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식민 통치를 시행한 최고 행정 관청인 조선총독부가 사용한 건물로, 경복궁 내에 위치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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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upNa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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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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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청사 |
Place |
장소 |
조선총독부 |
조선총독부청사(朝鮮總督府廳舍) |
조선총독부청사 |
朝鮮總督府廳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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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itional Attrib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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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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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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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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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호, 김제정, 최아신, |
「일제강점기 박람회의 개최와경복궁의 위상변동 -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와 1929년 조선박람회를 중심으로 -.」, |
『서울학연구 』 55호,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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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 1912년 조선총독부는 조사 준비비 3만 원을 계상하고 조사, 설계 등을 서서히 진행하면서 동시에 경복궁 해체 작업을 시작
-경회루와 근정전과 같은 거대한 몇 개 건물만 남기고 대부분의 건물 약 4천간을 철거하여 그중 많은 것을 민간에 불하.
- 1915년 시정5주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를 계기로 경복궁 내 건물군의 해체가 본격적으로 시작
- 총독부는 근정전, 교태전, 경회루 등 주요 건물은 모두 행사장으로 사용하고, 그 외 건물들은 많은 부분 헐어내어 그 자리에 18개의 전시관을 신축.
-조선총독부 청사는 공진회가 끝난 후, 제1호관이 있던 자리, 즉 근정전 바로 앞에 건설되기 시작.
-독일인 건축가 조르주 드 라랑드(George de Lalande, 1872~1914)가 설계한 네오르네상스풍의 화강암 석조건물 .
-이에 따라 1927년 광화문 역시 경복궁의 동북쪽으로 이축.
일제강점기 경복궁 내 박람회 및 공진회 개최로 대부분의 전각들이 훼철되었지만 선원전은 총독부 관사로 이용되어 1930년대까지 유지되었다. 1929년 경복궁 후원에 새 관사가 완성되자 1932년 10월 선원전과 부속건물을 불하하였다. [1]
Reference
- ↑ 송인호, 김제정, 최아신, 「일제강점기 박람회의 개최와경복궁의 위상변동 -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와 1929년 조선박람회를 중심으로 -.」, 『서울학연구 』 55호, 2014, 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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