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무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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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정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8월 8일 (토) 10:4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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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明)나라 태조가 1381년 중국 각지의 유학자들을 불러 모아 편찬한 국가의 예식집(禮式集)을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찍은 것이다. 편찬한 황제의 연호가 홍무(洪武, 1368~1398)를 따서 『홍무예제』라고 하였다. 고려 말 이후 세종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제정할 때까지 국가적 예법의 기준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조선 전기 예제(禮制)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1]

고려후기에서 조선전기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가적 예법을 기록한 예서. 1책. 목판본. 보물 제1079호. 원래 명나라 개국 이래의 예제(禮制)를 일신하기 위하여 각종 사전(祀典)을 상고하여 제작한 것으로, 홍무연간(洪武年間)에 간행, 반포되었는데, 진하례의(進賀禮儀)·출사례의(出使禮儀)·서압체식(署押體式)·관리봉급(官吏俸給) 등 11개 항목으로 분류하여 사례를 적고 있다. 이 『홍무예제』는 우리나라에서 다시 인출하여 고려 말 조선 초에 많이 실시되어 오다가, 세종조에 와서 이 예제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자 세종은 문신 허조(許稠) 등에게 예제작업을 명하였다. 이때 『홍무예제』를 참작하고 『두씨통전(杜氏通典)』·『동국고금상정례(東國古今詳定禮)』 등에서 채집하여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제정하도록 하였다.

여말선초에서 『국조오례의』가 완성된 성종 이전의 우리 나라와 중국의 외교실태 및 예제를 구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