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자료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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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광화문, 6조거리, 종친부, 사직단 등의 고건축물과 해당 고건축물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 행사, 물품, 인물, 복식의 복원 및 재현은 조선왕실 고문헌자료 및 근대(일제강점기) 기록물에 근거한 정밀한 고증의 과정을 통해 수행할 것이다. 이러한 고증 작업의 근거 자료로 활용할 기록물은 다음과 같다.

경복궁/광화문

경복궁은 조선왕조의 건립에 따라 창건된 조선 전기의 정궁(正宮)이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조선 말기 고종 때 중건되어 다시 궁궐로 이용되었다.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으나, 많은 부분이 복원되고 있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쪽 정문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고종 때 중건하였으나, 일제에 의해 위치가 변경되었고, 6.25때 파손되었다가, 1968년과 2010년에 두 차례 복원되었다.

경복궁의 실측, 복원 자료

경복궁 내 복원 및 실측된 건조물 (고종 때 중건된 규모의 약 25%로 추정)

소주방권역, 사정전, 천추전, 만춘전, 사정문, 향오문, 부속 행각, 향원정, 석조조형물 실측도면(근정전 품계석·서수상, 경회루 석주·서수상, 교태전 석물, 자경전 서수상, 향원정 거북수조, 집옥재 서수상·용판석, 광화문 해치상, 영제교 난간석주 용상, 영제교 서수상, 근정문 답도 서수상, 근정전 답도 서수상 등), 동십자각, 자경전, 청연루, 협경당, 복안당, 행각, 협문, 풍기대, 함화당, 집경당, 건천궁, 태원전, 영사재, 공묵재, 숙문당, 경안문, 행각, 건숙문, 광림문, 세답방, 사주문, 집옥재, 협길당, 팔우정, 동궁(자선당, 비현각), 흥례문, 유화문, 기별청, 영제교, 근정전, 근정문, 경회루, 제수합, 수정전, 흥복전, 강녕전, 연생전, 경성전, 연길당, 응지당, 동서행각, 교태전, 건순각, 원길헌, 함홍각, 체인당, 승순당, 보선당, 내순당, 양의문, 흠경각, 함원전

관련 자료

자료명 간행시기 내용 비고 소장처
1 북궐도형(北闕圖形) 19세기 말 경복궁의 평면 배치도. 대원군이 1865년 경복궁을 중건한 뒤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고궁박물관
2 궁궐지(宮闕志) 17∼18세기(조선 숙종 연간), 19세기(조선 고종 연간) 조선시대 궁궐의 각 전각의 명칭·위치·연혁을 기록한 사적기 장서각, 규장각
3 조선고적도보(朝鮮古跡圖譜) 1933년 조선총독부가 한국의 고적조사사업을 진행하고 그 성과를 사진과 도면으로 간행한 책.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청 실측조사보고서

  • 『경복궁 건천궁 중건보고서』
  • 『경복궁 경회루 창호복원공사 수리보고서』
  • 『경복궁 광화문』
  • 『경복궁 근정전』
  • 『경복궁 녹산지역 발굴조사보고서』
  • 『경복궁 동십자각 실측조사보고서』
  • 『경복궁 발굴조사보고서』<협생문지, 영군직소지, 초관처소지, 용성문지, 서수문장청지, 궁장지, 광화문지, 월대지, 어도지>
  • 『경복궁 복원기본계획』
  • 『경복궁 사정전 권역 수리보고서』
  • 『경복궁 사정전일곽 정밀실측보고서』
  • 『경복궁 석조조형물 연도별 문화콘텐츠화 방안』
  • 『경복궁 석조조형물 학술연구 및 보존관리방안 연구』
  • 『경복궁 소주방 활용계획수립연구』
  • 『경복궁 소주방』
  • 『경복궁 소주방권역 중건보고서』
  • 『경복궁 수목대장』
  • 『경복궁 수환경조사보고서』
  • 『경복궁 자경전 및 자경전 십장생 굴뚝 실측조사보고서』
  • 『경복궁 醬庫址 정비계획 학술조사연구』
  • 『경복궁 집옥재』
  • 『경복궁 취향교지 발굴조사보고서』
  • 『경복궁 태원전 권역 중건보고서』
  • 『경복궁 태원전 권역』
  • 『경복궁 흥복전 주변지역 발굴조사보고서』
  • 『경복궁 흥복전 주변지역발굴조사보고서』
  • 『경복궁』<함화당·집경당 권역 보수복원공사 보고서>
  • 『경복궁발굴조사보고서』<소주방지, 흥복전지, 함화당·집경당 행각지>
  • 『경복궁변천사』
  • 『경복궁영건일기』 번역본
  • 『고궁 건물막새 등 문양조사』
  • 『궁궐 조형물 교육홍보용 문화콘텐츠활용 웹사이트개발』
  • 『궁궐 특성에 따른 이용자 분석조사연구』
  • 『보물 제1761호 경복궁 향원정 정밀실측보고서』
  • 『사진으로 보는 경복궁』
  • 『흥복전』

경복궁 중심 왕실 문화 재현 자료

자료명 간행시기 내용 비고 소장처
1 경복궁지 고종연간 경복궁의 연혁 규장각
2 경복궁창덕궁증건도감의궤 1901년 경복궁과 창덕궁에 소재한 선원전의 제1실을 증건한 전말을 기록한 의궤 태조·숙종·영조·정조·순조·문조·헌종 등 7실에 어진 봉안 장서각
3 경복궁창덕궁증건도감의궤 1901년 경복궁과 창덕궁에 소재한 선원전의 제1실을 증건한 전말을 기록한 의궤 태조·숙종·영조·정조·순조·문조·헌종 등 7실에 어진 봉안 규장각
4 명성황후 국장·빈전혼전·산릉도감의궤 1905년 명성황후 시해 후 2개월 정도 지나 국장을 반포하고 빈전을 경복궁의 태원전, 혼전을 문경전으로 정하였다. 상장례의 진행 중에 아관파천 등으로 지연되다가 1896년 9월에 황후의 시신을 경운궁 경효전으로 옮겼으며 대한제국의 탄생으로 다시 늦추어지다가 1897년 11월에 발인하여 매장되었다. 염습과 성복까지 진행되다가 후에 경복궁에서 경운궁으로 시신을 옮기기까지의 의례 규장각
5 명성황후 발인반차도 1905년 명성왕후의 상례 발인 반차도.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에 실린 반차도와 내용은 같으나 크기가 한층 크다. 등장인원 2천여 명 장서각
6 보사공신 녹훈도감의궤 1680년(숙종6) 허견 등이 복선군을 왕으로 추대하려다가 발각된 반역사건을 제압한 공신들의 녹훈 의궤. 경복궁 북문 밖의 회맹단에서 회맹제를 지냄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
7 보인소의궤 1877년(고종14) 고종 10년과 13년 경복궁의 대화재로 소실된 보인(寶印)의 제작 내용 수록 장서각, 규장각
8 상호도감의궤 1872년(고종9)~1890년(고종27) 숙종·인경왕후·인현왕후·인원왕후·익종·신정왕후·효정왕후·철인왕후·명성왕후 등에게 존호나 시호를 올리는 의례 경복궁 근정전·강녕전 등에서 거행 장서각, 규장각
9 신정왕후 국장·빈전혼전·산릉·상호·부묘도감의궤 1892년(고종29) 익종의 비인 신정왕후의 상례 의궤. 신정왕후가 1890년(고종27) 4월에 승하하자, 경복궁의 태원전을 진전, 문경전을 혼전으로 삼았다. 발인·부묘반차도와 각종 채색도설이 다른 의궤에 비해 규모가 크다. 장서각, 규장각
10 의주등록 경복궁 친림 과거시험, 육상궁 등의 전배 등에 관한 의주 기록 장서각
11 의화군가례등록 1893년(고종30) 고종의 아들 의화군(귀인장씨 소생) 이강의 관례와 혼례 장서각
12 이십일공신회맹록 1728년(영조4) 경복궁 신무문 앞에서 회맹 장서각
13 자경전 진작정례의궤 1828년(순조28) 원손의 탄생을 경하하여 국왕과 왕비에게 존호를 올리고 자경전에서 진작례를 거행한 사실을 기록한 의궤이다. 연향 참석자, 기물 위치, 악기 배치, 음식재료와 양, 고임 높이, 조화(造花)의 종류와 수량 등 매우 상세한 시각자료 장서각
14 정축·정해·임진진찬의궤 1877년(고종14), 1886년(고종23), 1892년(고종29) 칠순과 망오 등을 맞은 대비 등에게 진찬하는 의례 근정전에서 존호를 올리고, 만경전·강녕전에서 진찬 장서각, 장서각
15 진연의궤 1902년 고종이 영조의 예에 따라 망육(望六)에 기로소에 입소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함녕전에서 설행한 외진연과 이후 이어진 내진연, 야진연, 황태자 회작(會酌)과 야연(夜讌) 등에 대한 기록이다. 반차도, 정재도, 악기도, 의장도, 복식도 등이 자세하며, 찬품과 채화, 기용 등의 항목도 수록. 규장각
16 친림(의)정부시의궤 고종2년 고종2년에 중건된 의정부에 고종이 친림한 사실에 대한 기록 규장각
17 친잠의궤 1767년(영조43) 영조 43년에 정순왕후가 경복궁의 후원에서 선잠제와 친잠례를 거행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제단도, 진설도, 채상단도, 각종 잠구(蠶具)의 도해, 제기도 등이 자세하다. 장서각, 규장각
18 태조원종이모도감의궤 1872년(고종9) 개국 8주갑 기념으로 태조와 원종의 어진을 모사하는 작업 거행 경복궁 태원전에서 이모 장서각, 규장각
19 환어경복궁시 중궁전 출궁의(還御景福宮時中宮殿出宮儀) 미상 왕이 경복궁으로 돌아올 때 왕비가 나가서 맞이하는 의식을 정리한 책 규장각

육조거리

육조거리는 조선시대 의정부와 6조를 비롯한 주요 관청들이 들어서 있던 거리로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에서 현재의 광화문 4거리까지 조성된 대로를 말한다.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중요 관청들이 있던 곳으로 조선시대에 국가를 상징하는 거리였다고 할 수 있다.

육조 거리의 건조물 복원, 재현을 위한 자료

  • 광화문외 제관아 실측평면도(1908년, 융희2년), 국가기록원 소장
  • 『사진으로 보는 경복궁』 (문화재청, 2019) 수록 사진자료
  • 유리원판사진자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08(융희2년) 기준 육조거리의 주요 관아 건조물

위치 조선시대 관부 대한제국기/일제강점기 관부
1 광화문 동편 의정부 → 내부(內部)
2 이조 → 외부 → 통감부(統監府) 법무원(法務院)
3 한성부 → 학부(學部)
4 호조 → 탁지부(度支部)
5 기로소 → 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 농상공부(農商工部)
6 사복시 ※ 이조·한성부·호조 뒤에 위치
7 광화문 서편 예조 → 삼군부 → 근위보병대(近衛步兵隊)
8 중추부 → 경시청 부속청사
9 사헌부 → 경부(警部) → 경시청(警視廳)
10 병조 → 군부(軍部)
11 형조 → 법부(法部)
12 공조 → 통감부 통신관리국(通信管理局), 통신원(通信院)

육조거리 관아의 조선시대 관원 활동 재현을 위한 자료

자료명 간행시기 내용 비고 소장처
1 공방등록 1869년~ 1869년(고종6) 이후의 사복시의 업무 관련 기록 장서각
2 수부등록 1854년~1867년 1854년부터 1867년까지 공조와 그 속아문의 업무 기록 장서각
3 입조록 저술: 1849~1885 이재원의 관원생활 일기.
저자는 대원군의 조카로 고종조에 6조의 판서를 역임.
궁중에서 일어난 잡다한 일들을 비롯하여, 관원들의 체직·보임 상황에 이르기까지 그때그때의 사실을 동시대 관원의 안목으로 세밀하게 기록.
6조 장서각
4 이재난고 저술: 1738~1791 황윤석이 육조거리 소재 사복시에서의 관직생활 일기 수록 사복시 장서각
5 (숙종기해)진연의궤 1719년(숙종45) 숙종이 59세 되는 해를 기념하여 기로소에 입소한 것을 축하하면서 베푼 진연에 관한 기록 기로소 규장각
6 (갑자)진연의궤 1744년(영조20) 영조가 51세 된 해로서 기로소에 입소한 것을 축하하는 진연을 거행하고 그 전말을 기록한 의궤 기로소 규장각

종친부

종친부는 조선시대 역대 왕의 계보(족보)와 초상화,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왕실의 친척(종친)에 대한 예우와 인사문제를 담당하던 관서이다. 실권은 크지 않았으나, 같은 정1품 아문인 의정부보다 서열이 높아 명목상 조선의 최고 관서였다.

종친부의 건조물 실측, 복원, 재현을 위한 자료

  • 현존 건물 - 종친부 건물의 일부인 경근당(63.45평) 왼쪽 익사(翼舍)인 옥첩당(32.84평)이 2013년에 복원되었으며, 실측보고가 이루어졌다. (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이전, 복원 수리보고서』, 문화재청, 2013)
  • 경근당의 왼쪽에도 익사인 이승당(貳丞堂), 왕실족보를 보존하는 선원보각 등의 건물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다. 이러한 건물의 복원의 활용할 수 있는 다수의 사진 자료가 있다.
  • 『숙천제아도』에 수록된 종친부(한필교 그림, 1870년경, 하버드대 옌칭도서관 소장)

종친부의 활동 재현을 위한 자료

자료명 간행시기 내용 비고 소장처
1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 1679년~1908년 왕의 직계 족보인 『선원록』, 왕의 종친들의 족보인 『종친록』, 종친의 여자와 서자들까지 포함한 족보인 『유부록』을 종합하여 왕의 내외 후손 모두 동일하게 6대까지 조사하여 기록한 족보이다. 숙종대인 1679년부터 1908년까지 230년에 걸쳐 작성되었다. 장서각
2 선원록(璿源錄) 조선시대에 왕의 일정한 범위 안에 있는 자손을 수록한 왕실 보첩(譜牒) 장서각
3 종친록(宗親錄) 왕의 종친들의 족보 장서각
4 유부록(類附錄) 종친의 딸과 서자들의 자손을 기록한 족보 장서각
5 종친부조례 1870년(고종7) 종친부의 건치, 고사 등 조례를 모아놓은 책 규장각
6 宗親府禮木冊 1867년(高宗 4) 의정부에서 작성한 전국의 지방관이 왕실사무를 관장하는 종친부에 바쳐야하는 禮木을 규정한 책 규장각
7 종친부종회절목 미상 宗會 개최에 필요한 의례절차, 宗會構成 등 제반 儀典에 관한 사항을 마련한 節目 규장각
8 종친부파보청등록 1864년(고종1) 선원보를 수정하면서 各派의 수록대상자가 거주한 각 부목군현에 보낸, 파보단자와 비용을 上送하라는 關文들을 모은 책 규장각
9 종친부등록 1894년(고종31) 1756년(英祖 32)부터 1909년(隆熙 3)까지 宗親府에 관계되는 모든 사실을 적은 謄錄 규장각
10 무진진찬의궤 1869년(고종6) 익종과 신정왕후 조씨의 회갑잔치 진찬소를 종친부에 설치 규장각

왕과 왕비의 의복 관련 자료

자료명 간행시기 내용 비고 소장처
1 상방정례(尙方定例) 1750년(영조 26) 상의원에서 국왕을 비롯한 왕실 각 전·궁에 연례로 진배하는 법복과 그 밖의 의대, 장신구 등의 물종을 이정해 놓은 정례서 장서각
2 어의대목록(御衣對目錄) 1933년 왕실 의복을 새롭게 제작한 내역을 기록한 목록 장서각
3 어의대차청구서(御衣襨次請求書) 1933년 이왕직 주전과에서 작성한 御衣襨의 청구서 장서각
4 대전 의복 발기(1893年 大殿 衣服件記) 1893년 물품의 이름을 목록으로 작성한 기록을 발기(件記)라고 한다. 의복 발기는 왕실 인물이 의례 때 착용한 의복의 복식 요소를 알 수 있게 하는 자료이다. 장서각
5 대전 의복 발기(大殿 衣服件記) 1893년 장서각
6 단오 의복 발기(1894年 端午 衣服件記) 1894년 장서각
7 정조 의복 발기(正朝 衣服件記) 1894년 장서각
8 정조 의대의복 발기(正朝 衣襨衣服件記) 1904년 장서각
9 대전 의대차 발기(大殿 衣襨次件記) 1906년 장서각
10 동지 영친왕의복 발기(冬至 英親王衣服件記) 1906년 장서각

사직단

사직단은 조선 시대에 국가에서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사직단은 ‘좌묘우사’(左廟右社:[왕의 시각을 기준으로] 왼쪽의 종묘, 오른쪽에 사직단)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한양도성 내에서 종묘(宗廟)와 더불어 그 위격이 매우 높은 시설 가운데 하나였다. 이곳에서 국왕이 중심이 되어 시행한 사직대제는 중농(重農)을 기틀로 삼고 백성들에게 권농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던 조선왕조에서 농본—민본—국본—왕도정치의 연결을 상징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사직단 건조물의 실측, 복원을 위한 자료

  • 사직단은 단유와 신실, 전사청이 복원되어 있음
  • 유리원판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으로 서문(西門), 제정(祭井), 재생정(宰牲亭), 수복방, 잡물고, 제기고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이사벨라 비숍(1831~1904)의 사진으로 악공청(추정)을 확인할 수 있다.(『사직단복원정비계획』, 문화재청, 2014 ; 『사직단정문실측조사보고서』, 문화재청, 2005)
  • 『사직서의궤』(1783년, 정조7) 「사직서전도」·「단유도설」

사직단에서 시행한 ‘사직대제’의 재현을 위한 자료

의궤 및 등록

자료명 간행시기 내용 비고 소장처
1 사직서의궤 1783(정조7) 사직단의 시설과 각종 의식의 식례(式例)·의절(儀節) 및 사실(史實) 등을 기록한 의궤. 정조의 명으로 사직단의 운영을 관장하던 사직서에서 편찬. 규장각
2 사직서의궤 1842(헌종8) 정조 때 의궤를 바탕으로 헌종 7년까지 사직서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수록 8종 규장각
3 사직종묘문묘제기도감의궤 1605(선조38) 1604年(宣祖 37) 10月부터 다음해 3月에 걸쳐서 사직, 종묘, 영녕전, 문묘 등의 제기(祭器)를 만든 과정을 기록한 의궤 규장각
4 사직서 등록 1661(현종2)~고종연간 사직서 운영 전반에 관한 기록 8종 규장각
5 제물 등록 사직단 등에서 올리는 제향의 제물에 대한 기록
6 기우제 등록 각종 재난 때 행한 제사의 제문

사직단의 행사 관련 『조선왕조실록』 기록 (재현 자료 예시 .... 총 560건)

문헌 내용
《태조실록》1권, 태조 1년(1392) 7월 28일 정미 사직단직(社稷壇直) 2명을 배치함.
《태조실록》1권, 태조 1년(1392) 8월 11일 경신 예조전서 조박의 상서로 사직 외 여러 제사를 거행하길 청함.
《태조실록》3권, 태조 2년(1393) 2월 10일 을유 권중화 등이 한양에 처음으로 사직단 터를 도면으로 그려 태조에게 바치다.
《태조실록》5권, 태조 3년(1394) 5월 6일 갑진 한재가 일어 사직에 기우제를 지내다.
《태조실록》6권, 태조 3년(1394) 11월 2일 무술 태조가 친히 사직의 터를 살피다.
《태조실록》7권, 태조 4년(1395) 1월 29일 갑자 사직단 영조를 시작하다.
《태조실록》7권, 태조 4년(1395) 2월 24일 무자 사직단 공사가 있었다.
《태조실록》8권, 태조 4년(1395) 11월 25일 을유 사직의 제관은 판중추 · 첨서 · 학사 등이 함께 논의하여 정하도록 함.
《태조실록》13권, 태조 7년(1398) 4월 21일 정유 사직에서 기우제를 지내다.
《태종실록》1권, 태종 1년(1401) 4월 30일 무자 가뭄으로 인해 사직에서 기우제를 지내다.
《태종실록》1권, 태종 1년(1401) 5월 11일 기해 기우제 이후 비가 내려 사직에 이를 감사하는 제사를 행하다.
《태종실록》4권, 태종 2년(1402) 7월 2일 계미 사직에 기우제를 지내다.
《태종실록》5권, 태종 3년(1403) 1월 8일 병술 개성으로 사직단을 옮기자는 사헌부의 청이 있었으나 불허되다.
《태종실록》7권, 태종 4년(1404) 5월 21일 신유 사직에서 기우제를 지내다.
《태종실록》9권, 태종 5년(1405) 3월 1일 병신 예조의 소속 아문으로 사직단이 분담되었다.
《태종실록》9권, 태종 5년(1405) 4월 8일 계유 사직 제사에 사용될 제복과 악기 구입을 위해 명나라 예부에 자문을 보내다.
《태종실록》9권, 태종 5년(1405) 5월 8일 임인 사직에 기우제를 지내다.
《태종실록》11권, 태종 6년(1406) 6월 5일 계해 한양 외 각 고을에 주현사직단을 건립하도록 하다.
《철종실록》12권, 철종 11년(1860) 1월 5일 경오 철종이 친히 사직에 나아가 재숙하다.
《철종실록》12권, 철종 11년(1860) 1월 6일 신미 철종이 친히 사직에서 기곡대제를 지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