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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3일 (토) 22:06 판
Definition
각종 제사 의식에서 손을 씻는 데 사용된 항아리 모양의 큰 물동이. [1] 세종실록오례 ◎ 세뢰(洗罍) :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세뢰(洗罍)는 무게가 12근이요, 발[足]까지의 전체 높이가 1척이며, 아가리의 직경(直徑)이 8촌 4푼이요, 길이는 7촌 1푼이며, 발의 아가리[足口]의 직경이 7촌 9푼이다."고 하였다. ◎ 洗罍 : 《釋奠儀》云: "洗罍, 重一十二斤, 通足高一尺, 口徑八寸四分, 深七寸一分, 足口徑七寸九分。"[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
세뢰 | Object | 물품 | 제기 | 세뢰(洗罍) | 세뢰 | 洗罍 | ritual vessel |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세뢰 |
|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 value |
---|---|
id | 세뢰 |
이칭/별칭 | |
재질 | |
색상 | |
사용 신분 | 국가제사, 왕실제사 |
Contextu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image |
---|---|---|---|---|
『세종실록오례』 | 세뢰 | documents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세뢰(洗罍)는 무게가 12斤, 발[足]까지의 전체 높이가 1尺이며, 입지름이 8寸 4分, 길이는 7寸 1分, 굽지름이 7寸 9分이다.”고 하였다. 釋奠儀云洗罍重一十二斤通足高一尺口徑八寸四分深七寸一分足口徑七寸九分 [3] | 국사편찬위원회[2] |
『국조오례의』 | 세뢰 | documents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세뢰(洗罍)의 무게가 12斤이요, 발까지 합하여 높이는 1尺이다. 입지름[口徑]은 8寸 4分이요, 깊이는 7寸 1分이며, 발의 지름[足徑]은 7寸 9分이다.” 했다. ○『운회(韻會)』에 보면, “뇌(罍)는 세수하는 그릇인데, 구름과 우뢰의 모양을 그린 것은 그 천둥의 위엄을 나타내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한 것이다.” 했다. 釋奠儀云洗罍重一十二斤通足高一尺口徑八寸四分深七寸一分足口徑七寸九分○韻會罍盥器畫爲雲雷之象取其雷震之威以起敬也 [4] | |
『국조상례보편』 | 세뢰 | documents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세뢰(洗礨)[세수대야 물[盥水]을 담는 것이다]. 세뢰(洗礨)의 무게는 12斤이다[『의궤(儀軌)』에는 20斤으로 되어 있다]. 입지름은 8寸 4分, 배지름은 1尺 2分, 깊이는 7寸 1分이다. 발지름은 7寸 9分, 족부까지 포함한 높이는 1尺이다. 洗礨[所以盛盥水者]洗罍重十二斤[儀軌二十斤]口圓徑八寸四分腰圓徑尺二分深七寸一分足徑七寸九分通足高一尺 [5] | 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세뢰(洗礨)는 조선시대 왕실의 제사 때 세수대야 물[盥水]을 담는 그릇이다. |
『대한예전』 | 세뢰 | documents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세뢰(洗罍)의 무게가 12斤, 발까지 합하여 높이는 1尺이다. 입지름은 8寸 4分, 깊이는 7寸 1分, 발지름은 7寸 9分이다.”라고 했다. ○『운회(韻會)』에 보면, “뇌(罍)는 세수하는 그릇인데, 구름과 우뢰의 모양을 그린 것은 그 천둥의 위엄을 나타내어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釋奠儀云洗罍重一十二斤通足高一尺口徑八寸四分湥七寸一分足口徑七寸九分○韻會罍盥器畫爲雲雷之象取其雷震之威以起敬也 [6] | |
『종묘의궤』 | 세뢰 | documents |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세뢰(洗罍)의 무게는 12斤이다. 발까지 합한 높이는 1尺, 입지름은 8寸 4分, 깊이는 7寸 1分, 발의 입지름은 7寸 9分이다."라고 하였다. ○『운회(韻會)』에 이르기를, "뇌(礨)는 세숫대야[盥器]이다. 구름과 우레의 형상을 그렸다. 뇌성벽력의 위엄을 취하여 공경을 일으켰다."라고 하였다. 釋奠儀云洗罍重一十二斤通足高一尺口徑八寸四分深七寸一分足口徑七寸九分○韻會罍盥器畫爲雲雷之象取其雷震之威以起敬也 [7] | 규장각한국학연구원[3] |
『사직서의궤』[8] | 세뢰 | documents |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말하기를, “세뢰(洗罍)의 무게가 12斤, 발까지 합하여 높이는 1尺이다. 입지름은 8寸 4分, 깊이는 7寸 1分, 발지름은 7寸 9分이다.”라고 하였다. ○『운회(韻會)』에 보면, “뇌(罍)는 세수하는 그릇이다.”라고 하였다. 釋奠儀云洗罍重一十二斤通足高一尺口徑八寸四分深七寸一分足口徑七寸九分○韻會云罍盥器 [9] | 1783년(정조 7) 1월 8일에 사직서(社稷署)의 제례의식[祭儀]제식(祭式)·단(壇)·유(壝)·관사(館舍) 등을 참고하고자 작성된 5권 3책의 의궤가 편찬되어, 1804년(순조 4) 1차 증보되고, 1842년(현종 8) 2차 증보됨./ 조선후기 정조나 순조 때 사직에서 왕실의 제사에 물이나 술을 뜨는 국자이다. |
『제기도감의궤』[10] | 세뢰 | documents | <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 주조하며 세(洗) 9개, 주조하며 세뢰(洗罍) 9개이다. 세뢰(洗罍)는 발까지 합한 높이는 1尺, 입 지름은 8寸 4分, 깊이는 7寸 1分, 발 지름은 7寸 9分이다. 세(洗)는 발까지의 높이는 5寸 7分, 입 지름은 1尺 3寸 6分, 깊이는 2寸 9分, 발 지름은 8寸 9分이다. 사직(社稷), 영녕전(永寧殿), 종묘(宗廟)에 받침을 갖춘 뢰(罍)는 각각 3개씩이다. 鑄九洗鑄九洗罍通足高一尺口徑八寸四分深七寸一分足口徑七寸九分洗通足高五寸七分口徑一尺三寸六分深二寸九分足口徑八寸九分社稷永寧殿宗廟罍臺具各三 [11] | 1611년(광해군 3) 8월 24일 건원릉(健元陵)과 현릉(顯陵)에 친제(親祭)를 거행하기 위해 제기가 부족하자, 그해 9월 9일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이듬해까지 제기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제기를 만든 전말을 기록하고 있음./ 세뢰(洗罍)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제사 때 세수하는 물을 담는 그릇이다. 사직(社稷), 영녕전(永寧殿), 종묘(宗廟)에 받침을 갖춘 뢰(罍)는 각각 3개씩 만들어 사용한다. |
『경모궁의궤』 | 세뢰 | documents |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석전의(釋奠儀)』에 이르기를, “세뢰(洗罍)는 무게가 12斤, 발[足]까지의 전체 높이가 1尺이며, 입지름이 8寸 4分, 길이는 7寸 1分, 발지름이 7寸 9分이다.”라고 하였다.『운회(韻會)』에 이르기를, “뇌(罍)는 손 씻는 그릇[盥器]이다.”라고 하였다. 釋奠儀云洗罍重一十二斤通足高一尺口徑八寸四分深七寸一分足口徑七寸九分韻會云罍盥器 [12] | |
『정조국장도감의궤』[13] | 세뢰 | documents | <정조국장도감의궤 국장도감의궤 권4, 별공작> 세뢰(洗罍) 1坐는 무게 22斤 4兩이다. 洗罍一坐重二十二斤四兩 [14] | 조선후기 1800년(순조 즉위년) 정조(正祖)의 국장(國葬) 때, 세뢰(洗罍)는 제물(祭物)을 담는 놋그릇[鍮器]으로 사용하였다. |
세뢰 | 국립고궁박물관[15] | currentLocation | < 국립고궁박물관, 유물도판출처:궁중유물전시관, 『종묘대제문물』, 2004, p.42.> [16] | 한국전통지식포털[4] |
용작 | 성균관 | currentLocation | <제기/용작. 석전제의 제기. 용작(술을 뜨는 국자). 성균관 소장.(ⓒ한국학중앙연구원, 유남해)> [17] |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세뢰(洗罍) | 세(洗) |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 A ekc:goesWith B |
세뢰(洗罍) | 세대(洗臺) | A는 B와 같이 사용되었다 | A ekc:goesWith B |
세뢰(洗罍) | 『종묘의궤(宗廟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세뢰(洗罍) | 『순조국장도감의궤(純祖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세뢰(洗罍) | 『정조국장도감의궤(正祖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세뢰(洗罍) | 『효의왕후국장도감의궤(孝懿王后國葬都監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세뢰(洗罍) | 제례(祭禮) | A는 B에 사용되었다 | A ekc:isUsedIn B |
Spatial Data
Spactial Information Nodes
gid | region | label | hanja | latitude | longitude | altitue | description |
---|---|---|---|---|---|---|---|
Spati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
Temporal Data
Temporal Information Nodes
tid | timeSpan | label | hanja | lunarDate | solarDate | indexDate | description |
---|---|---|---|---|---|---|---|
Tempor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
Online Reference
type | resource | title | desctription/caption | URL |
---|---|---|---|---|
도설 | 세종실록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세뢰 |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24# | |
도설 | 국조오례의 | 洗罍 |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 |
참고 |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 세뢰洗罍 |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0646&category=A&sWord=세뢰 | |
참고 | 한국전통지식포탈 | 세뢰 | https://www.koreantk.com/ktkp2014/search-all/search-by-keyword.page?pageNo=1&pageSize=&keyword=세뢰&target=CRA | |
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 세뢰(洗罍) |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442 | |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제기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제기&ridx=0&tot=296 | |
참고 | 위키 실록사전 | 세뢰(洗罍) |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세뢰(洗罍) | |
참고 | 위키 Encyves 한국 기록유산 | 세뢰 |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세뢰 | |
도해 | 세종실록 오례 | 세뢰 |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8b04.jpg;jsessionid=FC8C29AEDEB0BF1844CC300A97B3645B |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
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
하은미, |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
최순권, |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
정소라, |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 조선시대사학회, 1999. | ||
김종일, |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 ||
김종임, | 「조선왕실 금속제기 연구 : 종묘제기를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제277호, | 한국미술사학회, 2013. | ||
손명희, | 「조선의 국가 제사를 위한 그릇과 도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 국립고궁박물관, 2015, 85~136쪽. | ||
이귀영, |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
Notes
-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조선왕조실록사전/세뢰(洗罍)
- ↑ 『세종실록』,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세뢰.
- ↑ 『세종실록』,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세뢰.
한국전통지식포털. - ↑ 『國朝五禮序例』 0001권, 奎185-v.1-2, 044a-044a면,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한국전통지식포털.
-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 국립고궁박물관/용작.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Semantic Network 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