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
정초(鄭樵, 1104년 ~ 1162년) 송나라 흥화군(興化軍) 보전(莆田) 사람. 자는 어중(漁仲)이고, 자호는 계거일민(溪西逸民) 또는 협제선생(夾漈先生)이다. 박학강기(博學强記)했고, 과거 시험에 응시하지 않으면서 30여 년 동안 협제산(夾漈山)에 은거해 독서와 저술에 몰두했다. 일찍이 명산대천을 유람하면서 기이하거나 오래된 사실들을 수집했고, 장서가를 만날 때마다 머무르면서 모든 책을 완독한 뒤에야 떠났다. 예악과 문자, 천문, 지리, 충어(蟲魚), 초목, 방서(方書) 등 많은 학문에 정통했다.
고종(高宗) 소흥(紹興) 연간에 왕륜(王綸) 등의 천거로 우적공랑(右迪功郞) 등에 임명되었고, 이어 예부와 병부의 가각(架閣)을 지냈다. 어사(御史)의 탄핵을 받아 감남악묘(監南岳廟)로 옮겼다. 입조하여 추밀원(樞密院) 편수관(編修官) 등을 지냈다. 사학(史學)에 있어서는 충분히 사료를 검토할 것을 주장하면서 통사(通史)를 중시했다. 사마천(司馬遷)을 존숭하고 반고(班固)를 폄하했다. 또한 음양오행재이(陰陽五行災異)의 설에 대해서도 요학(妖學)이라 하여 배척했다. 저서가 대단히 많았다. 저서에 모공(毛公)과 정현의 설을 공박한 『시전변망(詩傳辨妄)』과 『이아주(爾雅注)』, 『통지(通志)』, 『협제유고(夾漈遺稿)』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초 [鄭樵]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임종욱, 김해명)[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