 가자 한양으로의 환도를 준비했다. 의정부에 환도에 대해 의논하라고 하니 흉년을 이유로 반대했다. 태종은 남경 즉 한양이 이씨 왕조의 터라는 음양서 내용을 종묘에 물어 답을 얻었다고 하며 강력하게 환도를 주장한다. 물론 이때 이미 이궁이 거의 완성됐다는 것이 환도 주장의 가장 중요한 배경이었다. 이로부터 두 달 후인 10월 11일 태종은 한양에 도착하고 종묘에 나아가 알현했다. 그러나 이날 바로 이궁 창덕궁에 입궐한 것은 아니고 최종 완성되기 며칠간은 조준의 집에 머물렀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note |
---|---|---|---|---|---|---|---|---|---|---|
E0-R1-01D | Story | Storyline | 한양 환도 | 한양 환도 | http://dh.aks.ac.kr/hanyang2/wiki/index.php/E0-R1-01D | 2022: 이순구 |
Contextu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note |
---|---|---|---|---|
E0-R1-01D | 조선_태종 | isRelatedTo | ||
E0-R1-01D | 창덕궁 | isRelatedTo | ||
E0-R1-01D | 조준 | isRelatedTo |
Web Resource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id | type | bibliographic index | online resource | url |
---|
- id: 인용전거
- type: 단행본, 논문, 도록, 자료집
-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Story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