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종신정후)상호도감의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새 문서: ==Definition== (신정후효정후고종명성후)상호도감의궤|(신정후효정후고종명성후)상호도감의궤((神貞王后孝定王后高宗明聖王后)上號都監...) |
(→Definition) |
||
1번째 줄: | 1번째 줄: | ||
==Definition== | ==Definition== | ||
− | [[( | + | [[(익종신정후)상호도감의궤|(익종신정후)상호도감의궤((翼宗神貞后)上號都監儀軌)]]는 1875년(고종 12) 익종의 세실 지정을 경축하기 위해 익종과 신정왕후에게 존호를 올린 사실을 기록하였다. 종묘의 세실은 4대가 지나 친진되었더라도 조천하지 않는 신실을 가리킨다. 익종은 고종의 왕통으로 보면 3대조이다. 익종에게 올린 존호는 계천건통신훈숙모(啟天建統神勳肅謨)이며, 신정왕후는 융목(隆穆)이었다. 고종은 종묘와 근정전에서 각각 존호책보를 올리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이 의궤는 1책이며, 채색 반차도와 각종 도설을 수록하고 있다.<ref>.</ref> |
2020년 10월 5일 (월) 13:59 판
Definition
(익종신정후)상호도감의궤((翼宗神貞后)上號都監儀軌)는 1875년(고종 12) 익종의 세실 지정을 경축하기 위해 익종과 신정왕후에게 존호를 올린 사실을 기록하였다. 종묘의 세실은 4대가 지나 친진되었더라도 조천하지 않는 신실을 가리킨다. 익종은 고종의 왕통으로 보면 3대조이다. 익종에게 올린 존호는 계천건통신훈숙모(啟天建統神勳肅謨)이며, 신정왕후는 융목(隆穆)이었다. 고종은 종묘와 근정전에서 각각 존호책보를 올리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이 의궤는 1책이며, 채색 반차도와 각종 도설을 수록하고 있다.[1]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