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난도(鸞刀)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제사 때 희생(犧牲)을 베는데 사용하는 칼이다. [1]
세종실록오례 ◎ 난도(鸞刀) : 《성송반악도(聖宋頒樂圖)》에 이르기를, "《예기(禮記)》에 난도(鸞刀)는 옛날의 칼인데, 종묘(宗廟)에 사용하니, 종묘에서 지금의 칼을 사용하지 않고서 옛날의 칼을 사용함은 옛날의 일을 닦아 계승한 까닭이다."하고, 《시경(詩經)》의 《신남산편(信南山篇)》에, "그 난도를 잡아 그 순색(純色)의 희생(犧牲)을 고(告)한다."하였으며, 《예기(禮記)》의 《절해장(節解章)》에는 "반드시 난도가 있는 것은, 그 난령(鸞鈴)의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이 조화(調和)된 후에 희생(犧牲)을 베게됨을 취한 것이다."하였으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는 "선공(宣公) 12년에 정백(鄭伯)이 오른손으로 난도를 잡았다."고 하였는데, 주(注)에 이르기를, "난도는 종묘(宗廟)에서 희생(犧牲)을 베고 끊는 칼인데, 고리[鐶]에 방울[和]이 있고, 칼 끝에 방울[鸞]이 있다. 칼 끝에 있는 것은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에 맞고, 세 방울[三和]이 고리에 있는 것은 소리가 각성(角聲)·치성(徵聲)·우성(羽聲)에 맞는다."고 하였다. ◎ 鸞刀 : 《聖宋頒樂圖》云: "《禮記》: ‘鸞刀, 古刀也, 用於宗廟。 宗廟不用今刀, 而用古刀, 修古之故。’" 《詩》 《信南山》曰: "執其鸞刀, 以啓其毛。" 《禮記節解》曰: "必有鸞刀者, 取其鸞鈴之聲。 宮商調和, 而後斷割也。" 《春秋》 《公羊傳》: "宣十二年, 鄭伯右執鸞刀。" 注云: "鸞刀, 宗廟割切之刀。 鐶有和, 鋒有鸞在鋒, 聲中宮商, 三和在鐶, 聲中角徵羽。"[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Additional Attributes
Contextu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image
|
『세종실록오례』 |
난도 |
documents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3] |
국사편찬위원회[2]
|
『국조오례의』 |
난도 |
documents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4] |
|
『국조상례보편』 |
난도 |
documents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항목없음. [5] |
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
『춘관통고』 |
난도 |
documents |
<춘관통고 권86, 흉례(凶禮)> 항목없음. [6] |
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html>
|
『대한예전』 |
난도 |
documents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7] |
|
『종묘의궤』 |
난도 |
documents |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8] |
규장각한국학연구원[3]
|
『사직서의궤』[9] |
난도 |
documents |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10] |
1783년(정조 7) 1월 8일에 사직서(社稷署)의 제례의식[祭儀]제식(祭式)·단(壇)·유(壝)·관사(館舍) 등을 참고하고자 작성된 5권 3책의 의궤가 편찬되어, 1804년(순조 4) 1차 증보되고, 1842년(현종 8) 2차 증보됨./ 조선후기 정조나 순조 때 사직에서 왕실에서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제기이다. 난도(鑾刀)는 희생을 베는데 사용하는 칼이다.</html>
|
『제기도감의궤』[11] |
난도 |
documents |
<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 [12] |
『제기도감의궤』는 1611년(광해군 3) 8월 24일 건원릉(健元陵)과 현릉(顯陵)에 친제(親祭)를 거행하기 위해 제기가 부족하자, 그해 9월 9일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이듬해까지 제기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제기를 만든 전말을 기록하고 있음./ 난도(鸞刀)는 영녕전(永寧殿)에 1개, 종묘(宗廟)에 1개를 만들어 사용한다.
|
『경모궁의궤』 |
난도 |
documents |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13] |
|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Spatial Data
Spactial Information Nodes
gid |
region |
label |
hanja |
latitude |
longitude |
altitue |
description
|
|
|
|
|
|
|
|
|
|
|
|
|
|
|
|
|
|
|
|
|
|
|
|
|
Spati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
|
|
|
|
|
|
|
|
|
|
|
Temporal Data
Temporal Information Nodes
tid |
timeSpan |
label |
hanja |
lunarDate |
solarDate |
indexDate |
description
|
|
|
|
|
|
|
|
|
|
|
|
|
|
|
|
|
|
|
|
|
|
|
|
|
Tempor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
|
|
|
|
|
|
|
|
|
|
|
Online Reference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
|
하은미, |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
|
최순권, |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
|
정소라, |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
조선시대사학회, 1999. |
|
|
김종일, |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
|
|
김종임, |
「조선왕실 금속제기 연구 : 종묘제기를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제277호, |
한국미술사학회, 2013. |
|
|
손명희, |
「조선의 국가 제사를 위한 그릇과 도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
국립고궁박물관, 2015, 85~136쪽. |
|
|
이귀영, |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
|
,
Notes
- ↑ "난도",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특허청.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난도, 『조선왕조실록』online, 국사편찬위원회.
- ↑ 『세종실록』,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난도.
한국전통지식포털.
- ↑ 『國朝五禮序例』 0001권, 奎185-v.1-2, 044a-044a면,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