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1906년 8월 10일 인가를 받아 1906년 9월 1일 한성신보(漢城新報)와 대동신보(大東新報)를 통합하여 창간한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경성일보 |
Actor |
단체 |
|
경성일보(京城日報) |
경성일보 |
京城日報 |
|
|
|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
value
|
id |
[[ ]]
|
|
|
|
|
|
|
|
|
Contextu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Spatial Data
Spactial Information Nodes
gid |
region |
label |
hanja |
latitude |
longitude |
altitue |
description
|
Spati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
|
|
|
|
|
|
|
|
|
|
|
Temporal Data
Temporal Information Nodes
tid |
timeSpan |
label |
hanja |
lunarDate |
solarDate |
indexDate |
description
|
Tempor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
|
|
|
|
|
|
|
|
|
|
|
Online Reference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Notes
경성일보는 관보였음에도 가장 광고량이 많았고, 일본 상품 광고가 압도적이었다. 한국 내 일본인들(재조 일본인)과 일본어를 읽을 수 있는 한국인들을 상대했던 만큼 광고도 번역되지 않고 일본어 그대로 실렸다. 기초 일본어(기초 독해 및 일상 회화)를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비율은 1933년 7.81퍼센트에서 1941년 16.61퍼센트로 두 배가량 늘어났다.[1]
1940년 조선일보, 동아일보 같은 한글 민간지가 강제 폐간된 이후에 경성일보는 서울과 경기도를 대표하는 신문으로 남았다. 신문을 한 도에 하나만 허용한다는 1道 1紙의 원칙에 따라 경성일보는 경기도를 대표하고, 일본어 신문이었던 부산일보는 경상도를 대표하는 신문으로 남았다.
매일신보는 1937년까지 경성일보 산하에 있었으며 광고량이 동아일보나 조선일보보다 적었다. 하지만 기관지 성격을 띠었던 매일신보는 다른 신문에 비해 관보나 등기 광고가 많이 실렸다. 등기 광고는 조선 총독부의 경무국이 알선해서 지방법원에 냈던 광고다. 매일신보는 등기 광고를 독점적으로 유치하여 광고수입에 보탰다.[2]
References
- ↑ 권창규, 『상품의 시대』, 민음사, 2014, 42쪽
- ↑ 권창규, 『상품의 시대』, 민음사, 2014, 43쪽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