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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8일 (수) 04:53 판
Definition
의(扆)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제사 때 사용하는 병풍(屛風)이다. [1]
『세종실록오례』 ◎ 의(扆) :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의(扆)는 궤연(几筵)을 맡아 보(黼)를 설치하니, 도끼[斧]모양을 한 것을 보(黼)라 한다. 그 수(繡)는 백흑(白黑)의 문채로 하고, 붉은 비단으로써 바탕을 삼는데, 제도는 병풍(屛風)과 같이 한다."하고, 《시경(詩經)》의 공유장(公劉章)에, "이미 연(筵)에 오르고 이미 궤(几)에 의지하였다."고 하였으며, 사우례(士虞禮:《儀禮》의 篇名)에 "좌식(佐食:음식을 주관하는 사람)이 아무 일 없이 지게문[戶]을 나와서 등에 의지하여 남면(南面)한다."하였으니, 대개 제후(諸侯)로부터 사(士)에 이르기까지 모두 의지한 것이 있었다. 혹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혹은 그림을 그리지 않기도 하였으나, 상고할 수가 없다. ◎ 扆 : 《禮書》云: "扆, 司几筵設黼, 依斧謂之黼。 其繡白黑文, 以絳帛爲質, 依制如屛風。" 《詩》 《公劉》曰: "旣登乃依。" 《士虞禮》: "佐食無事, 出戶負依南面。" 蓋諸侯至士, 皆有依焉, 或畫或否, 不可考也。[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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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_의 | Object | 물품 | 제기 | 세종실록오례(世宗實錄五禮)_의(扆) | 세종실록오례_의 | 世宗實錄五禮_扆 | ritual vessel |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세종실록오례_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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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itional Attrib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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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의, 보의(黼扆), 신의(神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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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처 | 국가제사, 왕실제사, 사직제, 길례, 흉례 |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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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_의 | 의 | type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의(扆)는 궤연(几筵)을 맡아 보(黼)를 설치하니, 도끼[斧] 모양을 한 것을 보(黼)라 한다. 그 수(繡)는 백흑(白黑)의 문채로 하고, 강백(絳帛)으로써 바탕을 삼는데, 제도는 병풍(屛風)과 같이 한다.”하고, 『시경(詩經)』의 공유장(公劉章)에, “이미 연(筵)에 오르고 이미 궤(几)에 의지하였다.”고 하였으며, 사우례(士虞禮)에 “좌식(佐食)이 아무 일 없이 지게문[戶]을 나와서 등에 의지하여 남면(南面)한다.”고 하였다. “대개 제후(諸侯)로부터 사(士)에 이르기까지 모두 의지한 것이 있었다. 혹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혹은 그림을 그리지 않기도 하였으나, 상고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禮書云扆司几筵設黼依斧謂之黼其繡白黑文以絳帛爲質依制如屛風詩公劉曰旣登乃依士虞禮佐食無事出戶負依南面蓋諸侯至士皆有依焉或畫或否不可考也 [3] | 국사편찬위원회[2] |
세종실록오례_궤-几 | 세종실록오례_의 | isRelatedTo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도(周禮圖)』에 이르기를, “궤연(几筵)을 맡았으니 5궤(几)의 좌궤(左几) · 우궤(右几) · 옥궤(玉几) · 조궤(彫几) · 칠궤(漆几)이다.”고 하였으며, 『완씨도(阮氏圖)』에는 “궤(几)는 길이는 5尺, 높이는 2尺, 너비는 2尺이고, 양쪽 끝은 적색(赤色)이며, 중앙은 흑칠(黑漆)을 한다.”고 하였는데, 『마융(馬融)』에서 말하기를, “길이가 3尺인데, 양쪽 끝이 적색인 것과 중앙에 흑칠을 한 뜻이 없다.”고 하였으며,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왕은 궤(几)를 왼편과 오른편에 설치하니, 지존(至尊)한 신분을 우대한 것이요, 제후(諸侯)로부터 이하로는 혹은 왼편에 설치하기도 하고, 혹은 오른편에 설치하기도 하니, 일의 적당한 데 맞게 한 것이다. 제후가 제사를 지내는 자리[席]에는 궤(几)를 오른편에 설치하고, 국빈(國賓)을 연회(筵會)할 적엔 궤(几)를 왼편에 설치하니, 제사(祭祀)는 귀신에 관한 일[陰事]인 까닭으로 이를 오른편에 설치하고, 국빈(國賓)을 연회함은 인간에 관한 일[陽事]인 까닭으로 이를 왼편에 설치한다. 제후의 제사에는 조궤(彫几)를 설치한다.” 고 하였다. 周禮圖云司几筵五几左右玉彫漆阮氏圖几長五尺高二尺廣二尺兩端赤中央黑漆馬融以爲長三尺無兩端赤中央黑漆之義禮書云王設几於左右優至尊也諸侯而下或設之左或設之右適事之宜也諸侯祭祀席右几筵國賓左几則祭祀陰事也故右之筵國賓陽事也故左之諸侯祭祀彫几 [4] | 국사편찬위원회[3] |
세종실록오례_연 | 세종실록오례_의 | isRelatedTo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주례(周禮)』에 이르기를, “포연(蒲筵)은 길이가 7尺, 나비는 2尺 3寸이다.”고 하였으며,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제후(諸侯)는 제사(祭祀)에 자리가 2개이니, 왕골자리[莞席]는 좁은 끈으로 선을 두르고, 부들자리[蒲筵]는 무늬로 수(繡)를 놓는데, 펴는 것을 연(筵)이라 하고, 까는 것을 석(席)이라 한다. 연과 석의 제도는 짧아도 한 길[尋]에 내려가지 아니하고, 길어도 두 길[常]에 지나지 아니하고, 중간 것도 9尺에 지나지 아니한다. 『예기(禮器)』에 “상공(上公)은 대협(大祫)에 자리를 네 겹으로 펴고, 제후(諸侯)는 대협에 자리를 세 겹으로 펴고, 체제(禘祭)와 시제(時祭)에는 다 같이 자리를 두 겹으로 편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경(經)에는 보이지 아니하나, 글에는 모두 겹자리[重席]를 편다고 말하였으며, 모씨(毛氏)가 『시경(詩經)』을 해석하면서, 또한 겹자리를 편다고 하였으니, 제후의 조석(繅席)이 겹으로 되어 부들자리와 더불어 세 개가 되므로, 그 수효가 마침 예기(禮器)의 수효와 합하게 된다. 周禮云蒲筵長七尺廣二尺三寸禮書云諸侯祭祀席二莞席紛純蒲筵繢純鋪陳曰筵藉之曰席筵席之制短不過尋長不過常中者不過九尺禮器上公大祫席四重諸侯大祫三重禘與時祭同二重其言無所經見然書皆言敷重席毛氏釋詩亦曰設重席則諸侯繅席重焉與蒲筵而三其數適與禮器合矣 [5] | 국사편찬위원회[4] |
국조오례의_의 | 세종실록오례_의 | isRelatedTo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예서(禮書)』에 말하기를, “의(扆)는 사궤연(司几筵)에 ‘보의(黼依)를 설치한다.’ 하였고 부(斧)는 보(黼)를 말하는 것이다. 그 수(繡)는 희고 검은 무늬로, 바탕은 강백(絳帛)으로 한다. 의(扆)의 제도는 병풍(屛風)과 같다.” 하였다. 『시경(詩經)』의 공유(公劉)에 말하기를, “올라가 의지한다.” 했으니, 선비들의 예(禮)로 먹을 것을 돕는 것을 근심하여 일 없이 문에 나가 병풍을 지고 의지하여 남쪽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이는 대개 제후(諸侯)로부터 선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의지 할 데가 있다는 것이다. 혹 그림을 그리고 혹 그리지 않기도 하는 것은 상고할 수가 없다. 禮書云扆司几筵設黼依斧謂之黼其繡白黑文以絳帛爲質依制如屛風詩公劉曰旣登乃依士虞禮?食無事出戶員依南面盖諸侯至士皆有依焉或畫或否不可考也 [6] | |
국조상례보편_의 | 세종실록오례_의 | isRelatedTo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항목 없음.[7] | 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
춘관통고_의 | 세종실록오례_의 | isRelatedTo | <춘관통고 권86, 흉례(凶禮)> 항목 없음.[8] | 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html> |
대한예전_보의(黼扆) | 세종실록오례_의 | isRelatedTo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서도(書圖)』에 이르기를, “관아의 궤연(几筵)을 살펴보니 무릇 조회와 알현 및 제향 및 대사례, 그리고 국명(國命)으로 제후나 왕위(王位)를 책봉할 때 보의(黼扆)[주에 부(斧)를 가리켜 보(黼)라 일컫는다]를 설치한다. 그것은 강백(絳帛)을 바탕으로 삼아 흑백 무늬를 수놓는다. 보의(黼扆)의 제도는 병풍(屛風)과 같다.”고 하였다. 『가석(賈釋)』에 이르기를, “모든 문양은 대부분 도끼[斧]라는 글자를 만든다. 만약 채색(采色)을 근거하여 말하면 장인[職人]이 흑과 백으로 수를 놓은 것을 가리켜 보(黼)라고 한다. 마치 기물 위에 금도끼 문양을 수를 놓은 것과 같은데, 칼날과 비슷한 것은 희고, 자루와 근사한 것은 검은색이다. 도끼라고 일컫는 것은 금도끼로 끊고 쪼개는 뜻을 취한 것이다. 병풍의 명칭은 한세(漢世)에서 나온 것을 끌어 쓴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물며 『구도(舊圖)』에서 이르길, “너비 8尺, 자루 없는 도끼를 그리는 것은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베푼 것이다.”라고 하였다. 書圖云司几筵凡大朝覲大饗射凡封國命諸侯王位設黼扆注斧謂之黼其繡白黑文以絳帛爲質扆其制如屛風賈釋云諸文多作斧字若據采色而言卽繢人職白與黑謂之黼若據繡於物上卽爲金斧之文近刃白近銎黑則曰斧取金斧斷割之義屛風之名出於漢世故引爲况舊圖云從廣八尺畫斧無柄設而不用之義 [9] | |
대한예전_신의(神扆) | 세종실록오례_신의(神扆) | isRelatedTo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대명회전(大明會典)』 환구편(圜丘篇)에 이르기를, “신의(神扆)의 제도는 주칠(朱漆)을 하고, 도금(鍍金) 장식을 한다. 용을 아로새겨 그림을 그린다. 높이는 4尺 3分, 너비는 4尺 4寸이다. 아래에는 층대(層臺)가 있고, 신탑(神榻) 위에 안치하고, 신좌(神座)를 기대는 병풍[倚屛]이 된다.”라고 하였다. 大明會典圜丘篇云神扆之制朱漆鍍金爲餙鏤龍起畫髙四尺三分濶四尺四寸下有層臺安于神榻以爲神座之倚屛 [10] | |
종묘의궤_의 | 세종실록오례_의 | isRelatedTo |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항목 없음.[11] | |
사직서의궤_의[12] | 세종실록오례_의 | isRelatedTo |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항목 없음.[13] | 1783년(정조 7) 1월 8일에 사직서(社稷署)의 제례의식[祭儀]제식(祭式)·단(壇)·유(壝)·관사(館舍) 등을 참고하고자 작성된 5권 3책의 의궤가 편찬되어, 1804년(순조 4) 1차 증보되고, 1842년(현종 8) 2차 증보됨./ 조선후기 정조나 순조 때 사직에서 왕실에서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제기이다. 난도(鑾刀)는 희생을 베는데 사용하는 칼이다. |
제기도감의궤_의[14] | 세종실록오례_의 | isRelatedTo | <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 항목 없음. [15] | 『제기도감의궤』는 1611년(광해군 3) 8월 24일 건원릉(健元陵)과 현릉(顯陵)에 친제(親祭)를 거행하기 위해 제기가 부족하자, 그해 9월 9일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이듬해까지 제기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제기를 만든 전말을 기록하고 있음./ 난도(鸞刀)는 영녕전(永寧殿)에 1개, 종묘(宗廟)에 1개를 만들어 사용한다. |
경모궁의궤_의[16] | 세종실록오례_의 | isRelatedTo |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항목 없음. [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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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설 | 세종실록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의 |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33 | |
도설 | 국조오례의 | 扆 |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 |
참고 |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 의扆 |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1010&category=A&sWord=扆 | |
참고 | 한국전통지식포탈 | 扆 | 국조오례의 의 | http://www.cbd-chm.go.kr/home/rsc/rsc01003p_6.do?dt_gbn=TC&data_gbn_cd=BIO&cls_no=120000023992&cls_id=13392&pageIndex=132 |
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 扆 | 의 항목 없음. |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451 |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제기 | 의 항목 없음.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제기&ridx=0&tot=296 |
참고 | 위키 실록사전 | 의 항목 없음. |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대문 | |
참고 | AKS Encyves | 의 항목 없음. |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대문 | |
도해 | 세종실록오례 | 의 |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10a01.jpg |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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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권, |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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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 ||
김종임, | 「조선왕실 금속제기 연구 : 종묘제기를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제277호, | 한국미술사학회, 20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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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영, |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
윤방언, | 『조선왕조 종묘와 제례』, | 문화재청, 2002. | ||
국립고궁박물관, |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 국립고궁박물관, 2014. | ||
궁중유물전시관, | 『종묘대제문물』,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Notes
- ↑ "의",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의,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의,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의",『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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