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이"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efinition) |
|||
41번째 줄: | 41번째 줄: | ||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image |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image | ||
|- | |- | ||
− | | [[세종실록오례]] || [[계이]] || [[documents]]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ref>[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13 | + | | [[세종실록오례]] || [[계이]] || [[documents]]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ref>『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13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계이], <html><online style="color:purple">『조선왕조실록』<sup>online</sup></online></html>, 국사편찬위원회.<br/>『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https://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0691 계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털』<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
+ | || <html><img width="120" src="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7b01.jpg"/></html><br/>국사편찬위원회[http://sillok.history.go.kr/] | ||
|- | |- | ||
| [[국조상례보편]] || [[계이]] || [[documents]]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계이(雞彛)[명수(明水)와 울창(欝鬯)을 담는 것이다. ○ 봄에는 계이(雞彛)에 명수(明水)를 담고 조이(鳥彛)에 울창을 담는다. 여름에는 조이(鳥彛)에 명수(明水)를 담고, 계이(雞彛)에 울창(欝鬯)을 담는다]. 계이(雞彛)[『의궤(儀軌)』에는 무게가 6斤으로 되어 있다]의 입지름은 6寸 4分, 깊이는 6寸 7分이다. 발지름은 4寸 3分, 족부까지 포함한 높이가 8寸이다. 앞뒤[前後]에는 닭 모양[鷄]을 새긴다. 雞彛[所以實明水欝鬯者○春則鷄彛盛明水鳥彛盛欝鬯夏則鳥彛盛明水鷄彛盛欝鬯]鷄彛[儀軌重六斤]口圓徑六寸四分深六寸七分足圓徑四寸三分通足高八寸前後鏤鷄形<ref>『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https://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1884 계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털』<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html><img width="120" src="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image/shape/ktc001884/1200x1200/ratio/ktc001884-200/jpg.image"/></html><br/>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 | [[국조상례보편]] || [[계이]] || [[documents]]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계이(雞彛)[명수(明水)와 울창(欝鬯)을 담는 것이다. ○ 봄에는 계이(雞彛)에 명수(明水)를 담고 조이(鳥彛)에 울창을 담는다. 여름에는 조이(鳥彛)에 명수(明水)를 담고, 계이(雞彛)에 울창(欝鬯)을 담는다]. 계이(雞彛)[『의궤(儀軌)』에는 무게가 6斤으로 되어 있다]의 입지름은 6寸 4分, 깊이는 6寸 7分이다. 발지름은 4寸 3分, 족부까지 포함한 높이가 8寸이다. 앞뒤[前後]에는 닭 모양[鷄]을 새긴다. 雞彛[所以實明水欝鬯者○春則鷄彛盛明水鳥彛盛欝鬯夏則鳥彛盛明水鷄彛盛欝鬯]鷄彛[儀軌重六斤]口圓徑六寸四分深六寸七分足圓徑四寸三分通足高八寸前後鏤鷄形<ref>『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https://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1884 계이], <html><online style="color:purple">『한국전통지식포털』<sup>online</sup></online></html>, 특허청.</ref> ||<html><img width="120" src="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image/shape/ktc001884/1200x1200/ratio/ktc001884-200/jpg.image"/></html><br/>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
2020년 10월 13일 (화) 12:50 판
Definition
계이(鷄彝)는 국가 제사 때 술과 맑은 물을 담는 제기로 표면에 닭[鷄] 모양을 새긴다.[1] 세종실록오례 ◎ 계이(鷄彝) : 《예서(禮書)》에 이르기를, "계이(鷄彝)와 조이(鳥彝)는 술잔에 새겨 그림을 그려서 닭과 봉(鳳)의 형상을 만든다. 봄 제사[春祀]와 여름 제사[夏禴]의 관향(祼享)에 계이와 조이를 사용한다. 대저 닭은 동방(東方)의 생물(生物)이니 인(仁)이요, 새[鳥]는 남방(南方)의 생물(生物)이니 예(禮)이다. 이것이 선왕께서 봄 제사와 여름 제사에 사용하는 까닭이다. 봄에는 계이(鷄彝)에 명수(明水)를 채우고, 조이(鳥彝)에 울창(鬱鬯)을 채우며, 여름에는 조이에 명수(明水)를 채우고, 계이(鷄彝)에 울창(鬱鬯)을 채운다. 가이(斝彝)와 황이(黃彝)의 서로 사용됨도 역시 이와 같다."고 하였다. ◎鷄彛 : 《禮書》云: "鷄彝鳥彝, 謂刻而畫之, 爲鷄鳳之形。 春祀夏禴, 祼用鷄彝鳥彝。 夫鷄, 東方之物, 仁也; 鳥, 南方之物, 禮也, 此先王所以用祀禴也。 春則鷄彝盛明水, 鳥彝盛鬱鬯;夏則鳥彝盛明水, 鷄彝盛鬱鬯。 斝黃之相爲用, 亦若此。"[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
계이 | Object | 물품 | 제기 | 계이(鷄彝) | 계이 | 鷄彝 | ritual vessel |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계이 |
|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 value |
---|---|
id | 계이 |
이칭/별칭 | |
재질 | |
색상 | |
사용 신분 | 국가제사, 왕실제사 |
Contextu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image |
---|---|---|---|---|
세종실록오례 | 계이 | documents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3] | 국사편찬위원회[2] |
국조상례보편 | 계이 | documents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계이(雞彛)[명수(明水)와 울창(欝鬯)을 담는 것이다. ○ 봄에는 계이(雞彛)에 명수(明水)를 담고 조이(鳥彛)에 울창을 담는다. 여름에는 조이(鳥彛)에 명수(明水)를 담고, 계이(雞彛)에 울창(欝鬯)을 담는다]. 계이(雞彛)[『의궤(儀軌)』에는 무게가 6斤으로 되어 있다]의 입지름은 6寸 4分, 깊이는 6寸 7分이다. 발지름은 4寸 3分, 족부까지 포함한 높이가 8寸이다. 앞뒤[前後]에는 닭 모양[鷄]을 새긴다. 雞彛[所以實明水欝鬯者○春則鷄彛盛明水鳥彛盛欝鬯夏則鳥彛盛明水鷄彛盛欝鬯]鷄彛[儀軌重六斤]口圓徑六寸四分深六寸七分足圓徑四寸三分通足高八寸前後鏤鷄形[4] | 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
국조오례의 | 계이 | documents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5] | |
대한예전 | 계이 | documents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6] | |
종묘의궤 | 계이 | documents |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7] | 규장각한국학연구원[3] |
사직서의궤 | 계이 | documents |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항목 없음.[8] | |
제기도감의궤[9] | 계이(鷄彝) | documents | <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10] | 1611년(광해군 3) 8월 24일 건원릉(健元陵)과 현릉(顯陵)에 친제(親祭)를 거행하기 위해 제기가 부족하자, 그해 9월 9일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이듬해까지 제기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제기를 만든 전말을 기록하고 있음./ 계이(鷄彜)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제사에 사용한다. 봄 · 여름 제사의 강신에 명수나 울창을 담는데 쓰는 그릇이다. 영녕전(永寧殿)에 8개, 종묘(宗廟)에 9개를 만들어 사용한다. |
경모궁의궤 | 계이 | documents |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11] | 규장각한국학연구원[4] |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계이(鷄彝) | 조이(鳥彛) |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 A ekc:goesWith B |
계이(鷄彝) | 용작(龍勺) |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 A ekc:goesWith B |
계이(鷄彝) | 멱(冪) |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 A ekc:goesWith B |
계이(鷄彝) | 『종묘의궤(宗廟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계이(鷄彝)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宗廟親祭規制圖說屛風)》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계이(鷄彝) | 『순조국장도감의궤(純祖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계이(鷄彝) | 『정조국장도감의궤(正祖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계이(鷄彝) |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孝懿王后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계이(鷄彝) | 제례(祭禮) | A는 B에 사용되었다 | A ekc:isUsedIn B |
Spatial Data
Spactial Information Nodes
gid | region | label | hanja | latitude | longitude | altitue | description |
---|---|---|---|---|---|---|---|
Spati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
Temporal Data
Temporal Information Nodes
tid | timeSpan | label | hanja | lunarDate | solarDate | indexDate | description |
---|---|---|---|---|---|---|---|
Tempor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
Online Reference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
도설 | 세종실록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계이 |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13 | |
도설 | 국조오례의 | 계이 |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 |
참고 |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 계이 |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0073&category=A&sWord=계이 | |
참고 | 한국전통지식포탈 | 계이 | https://www.koreantk.com/ktkp2014/search-all/search-by-keyword.page?target=ALL&keyword=계이 | |
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 계이(鷄彛) |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447 | |
참고 | 위키 실록사전 | 계이(鷄彛) |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계이(鷄彛) | |
참고 | AKS Encyves | 계이 |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계이 | |
도해 | 세종실록 오례 | 계이 |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7b01.jpg |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
박수정, | 「조선초기 의례(儀禮)제정과 희준(犧尊)·상준(象尊)의 역사적 의미」, 『조선시대사학보』60, | 조선시대사학회, 2012. | ||
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
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祭禮와 준․뢰의 사용」, 『조선시대사학보』58, | 조선시대사학회, 2011. | ||
하은미, |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
최순권, |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
최순권, | 「조선시대 이준(彛尊)에 대한 고찰」, 『생활문물연구』14, | 국립민속박물관, 2004. | ||
정소라, |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 조선시대사학회, 1999. |
Notes
- ↑ 박봉주, "계이",
『조선왕조실록사전』online , 한국학중앙연구원.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계이,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 ↑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계이,
『조선왕조실록』online , 국사편찬위원회.
『세종실록』 128권, 오례 길례 서례 제기도설, 계이",『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계이,
『한국전통지식포털』online , 특허청. - ↑ 『國朝五禮序例』 0001권, 奎185-v.1-2, 044a-044a면,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