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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도(鸞刀)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제사 때 희생(犧牲)을 베는데 사용하는 칼이다. <ref>[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0301 한국전통지식포탈]</ref> 세종실록오례 ◎ | + | 난도(鸞刀)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제사 때 희생(犧牲)을 베는데 사용하는 칼이다. <ref>[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0301 한국전통지식포탈]</ref> 세종실록오례 ◎ 난도(鸞刀) : [[성송반악도|《성송반악도(聖宋頒樂圖)》]]에 이르기를, "《예기(禮記)》에 난도(鸞刀)는 옛날의 칼인데, 종묘(宗廟)에 사용하니, 종묘에서 지금의 칼을 사용하지 않고서 옛날의 칼을 사용함은 옛날의 일을 닦아 계승한 까닭이다."하고, 《시경(詩經)》의 《신남산편(信南山篇)》에, "그 난도를 잡아 그 순색(純色)의 희생(犧牲)을 고(告)한다."하였으며, 《예기(禮記)》의 《절해장(節解章)》에는 "반드시 난도가 있는 것은, 그 난령(鸞鈴)062) 의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이 조화(調和)된 후에 희생(犧牲)을 베게됨을 취한 것이다."하였으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는 "선공(宣公) 12년에 정백(鄭伯)이 오른손으로 난도를 잡았다."고 하였는데, 주(注)에 이르기를, "난도는 종묘(宗廟)에서 희생(犧牲)을 베고 끊는 칼인데, 고리[鐶]에 방울[和]이 있고, 칼 끝에 방울[鸞]이 있다. 칼 끝에 있는 것은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에 맞고, 세 방울[三和]이 고리에 있는 것은 소리가 각성(角聲)·치성(徵聲)·우성(羽聲)에 맞는다."고 하였다. ◎ 鸞刀 : 《聖宋頒樂圖》云: "《禮記》: ‘鸞刀, 古刀也, 用於宗廟。 宗廟不用今刀, 而用古刀, 修古之故。’" 《詩》 《信南山》曰: "執其鸞刀, 以啓其毛。" 《禮記節解》曰: "必有鸞刀者, 取其鸞鈴之聲。 宮商調和, 而後斷割也。" 《春秋》 《公羊傳》: "宣十二年, 鄭伯右執鸞刀。" 注云: "鸞刀, 宗廟割切之刀。 鐶有和, 鋒有鸞在鋒, 聲中宮商, 三和在鐶, 聲中角徵羽。"<ref>[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32# 『세종실록』, 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난도.]</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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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조오례의|『국조오례의』]] || [[난도]] || [[documents]]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성송반악도|『성송반악도(聖宋頒樂圖)』]]에 말하기를, “『예기(禮記)』에 난도(鸞刀)는 고도(古刀)이며, 종묘(宗廟)에 쓰는 것이다. 종묘에 지금의 칼은 쓰지 않고 고도(古刀)를 씀은 옛것을 닦기 위한 까닭이다.” 했다. 『시경(詩經)』 신남산편(信南山篇)에 말하기를, “그 난도(鸞刀)를 잡고 그 털을 연다.” 했고, 『예기절해(禮記節解)』에 말하기를, “반드시 난도(鸞刀)를 씀은 그 방울 소리를 듣기 위한 것이다. 궁(宮)과 상(商)이 조화(調和)된 뒤에 고기를 벤다.” 했다. 『춘추(春秋)』 공양전(公羊傳)의 선공(宣公) 12년에 정백(鄭伯)이 오른손에 난도(鸞刀)를 잡았다고 했다. 『주(註)』에 말하기를, “난도(鸞刀)는 종묘(宗廟)에서 고기를 베는 칼이다. 환(鐶)에 화(和)가 있고, 봉(鋒)에 난(鸞)이 있다. 난(鸞)이 봉성(鋒聲)에 있으면 소리가 궁상삼(宮商三)에 맞고, 화(和)가 환성(鐶聲)에 있으면 소리가 각치우(角徵羽)에 맞는다.” 했다. 聖宋頒樂圖云禮記鸞刀古勺也用於宗廟宗廟不用今刀而用古刀修古之故詩信南山曰執其鸞刀以啓其毛禮記節解曰必用鑾刀取其鑾鈴之聲宮商調和而後斷割也春秋公羊傳宣士一年鄭伯右執鑾刀注云鑾刀宗廟切之刀鐶有和鋒有鑾鑾在鋒聲中宮商三和在鐶聲中角徵羽 <ref>[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國朝五禮序例』 0001권, 奎185-v.1-2, 044a-044a면,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br/>[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0301 한국전통지식포털.]</ref>||<html><img width="120" src="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image/shape/ktc000301/1200x1200/ratio/ktc000301-200/jpg.image"/></html> | | [[국조오례의|『국조오례의』]] || [[난도]] || [[documents]]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성송반악도|『성송반악도(聖宋頒樂圖)』]]에 말하기를, “『예기(禮記)』에 난도(鸞刀)는 고도(古刀)이며, 종묘(宗廟)에 쓰는 것이다. 종묘에 지금의 칼은 쓰지 않고 고도(古刀)를 씀은 옛것을 닦기 위한 까닭이다.” 했다. 『시경(詩經)』 신남산편(信南山篇)에 말하기를, “그 난도(鸞刀)를 잡고 그 털을 연다.” 했고, 『예기절해(禮記節解)』에 말하기를, “반드시 난도(鸞刀)를 씀은 그 방울 소리를 듣기 위한 것이다. 궁(宮)과 상(商)이 조화(調和)된 뒤에 고기를 벤다.” 했다. 『춘추(春秋)』 공양전(公羊傳)의 선공(宣公) 12년에 정백(鄭伯)이 오른손에 난도(鸞刀)를 잡았다고 했다. 『주(註)』에 말하기를, “난도(鸞刀)는 종묘(宗廟)에서 고기를 베는 칼이다. 환(鐶)에 화(和)가 있고, 봉(鋒)에 난(鸞)이 있다. 난(鸞)이 봉성(鋒聲)에 있으면 소리가 궁상삼(宮商三)에 맞고, 화(和)가 환성(鐶聲)에 있으면 소리가 각치우(角徵羽)에 맞는다.” 했다. 聖宋頒樂圖云禮記鸞刀古勺也用於宗廟宗廟不用今刀而用古刀修古之故詩信南山曰執其鸞刀以啓其毛禮記節解曰必用鑾刀取其鑾鈴之聲宮商調和而後斷割也春秋公羊傳宣士一年鄭伯右執鑾刀注云鑾刀宗廟切之刀鐶有和鋒有鑾鑾在鋒聲中宮商三和在鐶聲中角徵羽 <ref>[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國朝五禮序例』 0001권, 奎185-v.1-2, 044a-044a면,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br/>[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craft-view.view?craftCd=ktc000301 한국전통지식포털.]</ref>||<html><img width="120" src="http://www.koreantk.com/ktkp2014/craft/image/shape/ktc000301/1200x1200/ratio/ktc000301-200/jpg.image"/></html> |
2020년 10월 4일 (일) 17:13 판
Definition
난도(鸞刀)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제사 때 희생(犧牲)을 베는데 사용하는 칼이다. [1] 세종실록오례 ◎ 난도(鸞刀) : 《성송반악도(聖宋頒樂圖)》에 이르기를, "《예기(禮記)》에 난도(鸞刀)는 옛날의 칼인데, 종묘(宗廟)에 사용하니, 종묘에서 지금의 칼을 사용하지 않고서 옛날의 칼을 사용함은 옛날의 일을 닦아 계승한 까닭이다."하고, 《시경(詩經)》의 《신남산편(信南山篇)》에, "그 난도를 잡아 그 순색(純色)의 희생(犧牲)을 고(告)한다."하였으며, 《예기(禮記)》의 《절해장(節解章)》에는 "반드시 난도가 있는 것은, 그 난령(鸞鈴)062) 의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이 조화(調和)된 후에 희생(犧牲)을 베게됨을 취한 것이다."하였으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는 "선공(宣公) 12년에 정백(鄭伯)이 오른손으로 난도를 잡았다."고 하였는데, 주(注)에 이르기를, "난도는 종묘(宗廟)에서 희생(犧牲)을 베고 끊는 칼인데, 고리[鐶]에 방울[和]이 있고, 칼 끝에 방울[鸞]이 있다. 칼 끝에 있는 것은 소리가 궁성(宮聲)과 상성(商聲)에 맞고, 세 방울[三和]이 고리에 있는 것은 소리가 각성(角聲)·치성(徵聲)·우성(羽聲)에 맞는다."고 하였다. ◎ 鸞刀 : 《聖宋頒樂圖》云: "《禮記》: ‘鸞刀, 古刀也, 用於宗廟。 宗廟不用今刀, 而用古刀, 修古之故。’" 《詩》 《信南山》曰: "執其鸞刀, 以啓其毛。" 《禮記節解》曰: "必有鸞刀者, 取其鸞鈴之聲。 宮商調和, 而後斷割也。" 《春秋》 《公羊傳》: "宣十二年, 鄭伯右執鸞刀。" 注云: "鸞刀, 宗廟割切之刀。 鐶有和, 鋒有鸞在鋒, 聲中宮商, 三和在鐶, 聲中角徵羽。"[2]
Semantic Data
Node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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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도 | Object | 물품 | 제기 | 난도(鸞刀) | 난도 | 鸞刀 | ritual vessel | http://dh.aks.ac.kr/hanyang/wiki/index.php/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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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itional Attribu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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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질 | |
색상 | |
사용 신분 | 국가제사, 왕실제사 |
Contextu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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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오례』 | 난도 | documents | <세종실록오례 권128, 길례서례(吉禮序例), 제기도설(祭器圖說)> 『사림광기(事林廣記)』에 이르기를, “확(鑊)은 『주례(周禮)』에 형인(亨人)이 정(鼎)으로써 수화(水火)를 고르게 공급함을 맡았으니, 제사에 대갱(大羹)과 형갱(鉶羹)을 함께 삶는다.”고 하였는데, 주(注)에 이르기를, “확(鑊)은 육(肉)과 어포(魚脯)를 삶는 기구(器具)이다.”고 하였다. 事林廣記云鑊周禮亨人掌共鼎以給水火之齊祭祀共大羹鉶羹注云鑊煮肉及魚腊之器 [3] | 국사편찬위원회[2] |
『국조오례의』 | 난도 | documents | <국조오례의서례 권1,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성송반악도(聖宋頒樂圖)』에 말하기를, “『예기(禮記)』에 난도(鸞刀)는 고도(古刀)이며, 종묘(宗廟)에 쓰는 것이다. 종묘에 지금의 칼은 쓰지 않고 고도(古刀)를 씀은 옛것을 닦기 위한 까닭이다.” 했다. 『시경(詩經)』 신남산편(信南山篇)에 말하기를, “그 난도(鸞刀)를 잡고 그 털을 연다.” 했고, 『예기절해(禮記節解)』에 말하기를, “반드시 난도(鸞刀)를 씀은 그 방울 소리를 듣기 위한 것이다. 궁(宮)과 상(商)이 조화(調和)된 뒤에 고기를 벤다.” 했다. 『춘추(春秋)』 공양전(公羊傳)의 선공(宣公) 12년에 정백(鄭伯)이 오른손에 난도(鸞刀)를 잡았다고 했다. 『주(註)』에 말하기를, “난도(鸞刀)는 종묘(宗廟)에서 고기를 베는 칼이다. 환(鐶)에 화(和)가 있고, 봉(鋒)에 난(鸞)이 있다. 난(鸞)이 봉성(鋒聲)에 있으면 소리가 궁상삼(宮商三)에 맞고, 화(和)가 환성(鐶聲)에 있으면 소리가 각치우(角徵羽)에 맞는다.” 했다. 聖宋頒樂圖云禮記鸞刀古勺也用於宗廟宗廟不用今刀而用古刀修古之故詩信南山曰執其鸞刀以啓其毛禮記節解曰必用鑾刀取其鑾鈴之聲宮商調和而後斷割也春秋公羊傳宣士一年鄭伯右執鑾刀注云鑾刀宗廟切之刀鐶有和鋒有鑾鑾在鋒聲中宮商三和在鐶聲中角徵羽 [4] | |
『국조상례보편』 | 확 | documents | <국조상례보편 도설(圖說), 반우(返虞)> 항목없음. [5] | 조선후기 1758년(영조 34)에 영조(英祖)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를 편찬하고 그중 흉례(凶禮)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편찬하였다. |
『춘관통고』 | 확 | documents | <춘관통고 권86, 흉례(凶禮)> 항목없음. [6] | 조선후기 1788년(정조 12)에 정조(正祖)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등의 내용을 모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오례(五禮)를 상세하게 기록한 『춘관통고(春官通考)』를 편찬하였다.</html> |
『대한예전』 | 확 | documents | <대한예전 권3, 길례(吉禮), 제기도설(祭器圖說)> 『사림광기(事林廣記)』『사림광기(事林廣記)』에 말하기를, “확(鑊)은 주례(周禮)에 보면, 팽인(烹人)이 공정(共鼎)을 맡아 물과 불을 알맞게 하고 제사에는 대갱(大羹)과 형갱(鉶羹)을 바친다.”라고 했다. 『주(註)』에 말하기를, “확(鑊)은 고기와 생선과 포를 익히는 그릇이다.”라고 했다. 事林廣記云鑊周禮享人掌共鼎以給水火之齊祭祀共大羹鉶羹注云鑊煮內及魚腊之器 [7] | |
『종묘의궤』 | 난도 | documents | <종묘의궤 권1, 종묘제기도설(宗廟祭器圖說)> 『사림광기(事林廣記)』에 이르기를, 확(鑊)은 『주례』에 “팽인(烹人)이 정(鼎)과 확을 모두 맡아 물의 양과 불의 세기를 알맞게 공급한다.”하였고 “제사에 대갱(大羹)과 형갱(鉶羹)을 제공한다.” 하였는데, 주에는 “확(鑊)은 고기와 어포(魚脯)를 삶는 그릇이다.” 하였다. 事林廣記云鑊周禮亨人掌共鼎以給水火之齊祭祀共大羹鉶羹注云鑊煮肉及魚腊之器 [8] | 규장각한국학연구원[3] |
『사직서의궤』[9] | 확 | documents | <사직서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항목없음. [10] | 1783년(정조 7) 1월 8일에 사직서(社稷署)의 제례의식[祭儀]제식(祭式)·단(壇)·유(壝)·관사(館舍) 등을 참고하고자 작성된 5권 3책의 의궤가 편찬되어, 1804년(순조 4) 1차 증보되고, 1842년(현종 8) 2차 증보됨.</html> |
『제기도감의궤』[11] | 확 | documents | <제기도감의궤 권1, 도감(都監)> 항목 없음. [12] | 『제기도감의궤』는 1611년(광해군 3) 8월 24일 건원릉(健元陵)과 현릉(顯陵)에 친제(親祭)를 거행하기 위해 제기가 부족하자, 그해 9월 9일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이듬해까지 제기도감을 설치하여 각종 제기를 만든 전말을 기록하고 있음. |
『경모궁의궤』 | 확 | documents | <경모궁의궤 권1, 제기도설(祭器圖說)> 『사림광기(事林廣記)』에 이르기를, “확(鑊)은 『주례(周禮)』에 팽인(烹人)이 정(鼎)으로써 수화(水火)를 고르게 공급함을 맡았으니, 제사에 대갱(大羹)과 형갱(鉶羹)을 함께 삶는다.”라고 하였다. 事林廣記云鑊周禮亨人掌共鼎以給水火之齊祭祀共大羹鉶羹 [13] |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난도(鑾刀) | 『종묘의궤(宗廟儀軌)』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난도(鑾刀) |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宗廟親祭規制圖說屛風)》 | B는 A에 그려져 있다 | B ekc:isDepictedIn A |
난도(鑾刀) | 제례(祭禮) | A는 B에 사용되었다 | A ekc:isUsedIn B |
Spatial Data
Spactial Information N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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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tial Relations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
Temporal Data
Temporal Information Nodes
tid | timeSpan | label | hanja | lunarDate | solarDate | indexDate | descrip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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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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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line Reference
type | resource | title | desctription/caption | URL |
---|---|---|---|---|
도설 | 세종실록오례 | 길례 서례 / 제기도설 / 난도 | http://sillok.history.go.kr/id/kda_20002008_032# | |
도설 | 국조오례의 | 鸞刀 | http://kyudb.snu.ac.kr/book/text.do?book_cd=GK00185_00&vol_no=0001 | |
참고 | 조선시대 왕실문화 도해사전 | 난도鸞刀 |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chDetail.jsp?no=D1651&category=A&sWord=확 | |
참고 | 한국전통지식포탈 | 난도 | 국조오례의 난도 | http://www.cbd-chm.go.kr/home/rsc/rsc01003p_6.do?dt_gbn=TC&data_gbn_cd=BIO&cls_no=120000023992&cls_id=13392&pageIndex=132 |
참고 | 조선왕조실록사전 | 제기 | 부 항목없음. | 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384 |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제기 | 부 항목없음.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제기&ridx=0&tot=296 |
참고 | 위키 실록사전 | 제기(祭器) | 부 항목없음. |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제기(祭器) |
참고 | 위키 Encyves 한국 기록유산 | 난도 |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난도 | |
도해 | 세종실록 오례 | 난도 | http://sillok.history.go.kr/images/slkimg/ida_040009b04.jpg |
- type: 해설, 참고, 3D_모델, VR_영상, 도해, 사진, 동영상, 소리, 텍스트
Bibliography
author | title | publication | edition | URL |
---|---|---|---|---|
박봉주, | 「조선시대 국가 제례(祭禮)와 변두(豆)의 사용」, 『동방학지』159,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 ||
하은미, | 「종묘제기와 조선시대 제기도설 연구」, |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 ||
최순권, | 「종묘제기고(宗廟祭器考)」, 『종묘대제문물』60, | 궁중유물전시관, 2004. | ||
정소라, | 「조선전기 길례용 분청사기 연구 -충효동요지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223, | 조선시대사학회, 1999. | ||
김종일, | 「조선후기 종묘제기와 유기장의 제작기술 연구」, | 한서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5. | ||
김종임, | 「조선왕실 금속제기 연구 : 종묘제기를 중심으로」, 『미술사학연구』제277호, | 한국미술사학회, 2013. | ||
손명희, | 「조선의 국가 제사를 위한 그릇과 도구」, 『조선의 국가의례, 오례』, | 국립고궁박물관, 2015, 85~136쪽. | ||
이귀영, | 「종묘제례의 제기와 제수의 진설 원리」, 『한국미술사교육학회지』제27호, | 한국미술사교육학회, 2013. |
,
Notes
Semantic Network Graph