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조선시대 의례에서 기장[黍]이나 피[稷], 희생, 채소 등을 제기에 담을 때 쓰는 도구이다. [1] 세종실록오례 ◎ 비(匕) :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비(匕)는 길이가 3척이나 되고, 혹은 5척이나 되니, 서직(黍稷)의 비가 있고, 생체(牲體)의 비가 있고, 소비(疏匕)가 있으니, 세 가지의 비는 가시나무로써 한다. 늠인(廩人)059) 의 개(槪)060) 는 서직(黍稷)의 비(匕)이요, 옹인(雍人)061) 의 개(槪)는 생체(牲體)의 비(匕)이니, 생체의 비는 도비(挑匕)이다. 그 제도는, 서직의 비는 도비보다 작고, 도비는 소비보다 작다. 유사(有司)가 제찬(祭饌)을 걷어치우면, 사마(司馬)가 두 손으로 도비의 자루를 잡고 청주(淸酒)를 떠내어 소비에 붓는데, 이와 같이 하기를 세 번 한다. 도비로써 떠난 뒤에 소비에 붓는 것이 세 번이나 된다면, 소비가 큰 것이다."고 하였다. ◎ 匕 : 《禮書》云: "匕長三尺或五尺, 有黍稷之匕, 有牲體之匕, 有疏匕。 三匕以棘, 廩人之槪黍稷之匕也, 雍人之所槪牲體之匕也。 牲體之匕, 挑匕也。 其制則黍稷之匕, 小於挑匕; 桃匕小於疏。 有司徹, 司馬以二手執挑匕柄, 以挹渣注于疏匕, 若是者三。 挹之以挑匕, 然後注于疏匕者三, 則疏匕大矣。"[2]
Semantic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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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 |
궤-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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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도(周禮圖)』에 이르기를, “궤연(几筵)을 맡았으니 5궤(几)의 좌궤(左几) · 우궤(右几) · 옥궤(玉几) · 조궤(彫几) · 칠궤(漆几)이다.”고 하였으며, 『완씨도(阮氏圖)』에는 “궤(几)는 길이는 5尺, 높이는 2尺, 너비는 2尺이고, 양쪽 끝은 적색(赤色)이며, 중앙은 흑칠(黑漆)을 한다.”고 하였는데, 『마융(馬融)』에서 말하기를, “길이가 3尺인데, 양쪽 끝이 적색인 것과 중앙에 흑칠을 한 뜻이 없다.”고 하였으며,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왕은 궤(几)를 왼편과 오른편에 설치하니, 지존(至尊)한 신분을 우대한 것이요, 제후(諸侯)로부터 이하로는 혹은 왼편에 설치하기도 하고, 혹은 오른편에 설치하기도 하니, 일의 적당한 데 맞게 한 것이다. 제후가 제사를 지내는 자리[席]에는 궤(几)를 오른편에 설치하고, 국빈(國賓)을 연회(筵會)할 적엔 궤(几)를 왼편에 설치하니, 제사(祭祀)는 귀신에 관한 일[陰事]인 까닭으로 이를 오른편에 설치하고, 국빈(國賓)을 연회함은 인간에 관한 일[陽事]인 까닭으로 이를 왼편에 설치한다. 제후의 제사에는 조궤(彫几)를 설치한다.” 고 하였다. 周禮圖云司几筵五几左右玉彫漆阮氏圖几長五尺高二尺廣二尺兩端赤中央黑漆馬融以爲長三尺無兩端赤中央黑漆之義禮書云王設几於左右優至尊也諸侯而下或設之左或設之右適事之宜也諸侯祭祀席右几筵國賓左几則祭祀陰事也故右之筵國賓陽事也故左之諸侯祭祀彫几 [3] |
국사편찬위원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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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 |
궤-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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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 권134, 흉례서례(凶禮序禮), 명기(明器)> 궤(几)흑칠(黑漆) 장(杖)흑칠(黑漆) 几黑漆 杖黑漆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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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 |
궤-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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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당(唐)나라 원릉(元陵) 부묘의(祔廟儀)에 대축(大祝)이 신주(神主)를 받들어 곡궤(曲几) 뒤에 둔다 하였는데, 지금은 신주(神主)를 현칠 곡궤(玄漆曲几) 앞에 설치한다. 唐元陵祔廟儀大祝捧神主置曲几後今設神主於玄柒曲几前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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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상례보편』 |
의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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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발인(發引)> 의궤(倚几)[신주(神主)의 뒤에 설치하는 것이다]. 궤(几)에 쓰는 나무는 위와 동일하다. 길이는 2尺이고, 너비는 7寸이며, 두께는 2寸이다. 3足의 높이는 5寸이다. 흑진칠(黑眞漆)을 한다. 倚几[所以設於主後者]几用木同上長二尺廣七寸厚二寸三足高五寸黑眞漆 [6] |
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의궤(倚几)는 왕실(王室)의 국장(國葬) 때 신주(神主)의 뒤에 설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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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관통고』 |
궤-几 |
documents |
<춘관통고 권49, 가례(嘉禮), 면복(冕服)> 궤(几)는 나무로 만들고, 길이는 3尺 4寸, 높이는 1尺 1寸 5分, 너비는 1尺 2寸 7分이다. 주척(周尺)을 사용한다. 홍색(紅色)으로 칠(漆)한다. 양쪽 끝을 약간 높게, 한가운데를 약간 움푹하게 하되, 모가 없도록 한다. 几以木爲之長三尺周尺四寸高一尺一寸五分廣一尺二寸七分漆以紅色兩端稍高中央稍凹無稜 [7] |
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 궤(几)는 조선 왕실(王室)에서 노인들에게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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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전』 |
궤-几 |
documents |
<대한예전 권5, 궤장도설(几杖圖說)> 궤(几)는 나무로 만드는데 길이 3尺[주척(周尺)을 사용한다] 4寸, 높이 1尺 1寸 5分, 너비 1尺 2寸 7分이다. 칠(漆)은 붉은 색이다. 두 끝이 조금 높고 중앙이 조금 오목하며 모서리가 없다. 『후한서(後漢書)』에 따르면, "옥궤(玉几)는 겨울에 제면(綈綿)을 덮는다. 지금은 초록빛 비단[緞]을 쓴다. 가을과 겨울에는 둘레에 작은 띠를 두르고 구멍에 매어단다."라고 하였다. 几以木爲之長三尺[周尺]四寸高一尺一寸五分廣一尺二寸七分漆以紅色兩端稍高中央稍凹無稜後漢書玉几冬則加綈綿今用綠緞四周有小帶繫於孔秋冬加之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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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궤』 |
궤-几 |
documents |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당(唐)나라 때 『원릉 부묘의(元陵祔廟儀)』에서는 대축(大祝)이 신주(神主)를 받들어 곡궤(曲几)를 뒤에 둔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현칠(玄漆)을 한 곡궤(曲几) 앞에 신주를 진설한다. 唐元陵祔廟儀大祝捧神主置於曲几後今設神主於玄漆曲几前 [9] |
규장각한국학연구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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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국장도감의궤』[10] |
궤-几 |
documents |
<영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상, 이방 복완질> 궤(几)는 1이다. 가래나무[楸木]를 써서 만든다. 길이는 8寸 5分, 너비는 4寸 4分, 높이는 4寸 7分으로서 주척(周尺)을 사용한다. 왜주홍(倭朱紅)을 칠하고 덮는 요[覆襦]는 초록운문단(草綠雲紋段)이고 안감[內拱]은 홍운문단(紅雲紋緞)이다. 외궤(外樻)는 흑진칠(黑眞漆)을 하고 안에는 홍초(紅綃)를 도배한다. 几一用楸木磨造長八寸七分廣四寸四分高四寸七分用周尺倭朱漆覆襦褥草綠雲紋緞內拱紅雲紋緞外樻黑眞漆內塗紅綃 [11] |
조선후기 1776년(정조 즉위년) 영조(英祖)의 국장(國葬) 때, 궤(几)는 신주(神主)를 기대어 놓는 도구로 왕릉(王陵)에 부장(副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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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국장도감의궤』[12] |
궤-几 |
documents |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2, 이방 복완질> 궤(几)는 1坐이다. 피나무(椴木)로 만든다. 길이 8寸 7分, 너비 4寸 4分, 높이 4寸 7分이다. 전․후面은 각각 세로 7分 아래에 구멍 3개를 뚫는데, 둘레 지름은 2分이며 요[褥]의 끈[纓]을 꿰게 한다. 하변(下邊)을 4分쯤 둥글게 깎아 다리(足)를 만들고 또 그 위에 6分쯤 굴곡(屈曲)되게 하여 약간 깎고 왜주홍(倭朱紅)을 칠하고 안에는 흑진칠(黑眞漆)을 한다. 주척(周尺)을 사용한다. 부요(覆褥)에 솜을 넣는데[着絮], 겉은 녹운단(綠雲緞), 안은 홍운단(紅雲緞)이다. 길이와 너비는 궤와 같다. 홍단(紅緞)으로 끈(纓子) 6개를 만들어 좌․우에 각각 3관(貫)의 궤 구멍에 엮어서 궤(几) 안에 연결한다. 여기에 든 것으로 얇은 피나무판(椴板) 반반 立, 어교(魚膠) 5錢, 전칠(全漆) 8勺, 매칠(每漆) 3勺, 왜주홍(倭朱紅) 3錢, 숯[炭] 5升, 솜요[襦褥] 감은 초록운단(草綠雲緞) 길이 4寸, 너비 2寸 5分짜리 1片이다. 안감 및 끈(纓子) 6件 감은 홍운단(紅雲緞) 길이 4寸, 너비 4寸 5分짜리 1片, 씨 뺀 면화[去核綿花] 1兩, 홍진사(紅眞絲) 2分이다. 几一用椴木長八寸七分廣四寸四分高四寸七分前後面各從七分下鑿三孔圓徑二分俾貫褥纓下邊四分許圓削作足又其上六分許屈曲淺刻倭朱漆內黑眞漆用周尺覆褥着絮外拱綠雲緞內拱紅雲緞長廣同用紅緞作纓子六左右各綴三貫几孔結於几內所入薄椴板半半立魚膠五戔全漆八勺每漆三勺倭朱紅三戔炭五升襦褥次草綠雲緞長四寸廣二寸五分一片內供及纓子六次紅雲緞長四寸廣四寸五分一片去核綿花一兩紅眞絲二分 [13] |
조선후기 1800년(순조 즉위년) 정조(正祖)의 국장(國葬) 때, 궤(几)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제사(祭祀) 때 신주(神主)를 궤(几) 앞에 설치하여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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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几 |
국립고궁박물관[14] |
currentLocation |
< 국립고궁박물관, 크기:길이 21.5cm, 유물도판출처:궁중유물전시관, 『종묘대제문물』, 2004, p.46.> [15] |
한국전통지식포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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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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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匕) |
궤(簋) |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
A ekc:goesWith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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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匕) |
보(簠) |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
A ekc:goesWith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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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匕) |
조(俎) |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
A ekc:goesWith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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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匕) |
변(籩) |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
A ekc:goesWith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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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匕) |
두(豆) |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
A ekc:goesWith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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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匕) |
『종묘의궤(宗廟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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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匕)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宗廟親祭規制圖說屛風)》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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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匕) |
제례(祭禮) |
A는 B에 사용되었다 |
A ekc:isUsedIn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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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tial Data
Spactial Information Nodes
g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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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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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itude |
altit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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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l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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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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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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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미, |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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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권, |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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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라, |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
조선시대사학회,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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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일, |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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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임, |
「조선왕실 금속제기 연구 : 종묘제기를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제277호, |
한국미술사학회,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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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명희, |
「조선의 국가 제사를 위한 그릇과 도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
국립고궁박물관, 2015, 85~13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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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귀영, |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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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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