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037 항목
Definition
두(豆)는 제사지낼 때 신위의 오른편에 고기, 젓, 국 따위를 담아놓는 나무로 만든 제기이다.[1]
『세종실록오례』 ◎ 두(豆) :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두(豆)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그 높낮이와, 깊고 얕음과, 아가리의 직경(直徑)과 발[足]의 직경이 모두 변(籩)의 제도에 의거하였다."고 하였다. ◎ 豆 : 《釋奠儀》云: "豆以木爲之。 高下深淺、口徑足徑, 竝依籩制。"[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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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_두 | Object | 물품 | 제기 | 세종실록오례(世宗實錄五禮)_두(豆) | 세종실록오례_두 | 世宗實錄五禮_豆 | ritual vessel |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세종실록오례_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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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 val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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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 세종실록오례_두 |
이칭/별칭 | 두, 두개구(豆蓋具), 변두(籩豆) |
재질 | 나무 |
색상 | |
사용처 | 국가제사, 왕실제사, 사직제, 길례, 흉례 |
Contextu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im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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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_두 | 두 | type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두(豆)는 나무[木]로 만들었는데, 그 높낮이와 깊고 얕음과 입지름과 발[足]의 지름이 모두 변(籩)의 제도에 의거하였다.”고 하였다. 釋奠儀云豆以木爲之高下深淺口徑足徑並依籩制[3] | 국사편찬위원회[2] |
세종실록오례_변 | 세종실록오례_두 | isRelatedTo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문공(朱文公)의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변(籩)은 대나무[竹]로써 만들었는데, 입지름은 4寸 9分, 발[足]까지 전체의 높이는 5寸 9分, 깊이는 1寸 4分, 발[足]의 지름은 5寸 1分이다. 건(巾)은 거친 갈포[綌]를 사용하는데, 겉은 현색(玄色)이요, 속은 훈색(纁色)이며, 갈포(葛布) 1幅으로 둘렀다.”고 하였다. 朱文公釋奠儀云籩以竹爲之口徑四寸九分通足高五寸九分深一寸四分足徑五寸一分巾用綌玄被纁裏圜一幅[4] | 국사편찬위원회[3] |
세종실록오례_비-匕 | 세종실록오례_두 | goesWith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비(匕)는 길이가 3尺이나 혹은 5尺이나 되니, 서직(黍稷)의 비가 있고, 생체(牲體)의 비가 있고, 소비(疏匕)가 있으니, 세 가지의 비는 가시나무로써 한다. 늠인(廩人) 의 개(槪) 는 서직(黍稷)의 비(匕)요, 옹인(雍人)의 개(槪)는 생체(牲體)의 비(匕)이니, 생체의 비는 도비(挑匕)이다. 그 제도는, 서직의 비는 도비보다 작고, 도비는 소비보다 작다. 유사(有司)가 제찬(祭饌)을 걷어치우면, 사마(司馬)가 두 손으로 도비의 자루를 잡고 청주(淸酒)를 떠내어 소비에 붓는데, 이와 같이 하기를 세 번 한다. 도비로써 떠난 뒤에 소비에 붓는 것이 세 번이나 된다면, 소비가 큰 것이다.” 고 하였다. 禮書云匕長三尺或五尺有黍稷之匕有牲體之匕有疏匕三匕以棘廩人之槪黍稷之匕也雍人之所槪牲體之匕也牲體之匕挑匕也其制則黍稷之匕小於挑匕桃匕小於疏有司徹司馬以二手執挑匕柄以挹渣사注于疏匕若是者三挹之以挑匕然後注于疏匕者三則疏匕大矣 [5] | 국사편찬위원회[4] |
국조오례의_두 | 세종실록오례_두 | isRelatedTo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두(豆)는 나무로 만드는데, 높고 낮은 것과 깊고 얕은 것, 입지름[口徑]과 발의 지름[足徑]은 모두 변(籩)의 제도에 의한다.” 했다. 釋奠儀云豆以木爲之高下深淺口徑足徑竝依籩制[6] | 한국전통지식포탈[5] |
국조상례보편_두 | 세종실록오례_두 | isRelatedTo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발인(發引)> 두(豆)는 추목(楸木)을 깎아서 만든다. 입지름은 1寸 6分이고, 뚜껑[盖]을 포함한 높이는 2寸 5分이다. 흑진칠(黑眞漆)을 한다. 豆用楸木磨造口圓徑寸六分通盖高二寸五分黑眞漆[7] | 한국전통지식포탈[6] |
춘관통고_두 | 세종실록오례_두 | isRelatedTo | <춘관통고 권86, 흉례(凶禮)> 두(豆)는 추목(楸)을 깎아서 만든다. 입지름은 1寸 6分이고 뚜껑[蓋]을 포함한 높이는 2寸 5分이다. 흑진칠(黑眞漆)을 한다. 豆用楸木磨造口圓徑寸六分通蓋高二寸五分黑眞漆[8] | 한국전통지식포탈[7] 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 두(豆)는 왕실(王室)의 국장(國葬) 때 부장하던 명기(明器)의 하나이다. |
대한예전_두 | 세종실록오례_두 | isRelatedTo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두(豆)는 나무로 만드는데, 높고 낮은 것과 깊고 얕은 것, 입지름과 발지름은 모두 변(籩)의 제도에 의한다.”라고 했다. 釋奠儀云豆以木爲之高下湥淺口徑足徑幷依籩制[9] | 한국전통지식포탈[8] |
종묘의궤_두 | 세종실록오례_두 | isRelatedTo |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석전의』에 이르기를, 두(豆)는 나무로 만든다. 높이, 깊이, 입지름, 발의 지름은 모두 변(籩)의 제도를 따른다. 釋奠儀云豆以木爲之高下深淺口徑足徑竝依籩制][10] | 규장각한국학연구원[9] |
사직서의궤_두 | 세종실록오례_두 | isRelatedTo |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두(豆)는 나무[木]로 만드는데, 높고 낮은 것과 깊고 얕은 것, 입지름과 발지름은 모두 변(籩)의 제도에 의한다.”라고 했다. 釋奠儀云豆以木爲之高下㴱淺口徑足徑竝依籩制.[11] | |
경모궁의궤_두 | 세종실록오례_두 | isRelatedTo |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두(豆)는 나무로 만든다. 높이와 깊이, 입지름과 발지름은 모두 변(籩)의 제도를 따른다.”라고 하였다. 『교특생(郊特牲)』에 이르기를, “변(籩)과 두(豆)에 물품은 물이나 흙에서 나는 것으로 한다.”라고 하였다. 주(注)에 “변은 두 짝이 되는 물건이다.” 하였다. ○『빙례(聘禮)』에 이르기를, 소(疏)에 “모든 찬물(饌物)은 두(豆)에 담는 것이 기본이 된다.” 하였다. 『주례(周禮)』에 이르기를, 〈천관(天官)〉에 변인(籩人) 조가 있는데, 두(豆)는 해인(醢人) 조에 들어 있다. 釋奠儀云豆以木爲之高下深淺口徑足徑竝依籩制郊特牲云籩豆之實水土之品[注云籩是配豆之物○聘禮疏云凡饌以豆爲本]周禮天官有籩人而豆屬於醢人[12] | 한국전통지식포탈[10] |
순조국장도감의궤_두 | 세종실록오례_두 | isRelatedTo | AKS Encyves[11] | |
정조국장도감의궤_두 | 세종실록오례_두 | isRelatedTo |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2, 이방 명기질> 두(豆) 6는 가래나무[楸木]로 다듬어 만든다. 주둥이 둘레 지름 1寸 6分이다. 덮개[蓋]를 포함한 높이 2寸 5分이다. 흑진칠(黑眞漆)을 칠한다. ○ 주척(周尺)을 사용한다. 들어가는 것은 가래나무 길이 3寸, 사방[方] 2寸짜리 6片, 매칠(每漆) 2勺이다. 豆六用楸木磨造口圓徑一寸六分通蓋高二寸五分黑眞漆○用周尺所入楸木長三寸方二寸六片每漆二勺[13] | 한국전통지식포탈[12] AKS Encyves[13] |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_두 | 세종실록오례_두 | isRelatedTo | AKS Encyves[14] |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_두[14] | 세종실록오례_두 | documents | AKS Encyves[15] |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_변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_두 | isRelatedTo | AKS Encyves[16] |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_비-匕 | 세종실록오례_비-匕 | isRelatedTo | 중복 | AKS Encyves[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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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tial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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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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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설 | 세종실록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두 |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02 | |
도설 | 국조오례의 | 두 |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 |
참고 |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 두 |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0319&category=A&sWord=두 | |
참고 | 한국전통지식포탈 | 두 | http://www.cbd-chm.go.kr/home/rsc/rsc01003p_6.do?dt_gbn=TC&data_gbn_cd=BIO&cls_no=120000023992&cls_id=13392&pageIndex=34 | |
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 변두(籩豆) |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450 | |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두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두&ridx=0&tot=1795 | |
참고 | 위키 실록사전 | 변두(籩豆) |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변두(籩豆) | |
참고 | AKS Encyves | 두 |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두 | |
도해 | 세종실록오례 | 두 |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6a02.jpg |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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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祭禮와 준․뢰의 사용」, 『조선시대사학보』58, | 조선시대사학회, 20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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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영, |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
국립고궁박물관, |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 국립고궁박물관, 2014. | ||
궁중유물전시관, | 『종묘대제문물』,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Notes
- ↑ 이문주, "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두,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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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사직서의궤』 1권, 종묘제기도설, 두,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경모궁의궤』 1권, 제기도설, 두,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2, 이방 명기질, 두,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한국 기록유산 Encyves』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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