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공예관

han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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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미술공예관의 미술공예부에는 조선의 예술사진과 조선미술전람회의 제1회부터 제7회까지의 특선작, 특선작가들의 최근 작품, 문부성 참고품인 와다 산조우 등 대가 십여 명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여기에도 총독부의 시정20년 통치를 시각화하는 의도가 보였는데, 문화정책의 하나로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의 성과를 선별하여 전시하였다. 예술사진, 서예, 사군자, 서양화, 동양화의 순서로 전시되었는데, 이당 김전호 화백의 <승무>와 전변지 화백의 <나부> 등이 눈길을 끌었으나 관람객이 워낙 많아 제대로 관람할 수가 없었다. 또한 고대의 각종 미술공예품이 전시되었으며, 신라 금관 같은 것은 실로 보기 어려운 보물이었다. 이외에도 이왕가의 신라, 고려, 조선 시대의 고화, 조선총독부 박물관 출품, 야나기 무네요시가 수집한 공예품들이 전시되었다. 체육부에는 각종 경기의 상패와 상장, 운동 통계, 운동기구, 기타 학교체육, 올림픽 등의 모형이 전시되었다. 교육부에는 각 도 교육보급의 통계표, 교과서 편집상황, 경학원의 석전, 금강산 장안사의 모형, 각 관공립중등학교 이상 20여 개 학교의 도화, 습자, 직조, 성적표, 대만과 남만주의 학사통계, 외국아동 성적표 등이 전시되었다. 특히 미술품의 전시는 조선박람회의 이미지를 고급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미술 감상은 당시 교양의 한 부분으로 박람회에 구경 온 지식인과 상류층 이외의 일반인들에게도 보급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교육미술공예관을 관람한 조선인은 상품 전시보다 미술품 전시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