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에 간송 전형필이 세운 보화각(葆華閣)이 현재의 우리나라 최초 사립 박물관인 간송미술관이다. 간송의 활동에 깊게 관여하였던 오세창은 보화각 지석에 “서화는 심히 아름답고 옛 골동품은 자랑할 만하다. 이곳에 모인 것들은 천추의 정화로다. 근역에 남은 주교로 고구 검토할 수 있네. 세상 함께 보배하고 자손 길이 보존하세.”라는 글을 남겨 간송이 모았던 소장품의 가치를 알려 주었다.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문화재를 수준 높은 안목으로 체계적으로 수집해 문화유산을 수호하고 현재까지 계승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던 인물이다.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위창 오세창(吳世昌)은 당시 독립운동가였다. 오세창은 오주석의 아들로 서화가 및 금석학자로 우리나라 서화가의 인명사전이라 할 수 있는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간행하였던 인물이었다.
간송이 지켜낸 우리의 문화재로는 국보 제65호 청자 기린형 뚜껑 향로[靑磁麒麟形蓋香爐], 국보 제66호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靑磁象嵌蓮池鴛鴦文淨甁), 국보 제74호 청자 오리 모양 연적[靑磁鴨形硯滴], 국보 제270호 청자 모자원숭이 모양 연적[靑磁母子猿形硯滴], 보물 제238호 백자 박산형 뚜껑 향로[白磁博山形蓋香爐]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일본에 유출된 국보 제135호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申潤福筆風俗圖畵帖)을 파격적인 고가에 다시 사왔고, 1768년에 심사정이 그린 촉석도는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산 가격만큼의 거금을 들여 보수를 다시 맡기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헌신적인 노력으로 간송의 소장품에는 회화, 도자, 금속 공예, 불교 조각, 전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보급 문화재들이 포함되어 있다. [1]
간송미술관은 사직제 등 조선시대 국가제사 때 사용하는 제기인 희준과 상준을 소장하고 있다. 18세기 백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