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7~1819년(정조 11~순조 19)에 社稷署에서 社稷壇의 관리와 보수 및 社稷祭의 실행 등과 관련된 일을 시기별로 기록한 謄錄이다.
<서지사항>
권수제와 표지 서명이 ‘社稷暑謄錄’이다. 표지 장황은 改裝한 것이다. 표지 다음 空隔紙에 서근제 역할을 하는 띠지가 붙어 있다. 본문의 판식은 四周單邊의 괘선을 직접 그어 13行 25~30字로 쓴 필사본이다. 본문의 종이는 일반적인 楮紙를 사용하였다. 인장은 본문의 안쪽 이음새면에 1과와 면마다 1과나 2과씩 ‘社稷署印’을 날인하였다. 책 수는 전체 6책 중에 권4만 있는 것으로, 1책 82장이다.
<체제 및 내용>
본서의 표지에는 ‘社稷署謄錄 四’, 卷首面에는 ‘社稷署謄錄卷之四’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현존하는 9종의 사직서 등록은 겉장이 개장되거나 표제 아래 기록된 冊數가 일관성이 있는 데 반해 본서는 유일하게 권수면에 그 卷次數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음으로 인하여 9종의 순차를 짜 맞추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본서의 첫 기사는 1787년(정조 11) 12월에 사직단의 祈穀祭에 대신을 보내 섭행할지를 국왕에게 묻는 내용으로 시작하는데, 사직단의 제향, 특히 기곡제의 국왕 親臨과 관련된 기사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 다른 사직서 등록에 비해 특이한 점은 欄外 위쪽 頭註 형식의 글이 다른 本은 요약어를 기록한 데 비해 본서는 1797년(정조 21) 12월 기사로서 ‘十二月 南紅箭門改建’이라는 내용이 본문과 관련 없이 추가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1815년(순조 15) 2월 기사 속에는 正宗[正祖]과 當宁[純祖], 왕세자[孝明世子]의 사직단 제향에 대한 親臨 기록이 도표로 실려 있다. 그 내용을 보자면, 正祖는 모두 9번 친림하였는데 모두 祈穀大祭이고, 純祖는 당시까지 4번으로 春享大祭·祈穀大祭·祈雨祭·報謝祭가 각 1번이고, 孝明世子는 臘享과 祈穀大祭가 각 1번이다.
본서는 사직서의 등록 관련 일괄 문서 중의 하나로서 그 내력 및 사직서 등록의 일반 내용에 대해서는 『謄錄』(K2-2149) 참조.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사직단의 실제 祭享 사례 및 관리·운영 상황을 자세히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藏書閣에는 사직서의 등록과 관련된 도서로서, 표제가 ‘社稷署謄錄’인 도서 6종, ‘謄錄’ 2종 및 ‘社稷署報草錄’ 1종이 소장되어 있는데, 모두 사직서에서 社稷壇의 관리와 운영 및 각종 祭享에 대해 편년체 형식으로 기록한 일괄 도서이다. 李迎春의 「『社稷署謄錄』 解題」(2009)에 따르면 ‘사직서등록’은 기록 시기로 보아 총 10책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이 8책뿐이라 하고, 李煜의 『藏書閣所藏謄錄解題』(2002)에서는 그 다섯 번째 결본을 ‘社稷署報草錄’으로 보고 있다. 일람표를 재정리하면 아래와 같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