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부업품공진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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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은 모두 3개의 관으로 구성되었는데, 제1호관은 일반 전시물을, 제2호관은 참고품, 제3호관은 각종 기업이 자사의 상품을 선전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또한 전시물은 계약 절차에 따라 예매가 가능하도록 해놓아 직 판매로 이어지도록 하였다. 농업이 1차 산업인 조선에서 공업이나 기타 상업은 부업이다. 이 부업을 장려, 보급, 개발하는 것이 조선물산공진회의 취지였는데 이는 총독부 발행 잡지에서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관람객이 먼저 본관에 들어서면 조선의 부업제조품을 관람하고, 다음에 제1참고관에서 진입해서 조선의 출품물과 일본 및 기타의 출품물ㅇ르 비교해서 보고, 다음으로 제2참고관에 들어서면 실제 작업을 보고, 조선에 있어 공업적 제조상품의 지위 및 기술의 정도를 연구하고, 스스로 반성과 각성케 해서 장래 조선에 있어서 부업의 방책을 세우게 된다면 전차로 실로 좋은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시정 5주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에 적용된 '대조와 비교'라는 시선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행사준비가 불충분하였던 것이 곧바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통행순서와 물건전시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탓에 장내는 혼잡하였고, 충분한 구경을 못했다는 불평이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내용의 빈약을 메우려는 수작인지 관람객을 더 유치하기 위한 전략인지 매일 장내에서는 '가장행렬'이 진행되었고, 마지막 날에는 '기생찾기'라는 이벤트까지 실시되었다. 개막일에는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를 동반한 비행 이벤트가 실시되기도 하였다. 당시 조선인이 이용할 만한 오락시설이나 유흥물이 충분치 못했기 때문에 조선 사람들에게 공진회는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과 같은 것이었다. 더불어 이벤트와 전기 장식 등도 이 시기부터 등장하여 조선인의 눈을 유혹하였다. | 전시관은 모두 3개의 관으로 구성되었는데, 제1호관은 일반 전시물을, 제2호관은 참고품, 제3호관은 각종 기업이 자사의 상품을 선전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또한 전시물은 계약 절차에 따라 예매가 가능하도록 해놓아 직 판매로 이어지도록 하였다. 농업이 1차 산업인 조선에서 공업이나 기타 상업은 부업이다. 이 부업을 장려, 보급, 개발하는 것이 조선물산공진회의 취지였는데 이는 총독부 발행 잡지에서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관람객이 먼저 본관에 들어서면 조선의 부업제조품을 관람하고, 다음에 제1참고관에서 진입해서 조선의 출품물과 일본 및 기타의 출품물ㅇ르 비교해서 보고, 다음으로 제2참고관에 들어서면 실제 작업을 보고, 조선에 있어 공업적 제조상품의 지위 및 기술의 정도를 연구하고, 스스로 반성과 각성케 해서 장래 조선에 있어서 부업의 방책을 세우게 된다면 전차로 실로 좋은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시정 5주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에 적용된 '대조와 비교'라는 시선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행사준비가 불충분하였던 것이 곧바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통행순서와 물건전시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탓에 장내는 혼잡하였고, 충분한 구경을 못했다는 불평이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내용의 빈약을 메우려는 수작인지 관람객을 더 유치하기 위한 전략인지 매일 장내에서는 '가장행렬'이 진행되었고, 마지막 날에는 '기생찾기'라는 이벤트까지 실시되었다. 개막일에는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를 동반한 비행 이벤트가 실시되기도 하였다. 당시 조선인이 이용할 만한 오락시설이나 유흥물이 충분치 못했기 때문에 조선 사람들에게 공진회는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과 같은 것이었다. 더불어 이벤트와 전기 장식 등도 이 시기부터 등장하여 조선인의 눈을 유혹하였다. | ||
− | + | *염상섭 <세 번이나 본 공진회>, 잡지 개벽 1923년 11월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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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6일 (일) 01:21 판
Definition
1923년 10월 5일부터 24일까지 20일간 조선농회 주최, 조선총독부의 후원으로 경복궁에서 개최된 공진회. 경복궁 내 서로 다른 총 세 개의 전시관에서 개최되었다.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id | class | groupName | partName | label | hangeul | hanja | english | infoUrl | iconUr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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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부업품공진회 | Event | 사건 | 박람회 | 조선부업품공진회 | 조선부업품공진회 |
Additional Attributes
propertyName | valu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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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
사진출처 | |||
대표명칭 | 조선부업품공진회 | ||
한자표기 | 영문명칭 | ||
이칭 | |||
유형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날짜 | 일제강점기 1923년 | ||
관련인물 | |||
관련단체 | 전조선상업회의소연합회 | ||
관련장소 | 경복궁, 광화문, 근정전, 경성역, 조선총독부 | ||
관련물품 | |||
관련유물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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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
사진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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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개념 |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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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tial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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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 景福宮 | 37.579617 | 126.977041 | 47.22 m(154.93 ft) | |||
Spati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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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l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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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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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Reference
type | resource | title | description/caption | UR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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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나 亦 求景의 榮光을 입던 니약이" | 『개벽』1923년 11월호, 유광열 지음 |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img_pg.aspx?CNTN_CD=IA000106387&atcd=A0000115206 |
텍스트 | 국가기록원 | 일제시기 주요도서 해제 | 「조선부업품(朝鮮副業品) 공진회(共進會)에 대한 축사」 | http://www.archives.go.kr/archivesdata/upFile/palgan/20100118165407343.pdf |
사진 | 오마이뉴스 | 1923년 가을에 경복궁에서 개최된 '조선부업품공진회' 당시의 배치도 모습. | 조선부업품공진회 배치도 |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img_pg.aspx?CNTN_CD=IA000106387&atcd=A0000115206 |
사진 | 옛난물건 | 1923년 조선부업품공진회 도록 | https://www.yetnal.co.kr/shop/item.php?it_id=1415796354 | |
참고 | 서울역사박물관 | 일제강점기 경복궁에서 벌어진 각종 박람회 | https://museum.seoul.go.kr/exh2/gwanghwamun/html/content/con_sub05_17.html#top | |
참고 | 서울앤(www.seouland.com), | 구중궁궐은 1923년 사라졌다…서십자각 철거와 함께 | http://www.seouland.com/arti/society/society_general/3866.html |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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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택, | 『욕망의 전시장』 | 서해문집, 2020 | ||
이각규 | 『한국의 근대박람회』, | 커뮤니케이션북스, 이각규 | 2010 |
Notes
- 개괄
조선부업품공진회는 192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공황으로 발생한 사회경제적 난국을 타개할 수단으로 개최된 것이다. 전시품은 일본 제품 일색이었고 국내 제품은 가마니와 새끼, 짚신 등으로 초라했다. 목화마제품과 양잠, 과실, 야채 재배, 가축 가금 등의 식품 제조, 어패류 등 해산물의 수획 등 부업인 산업보급과 장려를 목적으로 하였으며, 조선 각 지역의 출품물이 전시되었다. 장소도 경복궁에서 개최되어, 조선물산공진회에서 사용한 건물을 재활용하였고, 소규모지만 각종 경기대회와 여흥도 일정에 포함되어 형식적으로는 조선물산공진회의 축소판이었다.
- 개최 배경 및 목적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가 표면적으로 총화적인 근대산업의 달성도를 제시 것이었다면, 1923년 부업품공진회는 조선 경제의 발전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1934년에 발간된 『조선부업지침: 조선부업품공진회총람』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1920년부터 시작된 경제공황에 따라 금융계 혼란에 빠지고 농촌은 피폐해져 갔다. 쌀값은 하락하고 농촌에서는 소작쟁의가 빈번해 사회 문제로 비화되고 있었다. 조선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소작쟁의는 식민 통치자들을 위협할 정도였다.
- 개최운영
공진회 성공을 위해 부산, 대구, 경성, 평양 등 주요 역 앞에 목제 홍보탑을 세우고 공진회 개최를 선전하였다. 또한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만주 등지에 약 1만 매의 포스터를 배포했으며, 이 박람회를 핑계로 아예 광화문을 허물어 버렸다. 일제는 관람객을 동원하기 위해 여비까지 주었으며, 그래도 박람회장에 오지 않으면 일제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또한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서 호외까지 발행해 대서특필했을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는 조선왕조 임금의 자리였던 근정전 용상에 올라앉아 개회를 선언하는 오만함을 과시했다. 전시관은 모두 3개의 관으로 구성되었는데, 제1호관은 일반 전시물을, 제2호관은 참고품, 제3호관은 각종 기업이 자사의 상품을 선전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또한 전시물은 계약 절차에 따라 예매가 가능하도록 해놓아 직 판매로 이어지도록 하였다. 농업이 1차 산업인 조선에서 공업이나 기타 상업은 부업이다. 이 부업을 장려, 보급, 개발하는 것이 조선물산공진회의 취지였는데 이는 총독부 발행 잡지에서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관람객이 먼저 본관에 들어서면 조선의 부업제조품을 관람하고, 다음에 제1참고관에서 진입해서 조선의 출품물과 일본 및 기타의 출품물ㅇ르 비교해서 보고, 다음으로 제2참고관에 들어서면 실제 작업을 보고, 조선에 있어 공업적 제조상품의 지위 및 기술의 정도를 연구하고, 스스로 반성과 각성케 해서 장래 조선에 있어서 부업의 방책을 세우게 된다면 전차로 실로 좋은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시정 5주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에 적용된 '대조와 비교'라는 시선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행사준비가 불충분하였던 것이 곧바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통행순서와 물건전시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탓에 장내는 혼잡하였고, 충분한 구경을 못했다는 불평이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내용의 빈약을 메우려는 수작인지 관람객을 더 유치하기 위한 전략인지 매일 장내에서는 '가장행렬'이 진행되었고, 마지막 날에는 '기생찾기'라는 이벤트까지 실시되었다. 개막일에는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를 동반한 비행 이벤트가 실시되기도 하였다. 당시 조선인이 이용할 만한 오락시설이나 유흥물이 충분치 못했기 때문에 조선 사람들에게 공진회는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과 같은 것이었다. 더불어 이벤트와 전기 장식 등도 이 시기부터 등장하여 조선인의 눈을 유혹하였다.
- 염상섭 <세 번이나 본 공진회>, 잡지 개벽 1923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