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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덩[덕응]은 공주, 옹주나 삼간택 위에 간택이 확정된 여인이 탔던 가마이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친영시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 민씨도 덩을 타고 행렬에 참여하였다. 덩은 한자로 '德應(덕응)' 이라고 쓰는데 '덩'이란 글자를 한자로 표기할 수 없어 취음을 한 것이다. 지붕과 벽체가 있는 유옥교자의 일종이다. 통상 8명의 가마꾼이 메었다.
 
조선시대 덩[덕응]은 공주, 옹주나 삼간택 위에 간택이 확정된 여인이 탔던 가마이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친영시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 민씨도 덩을 타고 행렬에 참여하였다. 덩은 한자로 '德應(덕응)' 이라고 쓰는데 '덩'이란 글자를 한자로 표기할 수 없어 취음을 한 것이다. 지붕과 벽체가 있는 유옥교자의 일종이다. 통상 8명의 가마꾼이 메었다.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실의 가마(증보편)』, 국립고궁박물관, 2006,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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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실의 가마(증보판)』, 국립고궁박물관, 2006, 70쪽.
  
 
[[분류:김현승-미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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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7일 (월) 23:56 기준 최신판

조선시대 덩[덕응]은 공주, 옹주나 삼간택 위에 간택이 확정된 여인이 탔던 가마이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친영시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 민씨도 덩을 타고 행렬에 참여하였다. 덩은 한자로 '德應(덕응)' 이라고 쓰는데 '덩'이란 글자를 한자로 표기할 수 없어 취음을 한 것이다. 지붕과 벽체가 있는 유옥교자의 일종이다. 통상 8명의 가마꾼이 메었다.

출처: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실의 가마(증보판)』, 국립고궁박물관, 2006, 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