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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경회루]] 연못 준설 작업 도중에 출토된 청동용이다. 발굴 당시 큰 돌에 눌린 채 직사각형 석판 위에 놓여 있었다. | 1997년 [[경회루]] 연못 준설 작업 도중에 출토된 청동용이다. 발굴 당시 큰 돌에 눌린 채 직사각형 석판 위에 놓여 있었다. | ||
용은 발톱 5개가 달린 오조룡(五爪龍)은 밀랍으로 좌우를 따로 주조한 뒤 결합하여 제작하였다. | 용은 발톱 5개가 달린 오조룡(五爪龍)은 밀랍으로 좌우를 따로 주조한 뒤 결합하여 제작하였다. | ||
− | 흥선대원군에 의해 주도된 경복궁 중건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경복궁영건일기|『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에 의하면, 이 청동용은 1865년 1쌍을 제작하여 화재로부터 궁궐을 보호해달라는 기원을 담아 1867년 연못에 가라앉혔다. 제작자는 별간역(別看役,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 감독을 담당하던 임시벼슬) 김재수(金在洙)이다. 발견 당시에는 한 쌍 중 한 개의 용만 발견되었다.<ref>[https://www.gogung.go.kr/searchView.do?pageIndex=1&cultureSeq=00021374XY&searchRelicDiv4=&searchGubun=ALL1&searchText= '경회루 연못 출토 청동용',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ref> | + | 흥선대원군에 의해 주도된 경복궁 중건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경복궁영건일기|『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에 의하면, 이 청동용은 1865년 1쌍을 제작하여 화재로부터 궁궐을 보호해달라는 기원을 담아 1867년 연못에 가라앉혔다. 제작자는 별간역(別看役,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 감독을 담당하던 임시벼슬) 김재수(金在洙)이다. 발견 당시에는 한 쌍 중 한 개의 용만 발견되었다.<ref>[https://www.gogung.go.kr/searchView.do?pageIndex=1&cultureSeq=00021374XY&searchRelicDiv4=&searchGubun=ALL1&searchText= '경회루 연못 출토 청동용',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ref> |
2020년 12월 23일 (수) 19:17 판
Definition
1997년 경회루 연못 준설 작업 도중에 출토된 청동용이다. 발굴 당시 큰 돌에 눌린 채 직사각형 석판 위에 놓여 있었다. 용은 발톱 5개가 달린 오조룡(五爪龍)은 밀랍으로 좌우를 따로 주조한 뒤 결합하여 제작하였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주도된 경복궁 중건 면모를 파악할 수 있는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에 의하면, 이 청동용은 1865년 1쌍을 제작하여 화재로부터 궁궐을 보호해달라는 기원을 담아 1867년 연못에 가라앉혔다. 제작자는 별간역(別看役,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 감독을 담당하던 임시벼슬) 김재수(金在洙)이다. 발견 당시에는 한 쌍 중 한 개의 용만 발견되었다.[1]
재현물 제작 정보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im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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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 경회루_연못_출토_용 | docum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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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 연못 출토 청동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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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 연못 출토 용 반대쪽 면 |
국립고궁박물관 | 경회루_연못_출토_용 | docum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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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 연못 출토 용 복원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