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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5일 (월) 11:03 판
Definition
1887년(고종 24) 1월에 고종(高宗 1852~1919)이 대왕대비 신정왕후의 팔순을 축하하는 궁중연향(宮中宴享)인 진찬(進饌)을 거행하였다.
궁중정재(宮中呈才) 중 '무고(舞鼓)'는 큰북을 둘러싸고 춤과 창을 하면서 추는 군무로[1] 정재여령(呈才女伶)의 복식은 각 춤의 정재여령 복식과 같이 화관(花冠)을 쓰고 황초단삼(黃綃單衫), 남색치마[藍色裳], 홍색웃치마[紅綃裳]를 입고 허리에는 남색전대(藍色戰帶)[2]를 두르며 오색한삼(五色汗衫)을 드리우고 초록혜(草綠鞋)를 신었으며, 청색·홍색·백색·유록색 쾌자[靑赤白柳綠掛子]를 착용했다.[3] 또한 머리에는 수공화(首拱花)를 꽂는데, 수파련(水波蓮)과 내하(內下)한 당가화(唐假花) 이지(二枝)를 더하여 사용했다.[4]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
정해년진찬_정재여령복장-무고-백 | Clothing | 복장 | 정재여령 | 정재여령복장-무고-백(舞鼓-白) | 정재여령복장-무고-백 | 丁亥年進饌 呈才女伶服-舞鼓-白 |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정해년진찬_정재여령복장-무고-백 |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 value |
---|---|
id | 정해년진찬_정재여령복장-무고-백 |
대표명칭 | 정해년진찬 정재여령복장-무고-백 |
한자표기 | 丁亥年進饌 呈才女伶服-舞鼓-舞鼓-白 |
이칭별칭 | |
분류 | 복장 |
착용신분 | 여령 |
착용성별 | 여성 |
Contextual Relations
Online Reference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해설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몽두리 |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2096 | |
해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무고(舞鼓) |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무고&ridx=0&tot=169 |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
박가영, | 『조선시대 궁중 패션』, | 민속원, 2017. | ||
한국학중앙연구원, | 『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1,2,3, | 민속원, 2005. | ||
趙美羅, | 「조선후기 純祖대 궁중연향 복식에 관한 연구」, |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
Notes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