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년진찬 정재동기복장-선유락"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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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6일 (화) 10:45 판
Definition
1887년(고종 24) 1월에 고종(高宗 1852~1919)이 대왕대비 신정왕후의 팔순을 축하하는 궁중연향(宮中宴享)인 진찬(進饌)을 거행하였다.
궁중정재(宮中呈才) 중 '선유락(船遊樂)'은 채선(彩船)을 설치하여 여러 기녀들이 나누어 서서 배를 띄우는 모습을 하고 닻줄을 당기며 배어 둘러서서 추는 춤으로[1] 선유락 정재동기(呈才童妓)의 복식은 화관(花冠)을 쓰고 초록당의[草綠甲紗唐衣], 홍색치마[紅紗裳], 홍말군[紅紬襪裙]을 입으며 허리에는 홍수대[紅緞繡帶]를 두르고 홍단수초혜(紅緞繡草鞋)를 신었다.[2] 또한 머리에는 수공화(首拱花)를 꽂는데, 수파련(水波蓮)과 내하(內下)한 당가화(唐假花) 이지(二枝)를 더하여 사용했다.[3]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
정해년진찬_정재동기복장-선유락 | Clothing | 복장 | 정재여령 | 정재동기복장-선유락(船遊樂童妓) | 정재동기복장-선유락 | 丁亥年進饌 呈才童妓服-船遊樂 |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정해년진찬_정재여령복장-선유락동기 |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 value |
---|---|
id | 정해년진찬_정재동기복장-선유락 |
대표명칭 | 정해년진찬 정재동기복장-선유락 |
한자표기 | 丁亥年進饌 呈才童妓服-船遊樂 |
이칭별칭 | |
분류 | 복장 |
착용신분 | 동기(童妓) |
착용성별 | 여성 |
Contextual Relations
Online Reference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해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선유락(船遊樂) |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선유락&ridx=0&tot=114 |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
박가영, | 『조선시대 궁중 패션』, | 민속원, 2017. | ||
한국학중앙연구원, | 『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1,2,3, | 민속원, 2005. | ||
趙美羅, | 「조선후기 純祖대 궁중연향 복식에 관한 연구」, |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
Notes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