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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5일 (일) 18:40 판
Definition
조선시대 의례를 거행하기 전에 제관이 손을 씻는 대야모양의 제기이다.[1]
『국조오례의』 ◎ 세(洗) : 『석전의』에서 말했다. “세(洗)는 무게가 8근 8냥이요, 발까지의 높이는 5촌 7푼, 구경은 1척 3촌 6푼, 깊이는 2촌 9푼, 발의 구경은 8촌 9푼이다.”
◎ 洗 : 〈圖〉
『釋奠儀』云。“洗重八斤八兩, 通足高五寸七分, 口徑一尺三寸六分, 深二寸九分, 足口徑八寸九分。” 註 001
註 001 『紹熙州縣釋奠儀圖』 「禮記圖·洗」. “洗, 重八斤八兩, 通足高五寸七分, 口徑一尺三寸六分, 深二寸九分, 足口徑八寸九分.”[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
국조오례의_세 | Object | 물품 | 제기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_세(洗) | 국조오례의_세 | 國朝五禮儀_洗 | ritual vessel |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국조오례의_세 | 한국전통지식포탈[1] |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 value |
---|---|
id | 국조오례의_세 |
이칭/별칭 | 세, 세대, 세뢰 |
재질 | |
색상 | |
사용처 | 국가제사, 왕실제사, 사직제, 길례, 흉례 |
Contextu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im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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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 | 국조오례의_세 | hasPart | ||
국조오례의_세 | 세 | type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세(洗)는 무게가 8斤 8兩요, 발까지 합하여 높이는 5寸 7分이다. 입지름[口徑]은 1尺 3寸 6分이며, 깊이는 2寸 9分이며, 발의 지름[足徑]은 8寸 9分이다.” 했다. 釋奠儀云洗重八斤八兩通足高五寸七分口徑一尺三寸六分深二寸九分足口徑八寸九分 [3] | 한국전통지식포탈[2] |
국조오례의_세뢰 | 국조오례의_세 | goesWith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세뢰(洗罍)의 무게가 12斤이요, 발까지 합하여 높이는 1尺이다. 입지름[口徑]은 8寸 4分이요, 깊이는 7寸 1分이며, 발의 지름[足徑]은 7寸 9分이다.” 했다. ○『운회(韻會)』에 보면, “뇌(罍)는 세수하는 그릇인데, 구름과 우뢰의 모양을 그린 것은 그 천둥의 위엄을 나타내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한 것이다.” 했다. 釋奠儀云洗罍重一十二斤通足高一尺口徑八寸四分深七寸一分足口徑七寸九分○韻會罍盥器畫爲雲雷之象取其雷震之威以起敬也 [4] | 한국전통지식포탈[3] |
세종실록오례_세 | 국조오례의_세 | isRelatedTo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세(洗)는 무게가 8斤 8兩, 발[足]까지의 전체 높이가 5寸 7分, 입지름이 1尺 3寸 6分, 깊이가 2寸 9分, 굽지름이 8寸 9分이다.” 고 하였다. 釋奠儀云洗重八斤八兩通足高五寸七分口徑一尺三寸六分深二寸九分足口徑八寸九分 [5] | 국사편찬위원회[4] |
국조상례보편_세 | 국조오례의_세 | isRelatedTo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세(洗)[세수대야 물[盥水]을 받는 것이다]. 세(洗)의 무게는 8斤 8兩이다[『의궤(儀軌)』에는 24斤으로 되어 있다]. 입지름은 1尺 3寸 6分, 깊이는 2寸 9分이다. 발지름은 8寸 9分, 족부까지 포함한 높이는 5寸 7分이다. 별도로 붕어[鮒魚]와 난초[草]를 주조하여 안쪽의 비스듬한 면에 부착한다. 洗[所以承盥水者]洗重八斤八兩[儀軌二十四斤]口圓徑尺三寸六分深二寸九分足徑八寸九分通足高五寸七分另鑄鮒魚及蘭草形從內側付於四面 [6] | 한국전통지식포탈[5] 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세(洗)는 조선시대 왕실의 제사 때 세수대야 물[盥水]을 받는 그릇이다. |
대한예전_세 | 국조오례의_세 | isRelatedTo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세(洗)는 무게가 8斤 8兩요, 발까지 합하여 높이는 5寸 7分이다. 입지름은 1尺 3寸 6分, 깊이는 2寸 9分, 발지름은 8寸 9分이다.”라고 했다. 釋奠儀云洗重八斤八兩通足高五寸七分口徑一尺三寸六分湥二寸九分足口徑八寸九分 [7] | 한국전통지식포탈[6] |
종묘의궤_세 | 국조오례의_세 | isRelatedTo |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세(洗)는 무게가 8斤 8兩이요, 발[足]까지의 전체 높이가 5寸 7分이며, 입지름은 1尺 3寸 6分이요, 깊이가 2寸 9分이며, 굽의 지름이 8寸 9分이다.”고 하였다. 釋奠儀云洗重八斤八兩通足高五寸七分口徑一尺三寸六分深二寸九分足口徑八寸九分 [8] | 한국전통지식포탈[7] 규장각한국학연구원[8] |
사직서의궤_세[9] | 국조오례의_세 | isRelatedTo |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세(洗)는 무게가 8斤 8兩, 발까지 합하여 높이는 5寸 7分이다. 입지름은 1尺 3寸 6分, 깊이는 2寸 9分, 굽지름은 8寸 9分이다.”라고 하였다. 釋奠儀云洗重八斤八兩通足高五寸七分口徑一尺三寸六分㴱二寸九分足口徑八寸九分 [10] | 한국전통지식포탈[9] 1783년(정조 7) 1월 8일에 사직서(社稷署)의 제례의식[祭儀]제식(祭式)·단(壇)·유(壝)·관사(館舍) 등을 참고하고자 작성된 5권 3책의 의궤가 편찬되어, 1804년(순조 4) 1차 증보되고, 1842년(현종 8) 2차 증보됨./ 조선후기 정조나 순조 때 사직에서 왕실의 제사에 손을 씻는 그릇이다. |
제기도감의궤_세뢰[11] | 국조오례의_세 | isRelatedTo | <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 주조하며 세(洗) 9개, 주조하며 세뢰(洗罍) 9개이다. 세뢰(洗罍)는 발까지 합한 높이는 1尺, 입 지름은 8寸 4分, 깊이는 7寸 1分, 발 지름은 7寸 9分이다. 세(洗)는 발까지의 높이는 5寸 7分, 입 지름은 1尺 3寸 6分, 깊이는 2寸 9分, 발 지름은 8寸 9分이다. 사직(社稷), 영녕전(永寧殿), 종묘(宗廟)에 받침을 갖춘 뢰(罍)는 각각 3개씩이다. 鑄九洗鑄九洗罍通足高一尺口徑八寸四分深七寸一分足口徑七寸九分洗通足高五寸七分口徑一尺三寸六分深二寸九分足口徑八寸九分社稷永寧殿宗廟罍臺具各三 [12] | 한국전통지식포탈[10] 1611년(광해군 3) 8월 24일 건원릉(健元陵)과 현릉(顯陵)에 친제(親祭)를 거행하기 위해 제기가 부족하자, 그해 9월 9일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이듬해까지 제기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제기를 만든 전말을 기록하고 있음./ 세뢰(洗罍)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제사 때 세수하는 물을 담는 그릇이다. 사직(社稷), 영녕전(永寧殿), 종묘(宗廟)에 받침을 갖춘 뢰(罍)는 각각 3개씩 만들어 사용한다. |
경모궁의궤_세 | 국조오례의_세 | isRelatedTo |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세(洗)는 무게가 8斤 8兩, 발[足]까지의 전체 높이가 5寸 7分, 입지름이 1尺 3寸 6分, 깊이가 2寸 9分, 발지름이 8寸 9分이다.”라고 하였다. 釋奠儀云洗重八斤八兩通足高五寸七分口徑一尺三寸六分深二寸九分足口徑八寸九分 [13] | 한국전통지식포탈[11] |
정조국장도감의궤_세대[14] | 국조오례의_세 | isRelatedTo |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4, 별공작> 세대(洗臺) 1坐는 무게 24斤 1兩이다. 이상은 놋쇠[鍮]와 주철[鑄]을 반씩 섞는다. 洗臺一坐重二十四斤一兩以上鍮鑄相半 [15] AKS Encyves의 궁중기록화_물품_세_정조국장도감의궤_규장각.jpg[16] |
AKS Encyves[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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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국장도감의궤_세대 | 국조오례의_세 | isRelatedTo | AKS Encyves[14] | |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_세대 | 국조오례의_세 | isRelatedTo | AKS Encyves[15] | |
국립고궁박물관_세 | 국조오례의_세 | isRelatedTo | < 국립고궁박물관, 세洗, 유물번호:종묘9577, 재질:놋쇠, 크기(cm) 입지름: 37.2, 밑지름: 28.2, 높이: 16.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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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_세 | 석전의 | references |
Spatial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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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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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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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설 | 세종실록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세 |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25# | |
도설 | 국조오례의 | 洗 |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 |
참고 |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 세洗 |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0644&category=A&sWord=세 | |
참고 | 한국전통지식포탈 | 세 | http://www.cbd-chm.go.kr/home/rsc/rsc01003p_6.do?dt_gbn=TC&data_gbn_cd=BIO&cls_no=120000023992&cls_id=13392&pageIndex=31 | |
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 세뢰(洗罍) | 세(洗) 항목없음. |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442 |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제기 | 세(洗) 항목없음.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제기&ridx=0&tot=296 |
참고 | 위키 실록사전 | 세뢰(洗罍) | 세(洗) 항목없음. |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세뢰(洗罍) |
참고 | AKS Encyves | 세 |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세 | |
도해 | 세종실록오례 | 세 |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9a01.jpg;jsessionid=FC8C29AEDEB0BF1844CC300A97B3645B |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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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
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祭禮와 준․뢰의 사용」, 『조선시대사학보』58, | 조선시대사학회, 2011. | ||
박수정, | 「조선초기 의례(儀禮)제정과 희준(犧尊)·상준(象尊)의 역사적 의미」, 『조선시대사학보』60, | 조선시대사학회, 2012. | ||
최순권, |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
최순권, | 「조선시대 이준(彛尊)에 대한 고찰」, 『생활문물연구』14, | 국립민속박물관, 2004. | ||
정소라, |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 조선시대사학회, 1999. | ||
하은미, |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
김종일, |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 ||
김종임, | 「조선왕실 금속제기 연구 : 종묘제기를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제277호, | 한국미술사학회, 2013. | ||
손명희, | 「조선의 국가 제사를 위한 그릇과 도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 국립고궁박물관, 2015, 85~136쪽. | ||
이귀영, |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
윤방언, | 『조선왕조 종묘와 제례』, | 문화재청, 2002. | ||
국립고궁박물관, |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 국립고궁박물관, 2014. | ||
궁중유물전시관, | 『종묘대제문물』,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Notes
- ↑ "세",
『한국 기록유산 Encyves』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國朝五禮序例』 1권, 길례 제기도설, 洗,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online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권1, 길례(吉禮), 제기(祭器)의 도설(圖說), 세(洗),『조선시대법령자료』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 ↑ 『國朝五禮序例』 1권, 길례 제기도설, 洗,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online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오례의서례』 1권, 길례 제기도설, 세,『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國朝五禮序例』 1권, 길례 제기도설, 洗罍,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online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조오례의서례』 1권, 길례 제기도설, 세뢰,『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세,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세",『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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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사직서의궤",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사직서의궤』 1권, 제기도설, 세,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제기도감의궤",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제기도감의궤』 1권, 도감, 세뢰,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경모궁의궤』 1권, 제기도설, 세,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정조국장도감의궤",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4권, 별공작, 세대,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 ↑ "세",
『한국 기록유산 Encyves』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세",
『소장품』online , 국립고궁박물관. - ↑ "세",
『한국전통지식포탈』online , 특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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